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富와 야망

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억’ 소리 나는 갑부다. 현재 보유 재산만 55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치면 5조 원가량 되는 돈이다. 일부에서는 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는 대선 후보는 선거자금에 상한선이 없다. 개인 돈이라면 1조 원을 뿌려도 반칙이 아니다. 엄청난 자금력에 전국적인 인지도. 블룸버그의 야심이 ‘뉴욕 시장’에 그칠 것이라고 보기엔 장착한 무기가 너무 강력하다. 대선 후보군에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그런 그가 최근 공화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블룸버그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공적인 기업가는 정치 싸움보다 업적이 중요하며 경쟁력이 정당 이념보다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고 탈당 이유를 밝혔다. 언론은 그의 진의(眞意)를 파악하느라 머리를 싸맸다. 민주당과 공화당에 염증을 느낀 중도파 유권자들에게 던지는 ‘구애(求愛) 제스처’라는 해석이 곧 뒤따랐다. 정치권에선 그가 대통령에 출마할지, 출마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지, 그의 출마로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이 득을 볼지 등을 따져보느라 여념이 없다.일단은 그가 내년 초까지 대선 판세를 관망한 뒤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섣불리 무소속 배지를 달고 대선 판에 뛰어들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걸 블룸버그가 모를 리 없다. 텍사스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의 선례(先例)도 있다. 페로는 1992년 무소속으로 출마해 19%의 지지를 얻었지만 1등 후보가 주(州)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미국 대선 제도 아래서 단 한 명의 선거인단도 확보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대선처럼 후보군이 난립하고 양 진영에서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돈을 쓴다고 해도 헛일일 가능성이 높다. ‘무소속 후보’로서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후보군이 두 명으로 압축됐을 때 뛰어들어도 늦지 않다.두둑한 지갑 말고도 그가 믿는 구석은 또 있다. 뉴욕 시장으로 일궈낸 성과가 그것이다. 인구 800만 명의 거대 도시 뉴욕은 블룸버그 시장 취임 이후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냈다. 2003년 이후 15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났으며 뉴욕을 찾은 관광객은 30% 가까이 늘었다. 범죄 사고가 줄면서 지난 4년 동안 911 긴급구조 호출 건수는 100만 건 이상 감소했다. 60억 달러에 이르던 재정적자는 흑자로 돌아섰다.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위크가 최근호에서 블룸버그를 ‘경영의 시각에서 공직을 수행하는 리더의 전형’이라고 치켜세운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세계 1위의 경제 정보 서비스 업체 블룸버그의 회장에서 2002년 뉴욕 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에게 뉴욕은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었던 셈이다.블룸버그는 고객인 뉴욕 시민의 고충 처리를 위해 취임 직후 ‘24시간 핫라인’을 설치했다. 시민들의 불편 사항을 접수하는 이런 핫라인은 많은 지방 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지만 규모와 전문성에서 뉴욕을 따라오지 못한다. 전화 접수 인원만 500여 명에 이른다. 접수된 내용은 즉각 담당 부서로 전달돼 신속하게 처리된다.뉴욕 알리기에도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었다. 전임 시장 시절보다 세 배 정도 많은 2200만 달러를 마케팅비로 책정했다. 코카콜라와 월트디즈니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전문가 조지 퍼티타도 고용했다. 뉴욕의 관광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뉴욕 경제를 살리고 재정도 튼튼히 하는 첩경이라는 판단에서다. 전 세계 주요 도시 14곳에 뉴욕 홍보 사무실도 냈다. 곧 서울 도쿄 상하이에도 사무실이 추가된다. 이런 노력으로 뉴욕 관광객은 2002년 3500만 명에서 지난해엔 4400만 명으로 늘었고 2015년에는 5000만 명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상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도심 식당과 술집에서 흡연자를 몰아낸 것도 지금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재산세 인상도 그의 뚝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블룸버그는 뉴욕 시장 선거 때 지역 자산가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재산세 인상을 밀어붙이는 데 거칠 것이 없었다. 경기가 회복되고 나서는 주민들과 상인들의 세금을 13억 달러가량 깎아줬다.나무로 돼 있던 시청 회의실 문을 투명한 유리문으로 전부 교체해 누구든지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투명 행정에도 앞장섰다. 예산 보고 때는 각종 차트와 표를 동원, 전직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블룸버그의 이 같은 경영 혁신 모델은 에이드리언 펜티 워싱턴 시장을 비롯한 여러 다른 지방 자치단체 지도자들에게 벤치마킹 대상이 됐음은 물론이다.포천은 지난 4월 “마이클 블룸버그가 최초로 공개한 블룸버그의 매출이 47억 달러에 달했다”며 “블룸버그가 글로벌 뉴스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블룸버그의 지난해 운영 수익(세전)은 1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마진율은 30% 정도로 15%에 못 미치는 애플 등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우존스 로이터 등 라이벌 회사 어느 곳도 마진율이 20%를 넘지 않는다. 블룸버그는 TV 라디오 인터넷 출판 등으로 영역을 넓힌 미디어그룹 블룸버그의 지분 68%를 소유하고 있다. 뉴욕 시장에 당선된 뒤 절친한 친구인 피터 그라우어 현 회장에게 경영을 맡겼지만 여전히 배후 영향력은 막강하다.블룸버그 시장은 1942년 보스턴의 한 외곽 지역에서 태어났다. 존스 홉킨스대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1966년 살로먼브러더스의 증권 거래 중개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잘나가는 중개인으로 명성을 쌓던 그는 회사와의 불화로 해고됐다. 그의 성공 가도를 시기하던 사내의 적(敵)에 의해 밀려난 것이다. 쫓겨난 그의 수중엔 퇴직금 1000만 달러와 중개인으로서 갈고 닦은 컴퓨터 지식이 남아 있었다. 블룸버그는 이를 기반으로 ‘블룸버그 단말기’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온갖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이를 분석할 수 있는 도구도 함께 제공되는 ‘괴물’을 탄생시킨 것이다.뉴욕 맨해튼의 투자 전문가인 빌 맥앨로이는 당시 한 호텔에서 열린 블룸버그 설명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오래된 IBM 자판이 단말기에 연결돼 있었다. 호텔 시설이 엉망이라 설명회는 자꾸 중단됐다. 기계도 매우 원시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기계가 바로 ‘미래’라는 것을.”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블룸버그는 금융 정보 서비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e메일과 인터넷이 없던 시절, “시중에 떠도는 투자 관련 뉴스와 루머를 신속하게 취합 정리해 고객에게 전달한다”는 블룸버그의 아이디어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블룸버그 단말기는 곧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블룸버그의 추락했던 명성을 몇 배로 되찾아줬다. 그의 ‘작품’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손쉽게 만날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사무실에도, 서류 작업에 바쁜 변호사의 책상 위에도, 초대형 투자은행의 거물 펀드 매니저 집무실에도 블룸버그 단말기가 놓여 있다.물론 블룸버그 단말기의 방대한 정보량과 데이터 가공력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석가들도 있었다. 필요 이상의 정보가 오히려 사용자들의 기를 질리게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씨티그룹 전 회장 샌디 웨일이 “난 항상 씨티그룹 주가를 보여주는 화면에만 단말기를 고정해 놓는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메뉴로 넘어갔다가 자칫 원래 화면으로 되돌아오지 못할까봐 걱정된다는 얘기였다.그러나 일단 블룸버그 단말기를 사용한 고객은 ‘그 맛’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흡사 마약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단말기를 보지 않고 있으면 중요한 정보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동부의 한 대기업 경영진이 자사의 애널리스트 12명에게 블룸버그를 없애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1만8000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이유였다. 그 대신 1만5000달러의 보너스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12명 중 11명의 애널리스트는 블룸버그를 택했다.다우존스와 로이터 등 경제 정보 시장의 기존 강자들은 처음에 블룸버그의 단말기를 얕잡아 봤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절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작년 다우존스와 로이터의 매출은 각각 19억 달러와 25억 달러에 그쳤다. 반면 블룸버그는 47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둘이 합쳐도 블룸버그를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결국 로이터는 최근 172억 달러에 캐나다의 금융정보·미디어 업체인 톰슨 코퍼레이션에 인수됐다.사업가로서 이룰 것을 다 이룬 블룸버그의 시선이 옮겨간 곳은 정치였다. 9·11 테러 이후 뉴욕 시민의 우상으로 떠오른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이 건강 문제로 물러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목표가 정해지자 블룸버그는 무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마크 그린이 블룸버그에 앞서 뉴욕 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자, 당시 민주당원이었던 블룸버그는 당적을 공화당으로 옮겼다.그러나 선거 공약은 온통 민주당 성향이었다. 공화당 후보이면서도 사형 반대, 동성연애자 보호 등 민주당 색채를 띤 슬로건을 과감하게 내걸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뉴욕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든 것이다.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TV 광고 공세도 퍼부었다. 결국 줄리아니 시장의 공개 지지까지 이끌어내 시장 자리를 거머쥐게 됐다. 4년 뒤엔 재선에도 성공했다. ‘반(反) 부시’ 역풍이 불긴 했지만 뉴욕 시민들은 블룸버그를 선택했다.미국 정치권과 언론은 블룸버그의 이런 폭발력을 알기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블룸버그가 이번 대선에서 한두 개 대형 주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권력 공유 거래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종의 ‘정치적 알박기’인 셈이다. 남부럽지 않은 재력을 가진 블룸버그가 몇몇 주에만 유세를 집중할 경우 불가능한 시나리오도 아니다.블룸버그가 뉴욕(31표) 플로리다(25표) 캘리포니아(55표) 등의 대형 주에서 한두 곳의 선거인단을 확보한다면 몇 개 장관직 또는 이민법이나 의료보험법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의제에 대한 정책 결정 권한을 위임받을 수 있게 된다. 최근엔 블룸버그의 정치적 행보에 따라 세계 최대 금융 정보 회사인 블룸버그가 매물로 나올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언론사 오너라는 신분이 대권 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블룸버그는 자선 사업에도 열심이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폄훼한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동안의 기부금액이 1억6500만 달러에 달한다는 점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억만장자의 대권 도전’이 어떤 형태로 현실화될까.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안재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