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규칙은 1조에서 34조까지 골퍼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을 조목조목 규정하고 있는데, 코스가 비정상적일 때는 그에 덧붙여 ‘로컬 룰’을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로컬 룰은 어디까지나 코스가 정상이 아닐 때 제정하는 것이고 본 규칙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 일종의 ‘예외’일 따름이다. 그런데 예외가 너무 강조된 나머지 골프의 ‘본령’이 흐트러지는 일이 자주 생긴다. 예컨대 볼을 똑바로 보낸 골퍼와 비뚤어지게 보낸 골퍼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 차이를 무력화하는 시도를 로컬 룰로 제정하는 골프장이 있다. 또 오로지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로컬 룰을 악용하는 골프장도 있다. 모두 ‘명문’ 골프장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몇 가지 사례를 모아봤다.골프장에는 화단이 많다. 그 화단은 대부분 페어웨이 밖에 있다. 그런데도 볼이 빗맞아 화단에 들어갈 경우에도 로컬 룰로 ‘구제’를 허용하는 골프장이 많다. 어떤 골프장은 ‘1년생 화초’가 있는 화단은 구제를 받도록 하고, 다년생 화초가 있는 화단에서는 구제를 허용하지 않기도 한다. 골프장마다 다르고 화단마다 다르니 골퍼들로서는 헷갈릴 수밖에 없고 매번 로컬 룰을 확인하거나 캐디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물론 막 심은 꽃을 보호하기 위해 무벌타 드롭을 허용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러다 보면 볼을 그곳으로 보낸 골퍼에게도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는 모순을 안게 된다. 볼을 잘못 쳐 화단으로 가면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받도록 하는 것이 골프의 기본 정신에 부합한다. 화단에 대한 로컬 룰을 아예 제정하지 않으면 된다. 화단을 ‘애지중지’하다 보니 거리를 표시하는 ‘살아 있는 나무’ 아래에 볼이 멈출 경우에도 구제를 허용하는 곳도 있다. 최근 E골프장에서 경험한 일이다. 캐디가 잘 못 안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었다.강원도 A 골프장과 충청북도 B 골프장은 볼이 페어웨이를 벗어나 러프나 경사지에 멈추면 무조건 ‘워터 해저드’ 처리를 하도록 로컬 룰을 정해 두었다. 해저드이므로 볼을 찾으면 칠 수도 있으나 볼을 찾지 못할 경우에도 해저드 처리를 한다. 볼을 못 찾으면 분명히 로스트볼 처리를 하고, 그러면 2타에 해당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해저드 처리를 할 경우 1벌타만 받고 그 옆에서 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모두 골프장 측의 편의를 위해 만든 로컬 룰이다. 러프에 들어간 볼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고, 그러다 보면 진행이 밀리기 때문에 친절하게도 해저드 처리를 하도록 한 것이다. 볼을 러프에 보낸 골퍼들은 그 상태에서 치거나,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행태다.경기도의 C, 전북의 D 골프장에 가면 홀 주변에 흰 원을 그려놓았다. 반경 60cm 정도 된다. 이른바 ‘OK존’이다. 볼이 그 안에 멈추면 다음 스트로크로 홀 아웃한 것으로 ‘공식’ 인정해 주는 것이다. 골프장 측이 앞장서 스트로크를 면제해 주는 규칙 위반을 자행하고 있는 것. 물론 진행을 빠르게 하기 위한 편법이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친선 라운드에서 ‘기브(OK)’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동반자들끼리 합의해 정하는 것이 순리다. 상황에 따라 기브가 되고 안 되는 일도 있다. 급격한 내리막이라면 퍼트 거리가 30cm라도 기브를 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홀 주변에 그어진 백색 선을 보면 그 골프장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일단 기분을 잡쳐버리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이른바 ‘OB 티’나 ‘해저드 티’도 모자라 OB 말뚝을 촘촘하게 박아놓은 곳이 많다. 티잉 그라운드에 서면 페어웨이 양 옆의 흰 말뚝이 눈에 쫙 들어온다. 골퍼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진행을 위해 규칙에도 없는 OB티를 설치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골프장에서는 골퍼들 스스로 ‘티잉 그라운드에서 다시 치겠다’고 우겨야 한다. 그래야 OB티가 없어진다. OB 말뚝을 카트 도로를 갓 벗어난 곳에 촘촘히 박아두는 것도 순전히 진행 때문이다. 골퍼들은 볼이 뻔히 보이는 데도, 얼마든지 칠 수 있는 데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OB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골프장 측을 욕하지 않는 골퍼가 있을까. 골프장 측이 골퍼들의 이런 기분을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그처럼 OB 말뚝을 페어웨이에 근접하게, 그리고 촘촘하게 박아 놓지는 않을 것이다.김경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