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비벌리힐스’ 단독주택

화려하고 넓은 저택이 즐비한 미국 비벌리힐스는 ‘부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그저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비벌리힐스의 삶’ 자체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다. 한국에도 비벌리힐스와 같은 부촌이 있다. 재벌 회장들의 대저택이 자리 잡은 성북동과 이태원, 그리고 신흥 부촌으로 각광받는 판교다.
삼성, LG 등 대기업 총수의 저택이 위치한 한남동 단독주택가.
삼성, LG 등 대기업 총수의 저택이 위치한 한남동 단독주택가.
한동안 슈퍼리치들의 관심은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와 주상복합에 머물렀다. 관리가 까다로운 단독주택과 비교해 공동주택이 가지는 편리함과 보안 시스템의 장점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더욱이 빠른 가격 상승으로 큰 시세차익 효과를 누린 아파트에 비해 단독주택은 투자 매력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최근 단독주택이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주택을 구매하는 데 투자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삶의 질’과 ‘자기만족’을 우선하는 최근의 경향이 반영된 결과다. 슈퍼리치들을 중심으로 ‘나만을 위한 집’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싶다는 욕망이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한남동·성북동 “가격 변동 크지 않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촌 중의 부촌, 한남동과 성북동이다. 국토교통부로부터 자료를 받아 2013년 1월 1일 기준 공시지가 상위 20위 주택을 살펴본 결과, 절반 이상의 주택이 바로 이 일대에 위치해 있었다. 1위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저택을 포함해 7개 주택이 이태원과 한남동이었으며 종로구 부암동과 가회동, 그리고 성북동에 주소지를 둔 주택 역시 6개에 달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이 자리 잡은 이 일대는 주택 거래가 워낙 드문 편이라 시세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더욱이 주택 규모나 내부 시설 등에 따라 주택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거래 가격의 변동 등 분위기를 감지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안민식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선임연구원은 “최근 몇 년 새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와중에도 이 일대의 단독주택은 큰 가격 변동 없이 조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로 보자면 최근 몇 년 새 거래 가격이 15%가량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에프알인베스트먼트에서 직접 시세 조사를 거쳐 이 일대의 평당 거래 가격의 평균값을 산출, 일대 단독주택 거래 가격이 최고가를 찍었을 2008년 당시와 비교한 결과다.

그러나 재벌가 저택들이 위치한 한남동과 성북동 중심과는 다르게 그 주변 지역으로는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불고 있다. 서촌과 북촌 지역의 한옥마을은 최근 2~3년 전부터 가격이 뛰어오르기 시작해 현재 2배 이상 높아진 상태다. 박합수 KB부동산팀장은 “한옥마을의 최근 시세는 평당 7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며 “하지만 일대가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돼 있어 리모델링이 어렵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남동 인근의 상권도 들썩이고 있다. 특히 이태원 지역은 최근 꼼데가르송길을 중심으로 한 상권이 급속도로 확대되는 추세다. 특유의 이국적 문화까지 더해지며 상가 투자에 관심이 높은 슈퍼리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최근에는 토지 가격 또한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서판교 단독주택은 젊은 부자들의 로망
한남동과 성북동이 전통적인 부촌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면 최근 젊은 부자들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부촌은 서판교다. 실제로 2013년 1월 1일 기준 공시지가 상위 20위 주택에도 경기도 성남시 분당 백현마을의 주택이 82억5000만 원으로 6위, 분당 운중마을의 주택이 66억6000만 원으로 15위에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상위 8위 주택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다. 2011년 플루티스트 한지희 씨와 재혼하면서 남서울컨트리클럽(CC) 인근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정 부회장의 간택을 받은 이후 판교 일대는 신흥 부촌의 이미지를 공고히 하며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남서울CC 인근에는 최고급 단독주택들이 잇따라 들어서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최고가 타운하우스 산운 아펠바움 앞에도 고급주택들이 속속 들어서며 고급 단독주택 단지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신흥 부촌이라 할 수 있는 서판교 단독주택은 한남동과 성북동 일대의 주택들과는 외형에서부터 내부 구조까지 상당히 다르다. 50~60대 이상의 나이 지긋한 최고경영자(CEO)들이 전통 부촌을 선호한다면, 서판교 지역은 30~40대가량의 젊은 CEO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장경철 한국창업정보원 이사는 “이 지역의 수요층들은 해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재벌 2세나 벤처 CEO들이 대부분”이라며 “녹지 비율이 높기 때문에 유학 시절과 비슷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어 선택했다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판교의 녹지 비율은 35%가량으로 일산(24%), 분당(27%) 등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높은 담과 넓은 마당으로 비슷비슷한 외양을 지닌 전통 부촌의 주택들과는 달리 집주인의 개성에 따라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건물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내부 구조에 있다. 집의 크기를 강조한 대형 주택보다는 전체적인 집의 크기를 줄여 소형화하면서도, 내부 공간을 효율적으로 구성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자신의 생활 패턴과 취향을 십분 고려해 실용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장 이사는 “최근에는 테라스형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넓은 마당을 따로 두기보다는 옥상을 활용해 테라스로 꾸미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 전망
수익형은 판교서 찾아라

[새바람 부는 럭셔리 주택 시장] 성북·한남 조용…서촌·북촌 인기몰이
안민석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선임연구원

단독주택 시장에서도 최근 뜨겁게 관심을 받는 곳은 단연 서판교 지역이다. 안민석 연구원은 “서판교는 최근 부자들이 선호하는 단독주택의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판교 일대 단독주택의 특징을 꼽자면 ‘소형화’와 ‘공동주택’이다. 안 연구원은 “판교는 단독택지 자체가 적기 때문에 듀플렉스 하우스나 캥거루 하우스 형태가 자주 눈에 띈다”고 전했다. 일명 ‘땅콩주택’으로 불리는 듀플렉스 하우스는 한 지붕 아래 독립된 두 가족이 거주하도록 설계된 집을 말한다.

그는 “판교의 경우 2006년 단독택지 분양을 시작한 이후 두어 차례에 걸쳐 이미 땅값이 많이 올라간 상태”라며 “이 때문에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단독주택에 투자하는 건 드물다”고 말한다. 그 대신 1~2가구가 함께 거주하는 공동주택 형태의 하우스를 통해 임대수익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 판교 일대의 단독주택 월 임대료는 대략 132~165m²를 기준으로 했을 때 150만~200만 원 정도다. 강남 중대형 빌라 임대료와 맞먹는 수준이다. 그는 “처음부터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대부분은 실거주를 우선으로 하지만, 굳이 임대수익을 마다할 이유는 없기 때문에 이 같은 형태의 주택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실제로 중소기업 CEO들 중에서도 듀플렉스 하우스 거주자들이 꽤 많다”고 귀띔했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