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원작 ‘향수’에 그려진 조향사

'향수’가 극장가와 서점가 두 곳에서 뜨고 있다. 이를 계기로 ‘조향사’라는 직업도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향수’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린, 말 그대로 스테디셀러다. 이 소설은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글을 읽다 보면 1700년대의 파리 정경이 책장마다 가득히 떠오른다- 충격적 결말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지만 향수 자체의 매력도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영화 역시 이런 텍스트의 감동을 완벽히 스크린에 옮겨놓고 있다.프랑스에서 향수가 가장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예술의 도시 파리가 아이로니컬하게도 당시 유럽에서 가장 더러웠기 때문이다. 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영화에 나오는 온갖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파리의 생선 시장을 떠올려보라. 그래서 조향사는 지구상의 가장 더러운 도시에 살지만 가장 사치스러운 당시 프랑스 귀족들의 향락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었다. 영화의 주인공 그루누이의 직업은 조향사다. 얼마 전 소리 소문 없이 종영됐으나, 김희선과 이동건이라는 두 청춘스타가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화제가 됐던 ‘스마일 어게인’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이동건의 직업도 조향사였다. 드라마는 트렌드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드라마 속에 나오는 직업도 역시 ‘뜨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과연 조향사는 향에 관해 선천적으로 타고나야만 될 수 있는 직업일까. 이 주장은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깝다. 냄새의 예술가로 불리는 세계적인 조향사 에드몽 루드니트스카는 조향사란 기술적인 지식과 예술적인 심미안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즉 향수 자체를 만들기 위해선 화학을 전공해야 함은 물론이고, 아름다운 향기에 관한 예술적 후각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조향사가 되기 위해선 프랑스나 스위스 혹은 일본의 조향스쿨로 유학을 떠나야 했으나 이제는 국내에서도 그 못지않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향사가 되기 위해선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인내심이 필수라는 것이다. 조향사가 되기 위한 과정은 최소 3년이란 시간이 소요되고,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일례로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명한 향료회사인 ‘퍼메니시(firmenich)’는 10년 과정의 조향사 교육과정을 두고 있는데 수시로 성취도를 평가해 기준치를 넘기지 못하면 바로 퇴교시켜 버린다고 한다.대부분의 조향사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진로를 택하게 된다. 하나는 바로 기업체의 향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는 것이다. 향을 필요로 하는 회사는 많다. 화장품 관련 회사와 식품회사, 그리고 향수 회사 등이 필요로 하는 인원은 국내에서 활동 중인 조향사의 숫자보다 많다. 수요보다 공급이 적으니 몸값이 치솟는 건 당연한 경제 원리다. 다른 하나는 바로 프리랜서 조향사다. 그들은 개인이 주문하는 향을 조합하기도 하고, 조향 스쿨에서 강의를 하기도 한다.자료에 의하면 국내에는 100여 명의 조향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어느 정도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높은 단계의 조향사들은 대략 20~30명 선이다. 이들 정도의 레벨에 이르면 고소득 전문 직업에 준하는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프리랜서 조향사의 경우에는 평균 월 4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며 굵직굵직한 명품 향수 업체에 소속된 디렉터급의 조향사의 연봉은 수십억 원대에 이른다.이런 조향사들의 노력의 산물인 향수 중 가장 비싼 향수는 얼마일까. 기록에는 조이(JOY)라는 이름의 향수가 30㎖에 375달러로 가장 진귀한 향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이는 대량 생산되는 경우이고, 개인이 오더하는 특별한 향수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비싸다. 마릴린 먼로는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직 샤넬 NO.5만 걸친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향수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물건이다. 하물며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는 그 얼마나 매혹적인 직업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