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세상이 꽃 천지다. 아이들과 계룡산으로 소풍갔다 오는 길목, 벚꽃 진달래 살구 복숭아나무마다 꽃송이를 가득 매달고 자연이 봄을 즐긴다. 자연은 봄이 좋아라하지만 꽃그늘 아래 걷는 나도 봄이 좋다.은해사(銀海寺) 가는 길, 영천 들녘 남촌서 불어오는 아지랑이 봄바람이 연분홍 복사꽃을 더욱 화사하게 만든다. 푸른 빛 산천에 무릉도원이다. 꽃나무에 다가가 자세히 보니 가지마다 진달래보다 더 연한 분홍색 꽃잎을 달고 있고, 어린 가지 끝에는 삼지창 같이 삐죽 새순을 내밀고 있다. 연분홍과 연두의 보색 대비가 새색시 치마저고리 같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을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 봄날은 간다.’ 절로 흥이 난다.거조암, 五百羅漢의 추억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면, 팔공산 동쪽에 있는 은해사는 신라 헌강왕 1년(809) 적인선사 혜철국사가 창건했다. 현재 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 산내 암자만도 운부암(雲浮庵) 거조암(居祖庵) 기기암(寄寄庵) 백흥암 등 여덟 개를 거느린 큰 절이다.언젠가부터 백흥암 수미단(須彌壇)이 보고 싶고, 추사의 주련이 걸린 요사에 머무르면서 선방 툇마루에 앉아 꽃잎이 지고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도 싶었다. 1970년대 대학시절, 은해사 하면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은 거조암 오백나한이었다. 지금처럼 절집 규모를 반듯하게 갖추기 전 어느 봄날, 서울서부터 종일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흙먼지 덮어쓰며 거조암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때도 지금처럼 복사꽃이 만발했다.국보 제14호 영산전이 당당했고, 앞 두 칸짜리 요사의 고풍스러움이 다정했다. 암자 앞마당에 무심하게 놓인 소박한 삼층석탑이 아름다웠다. 영산전 안에는 오백나한상이 가득하다. 산중화엄법회를 하는 듯하다. 왁자지껄함이 아우성으로 바뀐 듯 표정들이 밝다. 화강암을 조각해 호분을 칠하고 당채를 입힌 나한들을 빨간 좌복 위에 줄을 지어 놓았다. 점잖은 자세에 참선삼매에 빠져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눈을 지긋 감고 염주를 돌리며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어떤 나한은 몸을 기울여 옆에 앉아 있는 나한에게 한 소식을 전하기라도 하듯 속삭이고, 누구는 크게 웃고 있기도 한다. 귀지를 후벼내며 얼굴을 찌푸리는가 하면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는 표정도 있다. 어묵동정(語默動靜)이 천태만상(千態萬象)이지만 모두 길은 같다.백흥암, 오래된 절집의 풍상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869) 암자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 백지사(栢旨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됐다. 그 후 조선 명종 1년(1546) 천교화상이 현재의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은해사에서 팔공산에 이르는 산세가 용이 승천하는 기세이므로 백흥암 너머 운부암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더욱 많이 일어나 용의 승천을 돕도록 한다는 뜻으로 일백 백(百) 흥할 흥(興), 백흥암이라 이름 지었다.백흥암 오르는 산길, 초록이 싱그럽다. 산벚꽃이 한창이다. 진달래 꽃잎이 솔숲 사이 점점이 박혀 봄 산의 정취를 더한다. 한참을 오르니 남향으로 아늑하게 자리한 백흥암이 눈에 들어온다. 고졸하다. 오래된 절집의 풍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요, 선원이다. 절 앞 툭 터진 산비탈에 반달 같은 채마밭에서 울력을 마치고 돌아오는 스님들의 발걸음이 가볍고 조심스럽다. 절집 가풍의 엄격함이 묻어난다. 선원장 노스님께 인사드리고 찾아온 내력을 말씀드렸다. 백흥암은 일년 중 초파일을 제외하고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다. 수행에 방해가 되는 일체의 행동을 삼가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 말고라도 백흥암 사찰 유적과 유물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백흥암은 한 송이 꽃 같은 절이다. 사찰 전체가 보물이요,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이다.극락전, 사찰건축의 백미백흥암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추녀를 길게 뽑아내 보는 이의 눈 맛을 시원하게 한다. 1673년 중건했다. 보물 제790호. 극락전 수미단은 조선시대 수없이 많이 설립된 사찰 건축의 불단 중 백미다. 국가 지정물은 일반적으로 건물만 지정하는데 비해 이곳 수미단은 그 불단의 조성과 양식이 수려하고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해 불단만 따로 분리해 보물 486호로 지정했다. 여기에 더해 극락전 후불탱화와 삼존불, 감로탱화 및 명부전 영산전 산신각의 시왕과 동자상 탱화와 나한상, 그리고 산신도 등 귀중한 유물들이 가득하다.백흥암에는 언뜻 보아서는 단청이 보이지 않는다. 극락전 외부 다포와 서까래에 고색 단청이 있지만 눈에 선뜻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극락전 외부 공포와 내부 단청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해 그 장엄한 맛을 다른 요사나 전각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보화루 누각 아래 어간을 지나 계단을 몇 개 오르면 정갈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전각들이 두 눈에 가득 들어온다. 극락전 지붕 추녀가 길게 교차하며 서 있는 모습에서 산중의 전각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중후한 멋이 풍긴다. 궁중 건축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고, 전형적인 사대부 종가 ‘ㅁ’자 집을 보는 듯도 하다. 사방에 건물을 두고 마당을 중심으로 추녀를 맞대고 있어 기운을 가운데로 오롯이 모은다. 그래도 답답하지 않다. 건물들이 모두 한 채씩 독립돼 있어 건물 측면으로 자연스럽게 옆 건물 통로로 이어지게 구성됐기 때문이다. 심검당 후원 굴뚝이 소나무 그림자와 어우러져 장관이다. 암키와를 켜켜이 내어 진흙으로 쌓아올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여염집 후원을 보는 듯하다.사시(巳時) 봄 햇살이 마당 가득 내린다. 아침마다 스님들이 대나무 빗자루로 청소한다. 차분히 머리카락 빗질하듯 쓸어내린 자국이 극락전 마당에 반듯하게 남아 있다. 흔적 그 자체만으로도 모노크롬 현대미술이다.십홀방장, 禪家의 향기극락전 뒷동산 소나무 숲에서 새들이 노래한다. 새소리가 진영각 마루 위 추사(秋史)가 쓴 ‘십홀방장(十笏方丈)’ 현판에까지 울린다. 노년의 추사가 쓴 듯 획마다 굳건한 힘과 고졸미가 넘친다. 십홀방장이란 홀(笏) 열 개를 이어놓은 사방 10척 넓이의 1장(丈) 밖에 안 되는 작은방으로, 선가(禪家)에서는 고승대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불가의 유마거사(維摩居士)가 거처하던 방이 일장사방(一丈四方)이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진영각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유마경(維摩經)’의 내용을 인용해 지은 시구를 추사가 다시 쓴 것이다. 추사의 예술미와 선가(禪家)의 향기가 어우러져 절집의 품격을 더한다.사방 열자 유마 거사의 방我觀維摩方丈室능히 구백만 보살을 들이고 能受九百萬菩薩삼천이백 사자좌를 三萬二千獅子座들이고도 비좁지 않네 盖悉受容不迫한 바릿대 공양 나눔으로도 又能分布一鉢飯가없는 시방대중 배불리리라 飽十方無量衆유마거사는 부처님 당시의 재가 불자다. 그는 병을 핑계로 문수보살 가섭존자 등 기라성 같은 불제자들의 문병을 받으며 진리를 토론했다. 그 자리에는 무수한 보살과 천신과 불제자들이 동참해 유마거사의 사방 열자 밖에 안 되는 작은 방에 구백만 보살이 들어서고 삼만이천이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도 오히려 넉넉했다는 이야기가 ‘유마경’에 전해진다.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유마거사의 공력도 대단하지만 추사의 깊이도 만만치 않다. 산중에서 절집의 공간 크기를 물리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무한한 부처의 공간으로 인식하려는 추사의 날카로움이 행간에 서려 있다.수미단 화엄세계백흥암의 백미는 누가 무어라 해도 극락전 수미단이다. 수미라는 말은 불경에 나오는 수미산에서 따온 말로 높이가 팔만 유순(由旬), 요즘으로 치자면 약 팔십만 km나 되는 영산이다. 불상을 모신 불단을 수미단이라 한 것은 부처가 세상에서 가장 높고 존귀한 곳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무늬를 조각하는데, 수미산에 산다는 반인반수(半人半獸)나 네발 달린 물고기, 불을 뿜는 사자와 같은 기이한 짐승과 도깨비 연꽃 구름 학 거북 용 봉황 등 마치 ‘산해경(山海經)’의 기이한 세계 속의 모습들을 법당 수미단에 조각하고 채색하여 구현해 놓았다. ‘산해경’은 중국 선진(先秦)시대의 고서로 그 내용은 고대의 신화 지리 의약 민속 종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수많은 기이한 괴물이나 괴이하고 신비한 신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황당하고 근거 없는 내용이지만 시대마다 사람들이 원용해 새겨볼만한 것들이 가득하다. 백흥암 수미단 조각이 마치 ‘산해경’ 세계와 같다고 느껴졌다. 보면 볼수록 판타지 영화 ‘해리 포터’를 보는 듯하다.사시예불이 극락전 가득 울리자 수미단 화엄 세계는 새로운 세상이 된다. 조각된 연꽃과 모란이 피어나고, 새 물고기 짐승들이 깨어나서 모두 수미단 밖으로 걸어 나온다. 법당 장엄에 취하고, 새로운 세상에 빠지고, 예불 소리에 넋 놓고 있다가 점심 공양 목탁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니, 앞산 건너편으로 한낮의 봄 구름이 빠르게 지나간다.봄 편지극락전을 나와 영산전에 올랐다. 영산전 건너 숲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날리고 어디선가 새소리도 들렸다. 뻐꾸기인가, 아직 시절이 일러 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뻐꾸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시예불 소리가 누마루 산창에 청아하게 들린다. 쓰다가 만 편지를 마저 써서 돌아오는 길에 우체통에 넣었다.어제는 계룡산 신원사로 봄소풍을 갔습니다.아이들과 천천히 걸었습니다.절 초입부터 복숭아 진달래 산수유 벚꽃이 꽃 대궐을 이뤘습니다.아이들과 고향의 봄노래를 불렀습니다.꽃잎이 한 점 바람에 날렸습니다.어디선가 한 소식이 들릴 듯 하더군요.소나무 숲에서 박새가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중악단(中嶽檀) 안으로 오후의 늦은 봄 햇살이 정좌하신 단군할아버지 앞으로 길게 비추었습니다.소나무 병풍을 둘러치고 폭포수 아래 범호랑이를 어루시는 할아버지휘날리는 수염자락 사이로 봄새가 노래하고 있었습니다.꽃이 피고 새가 우는 그림 밖을 나와 꽃잎이 더 흩날리는 산길을 걸었습니다.새 소리 바람소리 시내물소리가 어우러져 봄 산의 오케스트라 화음에 마음이 환했습니다.밤늦도록 연구실서 책 씨름을 하다가 문득 낮에 만난 스님의 뒷모습이 생각났습니다.바람에 나풀대는 가사자락이 신선같았습니다.봄 산에서 봄 밤까지 하루가 그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