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부동산 시장이 ‘시계 제로’다.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주식시장의 활황은 부동산 시장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다. 지난 수년간 막대한 부동자금의 유입으로 불패 신화를 쌓아 왔던 부동산 시장은 주식시장이 뜨거워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심리는 복잡다단하다.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고 해서 투자 패턴을 다른 곳으로 바꾸기 쉽지 않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은 큰 조정 없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간 ‘화수분’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올 하반기는 우리나라 주택 정책 역사상 중요한 시기다. 일단 9월 이후부터는 지난 28년간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수단이었던 청약 제도가 완전히 바뀐다. 주택 시장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나 다름이 없다.아파트 청약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주택 공급 시스템이다. 청약 제도가 바뀐다는 것은 국내 주택 시장이 앞으로 새 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청약 제도 개편안을 숙지해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부동산 투자의 시작이다.바뀐 청약 제도 개편안의 요지는 ‘값싼 주택을 무주택자 등 서민들에게 우선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청약 제도는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 통로였지만 9월부터 실시되는 개선안에는 무주택자들의 기회를 더욱 넓혀 주택 시장의 안정을 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무주택자 외에도 정부는 부양가족이 많고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긴 사람들에게도 청약 문호를 넓혀줄 방침이다<표 참고>.9월은 분양 시장에선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는 만큼 수혜를 보는 무주택자들은 이후부터 공급되는 서울, 수도권의 신규 분양 아파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파주신도시 등 택지지구에서 공급되는 아파트는 9월 이후부터 분양에 들어간다.반대로 유주택자들은 9월 이전에 공급되는 분양 물량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건설사 입장에서 볼 때 9월부터는 새 청약 제도 개편안의 시행으로 청약경쟁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당수 건설 업체들이 제도 시행 이전에 유망 지역의 분양 물량을 시장에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7, 8월 두 달간 전국적으로 10만8714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남양주시 진접지구에서 5927가구가 분양되며 양주시 고읍지구는 3556가구, 용인시 흥덕지구도 1636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기존 주택 시장은 상반기와 마찬가지로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국지적인 상승은 있겠지만 시장 전체로 확산되기는 역부족이다. 우선 9월 청약 제도가 개편되는 것과 맞물려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된다. 택지지구에만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는 ‘고분양가→주변 집값 상승→고분양가’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부는 8월 31일까지 사업 승인을 접수하고 11월까지 분양 승인을 받은 뒤 연말까지 분양하는 단지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단지들이 강세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시장 전체를 좌지우지하기는 역부족이다.하반기 주택 시장을 약보합으로 전망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반기에 비해 나아질 호재가 없다는 점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중과와 재건축 규제 등 각종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상반기 주택 시장은 지난 5년 중 최초로 집값이 하락한 시기로 기록됐다. 부동산 정보 제공 업체인 스피드뱅크가 2007년 상반기(6월 23일 기준) 서울·수도권아파트 값(재건축 아파트 제외)은 서울 0.69%, 경기 0.17%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도 서울은 1.72%, 경기는 2.06%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스피드뱅크 김은경 팀장은 “정부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공개해 보유세 부담이 현실화하면서 전체적인 시장 분위기가 악화됐고 분양가 내역을 공시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건축 단지들의 낙폭이 컸다”고 분석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에서는 송파구가 마이너스 7.34%로 내림 폭이 가장 컸고 △강동구(마이너스 6.47%), △강서구(마이너스 4.45%), △관악구(마이너스 4.36%), △강남구(마이너스 3.19%), △금천구(마이너스 2.06%), △서초구(마이너스 1.87%) 순으로 내림세를 나타냈다. 신도시는 중동신도시(0.94%)를 제외하고는 산본(마이너스 1.99%), 평촌(마이너스 1.41%), 분당(마이너스 1.19%), 일산(마이너스 0.90%) 모두가 하락세를 기록했다.물론 부동산 불패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여전하다는 것은 하반기 상승 전망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최근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과 중개업소 관계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하반기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물은 결과 10명 중 6명이 ‘아파트 값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연말 대통령 선거와 강남권 등 유망 지역의 입주량 감소도 집값 상승 기대 요인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수급에 대한 불안은 지난해부터 시장에 어느 정도 반영됐기 때문에 올 하반기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적다. 대통령 선거들을 앞두고 각 선거캠프가 각종 개발 계획을 쏟아내 집값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것도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오히려 잘 다듬어진 공약을 내지 않을 경우 집값을 부추긴다는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막대한 표를 가지고 있는 무주택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라도 참여정부의 부동산 기조는 차기 정부에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강남권의 급매물이 모두 소진됐다고 해도 이것이 추가 매수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기는 힘들다”며 집값 하락에 무게를 뒀다.전세가 역시 약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몇 년간 학군 수요 등의 이유로 강세를 기록했던 강남권은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신규 입주 물량 등의 영향으로 약보합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올 하반기에는 송파구에서 5138가구, 강동구에서는 1622가구가 입주에 들어간다.그렇다면 이대로 부동산 시장은 가라앉는 것일까. 금융권의 PB(프라이빗 뱅커)들은 수익형 임대 사업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강남의 모 PB센터 관계자는 “요즘 들어 50억~100억 원짜리 소규모 상가, 오피스 빌딩을 찾아달라는 고객들의 주문이 많다”면서 “장기 투자에 적합한 토지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별로는 도시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경기 용인, 광주, 이천과 제2영동고속도로 개발에 따른 호재가 예상되는 남양주, 양평, 가평 등지가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단지 내 상가와 같이 임대가 잘되는 상품도 꾸준한 사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지난 1~5월 대한주택공사가 분양한 상가는 155개였고 예정가 대비 낙찰가율은 131%에 달했다. 지나치게 높은 낙찰가를 염려해야 할 수준이다. 배후단지를 잘 확보한 택지지구 근린상가도 투자용으로 적합하다. 반면 테마상가는 공급 과잉에 소비 심리 위축으로 하반기에도 심각한 투자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해외 부동산 투자는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루티즈코리아의 이승익 사장은 “시세 차익보다는 은퇴 이민, 자녀 교육 등 실수요용으로도 쓸 수 있는 상품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