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이탈리아 사이 지중해에는 작은 섬 하나가 외로이 떠 있다. 이 섬의 이름은 마욜리카(Majolica)다. 마욜리카는 휴양지로서도 인기가 높은 섬이지만 도자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지명이자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서구 현대작가들의 작품이나 건축 타일에서도 그 모티브를 발견하게 되는 마욜리카. 그 유래를 찾으러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스페인을 800여 년간 점령하고 있었던 높은 문화 수준의 이슬람 세력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뛰어난 건축과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전을 번역하고 인문학을 탐구하는 등 당시의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문화 국가를 이뤘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파노모레스크’라고 하는 도자기를 빚어 사용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이 도자기를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금속성 색채가 빛을 내는 것으로 보아 빛나다’라는 뜻의 루스트레, 영어로 러스터(lustre) 자기라고 불렀다.이미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오래 전부터 도기를 만들어온 전통이 있었으나 중국식 백색 자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꿈꾸면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 자기의 수준에는 대부분 이르지 못했다. 중국식 자기를 소유하는 것은 너무도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그 시대에 이를 대체할 만한 것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마욜리카 상인들이 가져온 이스파노모레스크였다. 중동(中東)이라 불리는 뜻과 같이 유럽과 아시아 중간에 위치하고 있던 이슬람은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어느 정도 수준의 도기를 굽고 있었으며 발색(發色) 기술을 중국에 제공하기도 했다.이러한 과정에서 이슬람 도기는 표면에 석유를 바르고 그 위에 코발트 장식을 한 뒤 구운 다음 벗겨냄으로써 백자처럼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질은 떨어지지만 이러한 요령이 스페인 동쪽에 있는 섬 마욜리카를 거쳐 이탈리아로 전해진다. 예술성이 뛰어난 이탈리아인들이 어떻게 반응했을까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지중해의 중개 무역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마욜리카의 상인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를 거쳐 르네상스의 역동성으로 충일해 있던 이탈리아로 전파됐던 것이다.이탈리아 역시 중국 자기와 같은 고급품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실패만을 거듭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언뜻 보아 백자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 도기를 곧 흉내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도기는 마욜리카(Maiolica)에서 왔다고 하여 ‘마욜리카’라 부르면서 영어로는 ‘마졸리카(Majolica)’로 발음했다.이탈리아는 곧 이스파노모레스크를 능가하는 디자인과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후에는 스페인으로 역수출까지 하게 된다. 특히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피렌체 우르비노 구비오 파엔차 지방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도요가 탄생됐다.16세기에 이르러서는 구비오의 지 안드레올리가 아름다운 채색 도기를 만들었으며 르네상스의 이젤화 같은 엄숙한 그림들을 소재로 하여 인기를 구가했던 이스토리아토 양식(istoriato style)의 대가 페리파리오 등이 활동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량은 알프스를 넘어 유럽 지역으로까지 전해졌다. 즉, 파엔차(Faenza)에서 프랑스로 이주해간 도공에 의해 프랑스풍의 파이앙스 도기가 출현했고 네덜란드에서는 흙이 좋은 델프트 지역에서 가마를 걸고 중국의 청화백자를 흉내 내 델프트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이탈리아 마욜리카는 5가지의 제한된 색상만을 사용했는데 나폴리 황색과 구리 빛 녹색, 암청색, 철 적색, 망간 자주색 등이다. 청색과 자주색은 접시 외곽선에 사용했다. 흰색 에나멜 유약도 ‘비앙코 소프라 비앙코(백색 위의 백색)’라 불리는 도기의 부분 부분을 돋보이게 하는 등의 용도로 쓰였다.이렇듯 17세기께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마욜리카도 1720년께 독일의 마이센에서 중국식 백색 자기가 생산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다시 자신의 색깔을 되찾아 이탈리아 특유의 밝고 산뜻하고 아기자기한 꽃 그림 등과 관광객을 위한 토산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격도 싸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몇 가지 흠이 있다면 저온에서 만들기 때문에 쉽게 깨어지고 표면의 보전성이 약해 페인트가 벗겨진다는 점이다.오리지널 마욜리카는 품질과 관계없이 그 희소성으로 인해 도자기 수집가들에게 앤티크로서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다.1. 움부리아 데루타 요에서 1505년께 제작된 마졸리카. 대형 장미 향수(rosewater)병으로 푸른 A’ROSATA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에스파냐의 전통적인 도자기 문화가 유럽에 전파되면서 그와 관련한 내용들도 함께 들어왔다. 병의 디자인도 이슬람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 중세의 이슬람은 고급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는데 이동진료소까지 갖출 정도의 의료산업이 발전했다. 약국 진열장에는 알바렐로(albarello)라고 하는 일정한 규격을 갖춘 도자기 약병이 진열돼 있었다. 손으로 잡기 쉽도록 허리 잘록한 디자인으로서 오늘의 콜라 병의 기원이 된다. 이 디자인이 이탈리아에 그대로 전수돼 만들어졌다.3. 후기 르네상스 화가인 프란체스코 살비아티(salviati)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주문자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그림 상단에 그려져 있다. 건물과 다리 및 풍광이 묘사돼 있다. 4.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지루리오에 의해 1533년에 그려진 이스토리아토 양식의 접시. 르네상스에 이르러 다시 조명을 받은 고대 신화 가운데 에우로파(europa)를 소재로 했다. 일종의 이젤화를 연상케 하는 대표적인 르네상스풍의 이 접시는 2002년 경매에서 6만 달러에 거래됐다. 5. 구비오 요. 1525년 이스파노모레스크를 모방한 것으로, 표면이 이중으로 빛나는 미묘한 색상으로 가치를 나타낸다. 금빛과 붉은 색조를 푸른 바탕에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표현했다.6. 성서 속의 위대한 인물인 솔로몬 왕의 유명한 재판 과정을 소재로 그렸다. 의상이나 건축은 로마를 배경으로 했는데 이는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인들이 자신의 뿌리라고 생각한 고대 로마에 대한 애착을 나타낸 것이다. 대부분의 이스토리아토 양식이 고전을 일정한 형식을 준수하며 그렸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2002년도 9만 달러에 거래됐다. 7. 방패는 유럽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heraldry)으로 중요한 기호다. 독수리와 사자가 그려진 이 문장은 마졸리카 방식을 채용해 제작한 장식용으로, 그릇의 범주를 넘고 있는 그 시대인들의 도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잘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김재규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