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대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김대수 교수는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으로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과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그의 작품은 흑백의 자연 풍경을 매개로 인간의 심상을 사진으로 표현한다.
[ARTIST] 흑백 사진에 한국인의 정서를 담다
김대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대나무 시리즈’로 이름 높다. 올곧게 솟은 몇 그루의 대나무와 대나무 군락은 그의 카메라를 거쳐 흑백의 작품으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지난해 말 서울 삼청동 아트파크에서 있었던 20회 개인전은 그를 단지 대나무 작가로 국한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나무 시리즈와 함께 출품한 ‘이스트 달마(East Dalma)’, ‘키싱 레인(Kissing Rain)’ 등은 대나무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던, 그의 웅숭깊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전시회의 감흥이 잦아들기 전, 홍익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다며 말문을 열었다. 1955년생, 올해 60세를 맞은 그가 자신감과 함께 달뜬 표정을 쉬 감추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진 유학 10년이 그에게 남긴 것
사진작가 김대수를 이해하려면 그의 이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 잠깐 적을 두다 1년 4개월 만에 짐을 싸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사진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사진작가였기에 일찍 사진에 눈뜬 덕이었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미국 문화원에 자주 갔는데 거기서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을 봤습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죠.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중간에 1년 정도 한국에 들어온 것을 빼고는 근 10년을 미국에서 공부하며 지냈어요.”

미국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많은 사진작가들을 마음 속 스승으로 모셨다. 처음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었다. “사진은 영원을 밝혀준 바로 그 순간을 영원히 포획하는 단두대다”라는 명언을 남긴 브레송에게 그는 ‘결정적 순간의 위대함’을 배웠다.

언셀 애덤스에게서는 흑백 사진의 매력을 배웠다. ‘존 시스템’의 개발자인 애덤스의 프린팅 능력은 가히 신의 경지에 버금간다. 김 교수는 애덤스의 작품을 본 이후 지금까지 흑백 사진을 고수하고 있다.

브레송과 애덤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배웠다면 로버트 프랭크에게서는 ‘카메라에 무엇을 담을지’를 배웠다. 스위스 출신의 사진작가인 프랭크는 ‘심상 사진’의 대표 작가다. 김 교수는 프랭크를 통해 사진이 대상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메시지로 표현한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보다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가는 마이너 화이트다. 그가 공부한 프랫인스티튜트에는 화이트의 제자들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그의 사진은 언셀 애덤스의 정통 흑백 사진과 마이너 화이트의 표현 기법을 적절히 가미한 셈이다.

10년간 미국에서 사진을 공부한 그는 1987년 귀국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사진을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했다. 작품으로 사진을 파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다.

귀국 이듬해인 1988년 워커힐미술관에서 가진 ‘사진 새 시좌전’은 그런 분위기 속에 열렸다. 시좌전은 미국 유학시절 작업한, 이른바 ‘만드는 사진’이 주였다. 필름을 긁거나 사진 위에 유화 작업을 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디자인하다 순수미술을 하게 되면서 원초적인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 정체성에 대한 자각 같은 거죠. 미국서 선생들한테 질리도록 들은 말이 ‘사진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풍경을 찍는 것만으로는 거기에 충분한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진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게 된 거죠.”

나이가 들면서 원론적인 질문에서 조금씩 놓여났다. 한국에 돌아온 지도 꽤 되고, 나이도 4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됐다. 미국에서 사진을 배웠지만 서양인들과는 다른, 그만의 세계를 표현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국과 한국인의 조형언어를 탐구하게 됐다. 그러면서 사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흑백으로 돌아갔다. 직접적인 계기는 동해 시멘트 공장 촬영이었다. 의뢰가 들어와 시멘트 공장을 촬영하게 됐는데, 공장 전체가 회색이라 모든 사진이 흑백 톤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게 나쁘지 않았다. 흑백 사진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그 대상을 찾아 나섰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찾은 것이 한국적 정서를 담은 매란국죽(梅蘭菊竹)이었다.
‘Listening to the bamboo’, 2008년, 135x172cm, gelatin silver print
‘Listening to the bamboo’, 2008년, 135x172cm, gelatin silver print
매란국죽을 마음에 담은 후 그는 봄이면 매화를 찾아 하동 등지로 간다. 봄을 알리는 매화는 꽃이 작고 군집해 핀다는 사실을 작업을 하면서 알았다. 반면 난초는 선만 보면 길거리 풀잎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기품 있는 난을 만나야 한다. 그런 난이 있다면 제주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난도 화분에 담겨 있으면 찍어봐야 정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는 지금도 노력 중이다.
‘Great Steve Jobs’, 2013년, 120x160cm, gelatin silver print
‘Great Steve Jobs’, 2013년, 120x160cm, gelatin silver print
가장 한국적인 매란국죽에 매료되다
찬바람이 불면 국화도 카메라에 담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대나무다. ‘대나무 작가’라는 이름을 거저 얻는 건 아니다. 선비정신을 대변하는 대나무는 대부분이 선이다. 조형적으로 다양성이 부족해 아무리 많이 찍어도 지루하기 쉽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대나무와 대숲을 만났다. 그러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대나무의 성향을 개념적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대숲에 실제 가보면 휜 대나무가 의외로 많습니다. 대나무가 곧다는 건 관념 속에 있을 뿐이죠. 관념과 현실 간의 간극을 줄이려고 한국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 수많은 대숲을 찾았어요. 그러던 차에 대나무 줄기가 아닌 댓잎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나무 줄기를 촬영하는 사람은 많아도 댓잎을 찍는 사람은 없거든요. 실제 댓잎을 맞댄 대숲이 군중같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대나무를 의인화한 ‘컬러 오브 뱀부’, ‘피플 두 뱀부’가 거기서 출발했습니다.”
‘Kissing Rain’, 2013년, 180x120cm, gelatin silver print
‘Kissing Rain’, 2013년, 180x120cm, gelatin silver print
‘컬러 오브 뱀부’에서 눈치챘듯이 그는 최근 흑백에서 탈피해 컬러 작품에도 손대고 있다. 흑백 작업을 하면서 색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컬러는 보존성이 떨어져 작품으로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프린팅 기술이 좋아지면서 보존성의 문제가 많이 보완됐다. 현재 컬러 작품을 테스트 중인데, 마음에 들면 컬러 작업도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여러 가지, 한국을 대표하는 조형이라면 닥치는 대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런 다음 아날로그 필름을 모아서 분류했어요.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겨서 작가로서 세계 시장에 나서보고 싶습니다. 올해를 그 원년으로 잡고 있어요.”

실제 2009년 파리 케로셀 두 루브르에서 있었던 파리포토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적잖은 작품이 팔리고 호의적인 관객도 많이 만났다. ‘올해 파리포토가 선정한 작가’에 뽑히기도 했다. 거기서 얻은 자신감으로 그는 세계 시장을 노크할 계획이다. 그는 올해를 그 원년으로 삼고 현재 프랑스와 스위스, 독일 등의 갤러리와 전시회를 위한 협의를 하고 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