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 중 우리 생활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예술이 음악이다. 굳이 음악회를 찾지 않아도 잔칫집, 선술집, 야외나 집 등 어느 곳에서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음악은 때와 장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림이 할 수 없는 부분이다.음악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가장 많이 준 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과 예술적 영감의 관계를 잘 나타낸 작품이 티치아노(1490~1576)의 ‘비너스와 오르간 연주자’다. 이 작품은 누워 있는 나체의 여신을 테마로 한 티치아노의 일련의 작품의 연장이다. 작품 속에서 비너스는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다. 소파에 길게 누워 있는 비너스는 큐피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고 음악가는 손으로는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시선은 비너스의 은밀한 부위를 향하고 있다. 비너스의 방에서 열린 창문 뒤로 보이는 분수는 남성을 상징한다. 그 옆 나무 아래에서 한 쌍의 연인은 포옹하고 있다. 그것은 음악가가 비너스를 사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티치아노는 이 작품에서 자연과 음악을 어울리게 표현하기 위해 오르간의 파이프와 나무를 일렬종대로 세워 놓았다. 또 음악가의 모습은 당시 스페인 국왕 필립 2세를 닮았다고 하는데 이는 이 작품이 필립 2세를 위해 제작한 것임을 말해준다.노래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같은 노래라도 어떤 음색으로 불렀느냐에 따라 다가오는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심정을 불러주는 대중 스타에게 열광하게 된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의 ‘관객에게 답례하는 이베트 길베르’는 바로 이런 대중 스타를 그린 작품이다. 이베트 길베르는 19세기 물랭루주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가수다. 그녀는 오늘날 자크 브렐, 레오 페레, 조르주 브라상, 에디트 피아프 등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샹송 레알리스트’ 계열의 가수다.로트레크는 길베르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숭배했다. 그녀는 항상 무대에서 밝은 드레스에 검은 장갑을 끼고 노래를 불렀다. 너무나 가난한 그녀에게 가격이 싼 검은 장갑은 자신의 우아한 외모를 강조하기에 더 없이 좋은 소품이었고 로트레크는 길베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녀만의 독특한 특징을 잡아 독자적인 표현방식인 ‘실루엣’ 기법으로 표현했다. 로트레크는 길베르를 드로잉, 구아슈, 석판화 등으로 그렸다. 또 그녀를 위해 포스터까지 계획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하지만 정작 길베르는 자신을 숭배해서 아름답게 그려주었던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다르게 로트레크가 그린 자신의 모습을 처음에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약간 우스꽝스러운 듯한 외모로 표현돼 있는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후에는 길베르 역시 로트레크의 예술성을 신뢰하게 됐다. 로트레크야말로 그녀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화가였기 때문이다.로트레크는 길베르에게 바치는 단색 판화집 연작도 제작했는데 이 화집은 무대 위에서 길베르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실루엣 중심이었다. 길베르는 이 같은 로트레크의 그림 때문에 당대의 스타를 뛰어넘어 불멸의 이름을 얻었다. 현재까지 그녀의 녹음테이프와 필름이 보존돼 있지만 로트레크의 화집 속에 남아 있는 모습만큼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없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그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한다. 잘하든 못하든 음악 속에 빠져 들어 하나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은 다정하게 두 자매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정경을 그린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매간의 사랑을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표현했다.이 작품은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 동생을 곁에서 다정하게 지켜보고 있는 언니의 표정이 대조를 이루면서 음악적 효과를 주고 있다. 르누아르 특유의 부드러운 색채로 두 소녀의 옷차림, 피아노 위의 꽃병, 보면대(music stand) 옆의 촛대 등 당시의 상류층 집안의 취향을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르누아르는 특히 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이는 그가 음악가들을 동경하고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도 이 작품은 당시만 해도 상류층에게만 허용됐던 피아노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상류층의 호화로운 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티치아노 ‘비너스와 오르간 연주자’--1548년께, 캔버스에 유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1892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