슷한 시대 배경을 지니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입장과 처지가 극명하게 다른 것 같다.바로 한국과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이 그들이다. 먼저 미국의 예를 들자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쟁터에 나가 있던 남자들이 일시에 귀국하자 미국 전역에서는 갑자기 출산율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추세는 미국이 다시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게 되는 시점까지 계속됨으로써 미국의 베이비부머 시대를 역사 속에 남게 됐는데 이들이 바로 1946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다음은 한국을 예로 들어보자. 동족간의 전쟁을 치른 한국은 1953년 휴전 후 젊은 군인들이 속속 고향으로 복귀하기 시작한 1955년부터 역시 출산율이 급격히 증가해 한국판 베이비붐 시대를 열었다. 부족한 식량난 속에서 날로 늘어나는 인구를 걱정한 정부는 급기야 산아제한 정책을 쓰기에 이르고 한국 역시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게 되자 1964년부터 출산율은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다.그러니까 미국은 20년 가까이, 한국은 10년 가까이 출산 붐을 이루는 베이비붐 시대를 맞이했었다. 일본도 비슷한 시기에 이른바 ‘단카이 세대’라는 베이비부머들이 있다. 그런데 이제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베이비부머들이 나라에 따라 너무도 다른 처지에서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과의 차이는 매우 대조적이다.이미 20년 가까운 장기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은 저금리 저달러 정책의 효과 속에 1989년 즈음부터 국민들의 재산이 급속히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로 55세 이상 국민들이 가장 많은 부를 가지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바로 베이비부머들이다. 약 80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베이비부머들은 지금 생애 가장 많은 부를 쌓아 놓은 가운데 정부가 주는 복지 수당도 최고치에 달하는 연령대에 이르고 있다. 이들 중 고령자들은 61세, 가장 젊은 세대들은 41세로 선두부터 본격적으로 은퇴 후의 실버 세대로 들어가고 있다.미국은 이들 세대와 이후 세대의 빈부 격차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20대, 30대, 40대들이 바로 이들과 비교되는 세대들이다. 원래 미국은 전통적으로 57세에 가장 소득이 많고 63세에 가장 재산이 많은 나라였으며, 지금 베이비부머들까지는 그런 세대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 이후는 사정이 크게 다르다.그런데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46세에서 54세 사이에 가장 소득이 높고 54세에서 59세가 가장 재산이 많은 사회였으나 정작 베이비부머들부터 깨어지기 시작해 현재 소득의 정점이 30대 후반으로, 재산의 정점은 50세 전후로 넘어가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의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인생의 정점에서 국가적 재난을 만나 돌연한 실직과 사업 실패, 그리고 신용 불량 등으로 가장 노릇도 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요즘 주택 가격 상승이나 주가 상승은 이들과는 너무 거리가 먼 얘기다.미국은 노년기에 접어드는 베이비부머들 때문에 젊은 층과 빈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면, 한국은 베이비부머들이 빈부 격차의 희생양이라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그러고 보면 지금 미국의 베이비부머들에겐 소비와 투자가 미덕이라면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에겐 일과 저축이 미덕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러면 요즘 우리의 주식과 아파트는 주로 누가 사고 있다는 얘긴가.엄길청경기대 교수 /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