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토록 하는 힘, 즉 외로움은 우리 유전자 안에 내재된 본능적 느낌이다. 현대사회의 깊어가는 고독은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따뜻한 교감과 사랑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음을 시사한다. 사회적 유대감의 결핍이 고독이고 외로움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스마트폰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디지털 기기에 중독되는 이들이 많은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효율적이라고 해서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실제 사람과의 따뜻한 만남을 방해하고 있다면 과감히 ‘오프(off)’해야 한다.
[HEALING MESSAGE] 외로움은 본능, 디지털 중독은 외로움이다
29세 직장 여성의 고민이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습니다. 업무 중에도, 출퇴근길에도 항상 스마트폰을 만지작대고 지냅니다. 친구들을 만나도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에 씁쓸할 때도 있습니다. 중독일까요?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군중 속의 고독’은 경쟁 사회에서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 데 에너지를 과소비하게 돼 지쳐버린 현대인의 외로운 마음을 표현하는 심리 용어다.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때 보통 내 주변 환경에 결핍이 있어서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따뜻한 환경에 있더라도 사람은 외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외로움은 식욕이나 성욕처럼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본능의 감성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식욕이나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성욕만큼 외로움도 중요하다.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토록 하는 힘, 외로움도 우리 유전자 안에 본능적 느낌으로 내재돼 있다. 외롭지 않다면 사회적 관계를 열심히 만들 동기가 생길 리 없다. 인간이 발달시킨 사회와 문화는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적 유대감을 향한 외로움이 없었다면 인간이 문화적 특성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외롭지 않았다면 현재의 문명사회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외롭기 때문에 외롭기도 하지만 외로움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적 감정이기도 한 것이다.


외로움도 유전, ‘디지털 오프 데이’ 가져라
그런데 타고나기를 더 외로운 사람이 있을까. 최근 외로움에 대한 연구를 보면 “그렇다”라는 대답이 가능하다. 어떤 특성의 유전적 경향을 알기 위해 하는 연구가 쌍생아연구다. 유전자가 완전히 동일한 쌍둥이인 일란성 쌍생아를 대상으로 한 외로움 연구에서 유전적 경향이 48%에 이른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외로움에 대한 유전적 영향이 반이라는 것이다. 타고나기를 외로움을 잘 타게 태어난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도 더 외로움을 느끼는 셈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어떤 아버지, 그분은 자신이 어렸을 때 외로운 환경이 외로움을 많이 타는 원인이 됐다고 생각하고 자녀를 더 따뜻하게 키웠다. 그런데 어느 날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 너무 외롭다고 해 황당했다고 한다. 친구도 너무 많고 쾌활한 아이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유전적 영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쁘게만 생각할 건 없다.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유대감에 대한 욕구가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외로움은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이다. 현대사회의 깊어가는 고독은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따뜻한 교감과 사랑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음을 시사한다. 사회적 유대감의 결핍이 고독이고 외로움이다. 자신을 사랑 받을 만한 존재로, 경쟁력 있는 존재로 가꾸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니 누구를 사랑할 감성 에너지조차 소진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피로사회’, ‘소진사회’라고 한다.
[HEALING MESSAGE] 외로움은 본능, 디지털 중독은 외로움이다
그러니 현재의 스마트 기기는 결과적으로 단순한 정보통신 장비가 아닌 셈이다. 사람들의 외로운 마음을 연결해주고 있는 것이다. 내 마음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실시간으로 연결해주기에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하는 우리 본능에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현대사회에서 더 진가를 발휘할 수밖에 없다. 소위 ‘먹방’이 유행인 것도 뇌가 쾌감을 느끼는 식욕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욕망의 충족은 쾌감을 주기에 행동을 강화시킨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금단 증상인 셈이다. 금단 증상이 있다는 것은 중독됐다는 것이다. 중독을 일으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뇌에 스마트 기기가 쾌감을 준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세상이 잘못됐다 이야기도 하지만 기술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기술은 우리의 내면적 필요와 맞아떨어질 때 도태되지 않고 발달할 수 있으니 우리 필요에 의한 창작물들이다. 그러나 빠르고 바쁜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과 효율적으로 사회적 유대감, 즉 정서적 네트워킹을 형성하기 위해 개발된 스마트폰이 실제 사람과 사람의 따뜻한 만남을 방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일 수 있다.

외로움에 대한 연구는 내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관심을 찾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따뜻한 마음을 표현할 때 오히려 외로움이 행복감으로 바뀜을 이야기한다. ‘helper’s high’, 봉사자의 쾌감이란 용어에서 ‘헬퍼(helper)’는 봉사자, ‘하이(high)’는 마약 같은 중추신경흥분제를 복용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을 이야기한다. “나 외로우니 더 사랑해”보다 대단한 자선 봉사는 아니더라도 남을 배려하고 위할 때 외로움이 쾌감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배려의 쾌감이라 할 수 있는데, 윤리적 차원에서 남을 배려하자는 것이 아닌, 뇌 과학 측면에서 외로움의 특효약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라는 것이다. 외로움이 큰 사람일수록 남을 배려할 때 찾아오는 심리적 쾌감도 크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시간, 한 달에 하루쯤은 ‘디지털 오프 데이(digital off day)’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스마트폰, 노트북을 집에 두고 훌쩍 기차를 타고 혼자만의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것이다. 멍하니 기차 창문을 내다볼 때 명상 효과가 일어나면서 뇌에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되고 창조성이 증가한다. 자연이란 타인과 교감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없이 친구를 만나는 날도 가져보길. ‘사랑을 소유하는 방법은 자세한 관찰에 있다’라는 말처럼 스마트폰이 아닌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행복과학 연구 결과를 보면 행복과 관련된 첫 번째 요인이 진실한 우정, 즉 솔직히 내 마음을 터놓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존재하는가에 있다고 한다. 친구가 없어 외롭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만날 친구가 없다기보다 자신을위로해주는 한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좋은 관계, 우정을 만드는 일은 생존 이상으로 뇌의 행복감을 위해 우선시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