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적 유혹과 살인의 변주곡, 뮤지컬 시카고
극에서부터 영화 뮤지컬까지 각양각색의 문화 상품으로 둔갑하면서 32년간 대중을 사로잡은 작품이 있다. 맞춤옷을 갈아입듯 다양한 틀 안에서 치명적인 매력을 뿜어냈던 ‘시카고’가 그 주인공. 러네이 젤위거와 캐서린 제타존스, 리처드 기어 등 기라성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열연해 호평 받은 영화 ‘시카고’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제 ‘시카고’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와 줄거리쯤은 대충 꿰고 있을 정도다. 사실 시카고가 영화로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80년 전이다. 하지만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그 옛날 제작된 무성영화 시카고를 좀 더 섹시하게 가공한 ‘뮤지컬 시카고’를 논하지 않고선 1920년대 시카고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말할 수 없을 듯. 관능적이면서 퇴폐적인 매력으로 전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뮤지컬 시카고의 2007년 버전이 곧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최고의 뮤지컬 반열에 오르며 전 세계적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2007년산 뮤지컬 ‘시카고’가 9월 18일부터 9월 30일까지 2주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다.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 격동기의 미국, 그중에서도 농염한 재즈 선율과 갱 문화가 발달하던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관능적 유혹과 살인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뮤지컬의 신화적 존재인 밥 파시에 의해 1975년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그리고 1996년 연출가 월터 바비와 안무가 앤 레인킹에 의해 리바이벌 된 이 작품은 한층 진일보해 스타일리시한 뮤지컬의 대표 주자로서 비평가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카고’는 치열한 뮤지컬 경쟁 속에서도 항상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앞서 말했듯 시카고는 다양한 버전으로 대중 앞에 선보였다. 원작의 탄생은 이랬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였으며 희곡작가였던 모린 댈러스 와킨스가 1926년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쿡 카운티의 공판에서 영감을 얻어 쓴 연극 ‘시카고(원제: A Brave Little Woman)’가 시작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열광적인 호평이 바탕이 돼 1927년 무성영화 시카고와 1942년 극중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록시 하트(Roxie Hart)’가 연이어 제작되면서 빅 히트를 쳤다. 와킨스의 원작은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날카로운 풍자와 위트를 지닌 시카고는 언론과 사회의 속성에 대한 예지적인 시선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신화적 존재였던 밥 파시 또한 이러한 점을 놓치지 않았다. 1975년 그는 존 캔더와 프레드 엡과 함께 1920년대 시카고의 어두운 뒷골목에 관능적 유혹과 살인이라는 대중적 테마를 결합해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를 만들어 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위트 있는 가사와 재즈 특유의 매력적인 멜로디, 그리고 파시만이 표현할 수 있는 관능미 넘치는 안무는 이 작품의 진가를 확인해 주면서 대성공으로 이어졌고, 뮤지컬 시카고는 898회나 공연하며 1970년대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뮤지컬로 손꼽히게 됐다. 뮤지컬 시카고는 1997년 리바이벌 뮤지컬상, 연출상 등 6개 부문의 토니상을 수상하고, 1998년에는 영국의 대표적 공연물에 주는 올리비에상의 베스트 뮤지컬 제작상 등 2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뮤지컬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쓸며 전 세계적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시카고의 명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02년 영화로 제작돼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등 권위 있는 상들을 받으며 세계 극장가의 핫이슈로 떠올랐다.뮤지컬 시카고는 한국에서도 두 차례 공연돼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2000년 공연된 시카고 한국 초연은 인순이 전수경 최정원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공연해 당시 4000석에 육박하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2003년 영국 오리지널 팀의 내한공연은 영화 시카고에 열광하던 이들의 관심까지 더해져 큰 이슈가 됐고, 실력 있는 팔등신 배우들이 밥 파시 뮤지컬의 진수를 선보이며 수준 높은 무대를 선사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한국에서만 세 번째로 공연되는 뮤지컬 ‘2007 시카고’는 최정원 배해선 옥주현 성기윤 등 한국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과 오디션으로 선발된 수준 높은 배우들이 공연을 만들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공연을 위해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스태프들이 내한해 배우들 조련에서부터 무대 작업까지 참여했다. 특히 1996년 재공연의 안무를 담당한 앤 레인킹과 함께 작업한 게리 크리스트가 이번 공연의 안무가로 참여해 한국 배우들에게 밥 파시의 스타일과 콘셉트를 완벽하게 전수할 예정이다.1920년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와 표현 방식도 눈여겨볼 것.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던 1920년대 시카고는 거리엔 환락이 넘쳐나고 마피아가 지하 세계의 돈으로 도시를 장악했었다.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스타가 되길 꿈꾸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지만 당시에는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시가, 권총, 살인, 갱, 무법천지, 보드빌, 재즈, 애교 가득한 여성 등 당시 시카고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이 가득하다. 이처럼 뮤지컬 시카고는 시종일관 어두운 1920년대 미국의 현실에 국한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주제나 음악, 춤, 세트, 의상, 조명 등의 표현 방법은 현재 우리 한국의 이야기, 전 세계의 이야기로 해석해도 좋을 만큼 시사적이고 현대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을의 문턱에서 시카고의 오프닝 넘버 ‘앤드 올 댓 재즈(And All That Jazz)’의 선율에 몸을 흠뻑 적셔보는 호사는 누려볼만한 가치가 있다.공연일정 : 9월 18~30일(총 20회)공연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티켓예매 : 1588-7890, 1544-1555할인 내역: 평일 19, 20, 27일 3시 공연 20%, 학생 할인 (B, C석에 한함, 대학원생 제외) 20%김지연 기자 jykim@moneyro.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