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라고 하면 신화 동화 전설이라는 단어부터 떠오른다. 그리스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필자의 마음은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적 만화 속 그리스를 여행하는 꿈을 꾸던 시절로 돌아가는 듯했다. 학창시절 책에서나 읽었던 신화의 무대, 신들의 신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태양의 신 아폴론, 사랑과 미의 신 아프로디테가 뛰어 놀던 그리스는 필자에게 신비롭게 다가왔다. 인류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이 처음으로 열렸던 곳, 혹독한 교육으로 유명한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전쟁 등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지닌 그리스는 유럽 여행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로 2004 프로축구에서 당당히 개최국 포르투갈을 꺾고 우승하면서 파란을 일으킨 나라, 그래서 더욱 친숙해진 그리스(Greece). 그곳으로 떠난 여행이기에 그 어느 곳보다 설렘으로 가득 찼다. 비행기는 어느새 그리스의 심장부인 아테네 국제공항에 다다르고 있었다. 창 밖에는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도시 아테네가 한눈에 펼쳐졌다.비가 왔었는지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아테네의 모습은 샤워를 막 마친 듯 촉촉이 젖어 있었다. 기내 방송이 아테네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잠시 눈을 감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아마도 20시간 이상의 비행으로 인한 피곤함과 마음속으로 동경하던 나라, 그리스에 도착했다는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기 때문이리라.드디어 그리스에 도착했다. 낯설고 익숙지 않은 나라, 하지만 늘 꿈꾸던 나라. 제우스신을 찬양하던 위대한 문명은 올리브 밭 가운데 주춧돌만 남긴 채 사라지고 지금의 아테네는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노천카페에서 즐기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여유와 낭만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아테네에서의 여행을 짧게 마치고, 본격적인 그리스 여행으로 들어갔다. 그리스 여행의 꽃은 에게해에 퍼져 있는 섬들을 둘러보는 일이다. 바다 한가운데 퍼져 있는 조그만 섬들은 천혜의 기후와 눈부신 햇살 아래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주 찾는 세계적인 휴양지가 됐다. 에게해의 중심은 39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키클라데스(Cyclades) 제도다. 가장 큰 섬인 낙소스 섬을 비롯해 파리 루브르미술관의 수많은 미술품 중 가장 인기가 있는 조각상 비너스가 발굴된 밀로 섬, 한때 고도의 미노아 문명을 이루었던 크레타 섬 등 수많은 섬들이 각자의 매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에게해의 섬’ 이미지를 가장 잘 보여주며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섬은 단연 산토리니 섬이다.아테네에서 배를 타고 5시간가량 갔을까. 산토리니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에서 바라보는 산토리니 섬은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하나의 커다란 요새와 같은 느낌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몇 시간째 바다를 표류하다 우연히 발견한, 안개가 자욱한 절벽 위에 독수리 몇 마리가 날아다니는 듯한, 그런 신비로움을 주는 섬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섬에 가까이 갈수록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은 뱃머리로 나와 그 광경에 압도당한 듯 그저 섬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산토리니는 전설 속 아틀란티스 제국이었다는 설을 간직한 섬이다. 아틀란티스는 기원전 9000년께 고도의 문명을 지닌 제국으로 원인 불명의 이유로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 제국은 전설로만 남고 사람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는데, 그 후 몇 천 년이 흐른 뒤 철학자 플라톤이 저서 ‘대화편’에서 꿈의 제국 아틀란티스는 화산 폭발로 인한 대지진과 홍수로 사라졌으며 그곳이 현재 산토리니 섬 근처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니 어느덧 배는 선착장에 도착해 있었다.산토리니의 고대 명칭은 ‘티라’다. 이름에서부터 마치 몇 천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으며, 꿈에 그리던 산토리니에 드디어 입성했다. ‘정말 이곳이 사라진 전설의 제국 아틀란티스가 아닐까.’산토리니의 아침이 밝았다. 너무나 눈부신 지중해 아침 햇살에 절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장기간의 여행으로 인한 피곤함에 감동도 잠시 뒤로 미루고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잠이 들었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 창문을 여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필자는 절벽 한가운데 공중부양을 한 듯 있었고 눈앞에는 강렬한 햇살과 함께 코발트 빛 지중해 바다 그리고 화산섬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아침부터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어젯밤 산토리니의 대표적 호텔인 절벽 호텔에 체크인한 것은 기억이 나는데 정작 경치는 보지 못하고 호텔 방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절벽에 위치한 산토리니의 명물 호텔인 이곳 절벽 호텔에서 바라보는 지중해와 화산섬의 경관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준다.필자가 머무른 호텔은 아이콘 호텔(ICON Hotel)로 산토리니의 중심 피라 마을에서 자동차로 약 5분 떨어진 이메로비글리(Imerovigli)에 위치한 아름답고 멋진 부티크(Boutique) 호텔 중 하나다. 고급스러운 황토색과 회색으로 어우러진 호텔의 분위기는 산토리니의 하얀 건물들 사이에서 엄숙하고 차분한 느낌을 줬다. 전 객실이 수공으로 제작된 가구들과 잘 정돈된 리넨, 불가리 목욕 제품, 그리고 완벽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어 투숙객에게 만족감을 주며, 최고의 온갖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객실의 정면으로는 신비의 화산섬과 지중해 바다를, 왼편으로는 아름다운 피라 마을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아름다운 산토리니의 석양을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는 최고급 레스토랑도 갖추고 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지중해 바다와 화산섬을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즐기는 필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산토리니 여행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산토리니 여행의 시작은 중심 지역인 피라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사진에서나 보았던 하얀 벽에 청색의 대비가 아름다운 건물들이 미로처럼 촘촘히 이어진다. 지금은 산토리니의 얼굴이 된 이 색채의 유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옛날 그리스가 오스만투르크와 베네치아 왕국의 지배를 받을 때 그리스인들은 식민 통치에 대한 항거로 자신들의 집을 국기의 십자가 색인 백색으로 칠했고, 창문 등은 또 다른 색인 청색으로 도색했다. 영원한 조국애의 표현이다. 그 후 백색과 청색은 건축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장식과 인테리어에 적용돼 하나의 그리스 섬 트렌드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런 항거의 표현이 지금은 산토리니의 얼굴이 돼, 그 아름다움에 전 세계 관광객들은 넋을 잃고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산토리니 여행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렌터카가 아닐까 싶다. 제주도의 3분의 1만한 크기인 산토리니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은 렌터카로 아름다운 섬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닌다. 여유가 된다면 오픈카로 호기를 부려 볼만도 하다. 차를 빌려서 떠난 곳은 피라 마을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산토리니 섬 북단의 이아(Oia) 마을이다. 아름다운 하얀 벽, 하늘색 지붕의 집들과 그리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들, 그리고 마을 구석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상점들, 모 음료의 CF 촬영지로도 유명해진 곳, 과연 산토리니를 대표할만한 마을이다. 거미줄 같은 골목골목을 다니며 사진을 찍다 어느 한적한 카페에 들어섰다. 산토리니는 와인으로도 유명하다는 주인 얘기에 와인 한 잔을 시켰다.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 바다의 파노라마와 화산섬 그리고 산토리니산 와인, 필자는 순간 ‘이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하루가 저물어 갈쯤 많은 사람들이 이아 마을의 석양을 보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붉게 물든 태양이 푸른 지중해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저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이아 마을의 석양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정말 아름다운 장관이 아닌가 한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석양이 또 있을까…. 그 엄숙하고도 성스럽기까지 한 석양을 바라보며 산토리니 여행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