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전설‘주렁주렁’

완전히 포위돼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웅장한 바위 덩어리 같은 몬탈치노 성에 마련된 시음장의 한 구석이 마치 자석으로 끄는 듯 했다. 처음엔 한 사람이 나서서 악수를 청했다. 잇달아 다음 사람, 또 다음 사람…. 이렇게 해서 행사장의 상당수가 그 앞에 찾아와 인사를 했다. 이 광경을 미국 출신 와인 작가 케린 오키프는 성지에 이르는 순례자들 같다고 표현했다.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창조자 비욘디 산티를 맞이하는 몬탈치노 주민들을 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기록했다. 또한 그가 비니탈리에 나타나기만 하면 한두 걸음 가는데 30분은 족히 걸린다고도 했다.프랑코 비욘디 산티(Franco Biondi-Santi). 그와 가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와인을 양조해 토스카나의 자그마한 마을 몬탈치노(Montalcino)를 오늘날 이탈리아 와인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그의 할아버지 페루치오(Ferruccio)가 육종에 성공한 브루넬로는 산지오베제의 변종으로 위대한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 o di Montalcino)의 유일한 품종이다. 그녀의 표현이 참 적절하다. 브루넬로는 비욘디 산티 가문이 창조했다. 가문은 브루넬로의 비밀을 독점하지 않았다. 주변 농부들에게 품종을 나누어 주었다.양조 시범도 선보였다. 평범한 와인이 아니라 특별한 와인을 만들도록 일일이 돌보았다. 그 결과 가난했던 시골 마을이 이제 이탈리아 와인의 중심이 되었다. 가문의 장손인 프랑코를 향해 브루넬로 양조자들이 줄을 서서 예를 갖추는 것이 어쩌면 마땅한 일인지도 모른다.비욘디 산티의 이름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것이지만, 프랑코 없이 오늘날 이렇게까지 그 명성을 드높일 수 있었을까. 몇 년 후면 아흔을 바라보는 그는 가끔은 그의 빈티지를 잊을 정도로 일에 열중한단다. 그는 할아버지가 양조한 브루넬로 첫 빈티지 1888을 잘 저장하고 있으며, 마을에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설 뻔한 위험을 격퇴했고, 해체 위기에 봉착한 산탄티모 수도원을 되살렸으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다니며 브루넬로의 우수성을 알렸다.비욘디 산티의 특별한 전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런던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의 만찬에 제공된 1955 리제르바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많은 국빈들을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에도 이런 와인이 있다는 사실에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경탄해 마지않았다. ‘여왕의 와인’이란 별칭까지 얻었을 정도다. 미국 와인 잡지 와인스펙테이터 역시 진가를 놓치지 않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베스트 텐으로 주저하지 않고 선정했던 것이다.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 유일하다.브루넬로의 숙성력은 1994년에 열린 세기의 시음회를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1888년부터 1988년까지 무려 100년의 세월 속에서 잘 여문 열다섯 빈티지를 개봉했다. 관심의 초점은 당연히 1888과 1891. 특히 1891 빈티지는 대단한 맛과 향을 지닌 것으로 기록돼 있다. 영국 출신 와인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벨프리지는 “어떤 인간이 이 103살의 와인만큼 건장하리요?”라며 10점 만점에 10점을 부여했다.비욘디 산티 브루넬로의 비밀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신맛과 타닌이 풍부한 브루넬로를 전통 있는 포도밭 일 그레포(Il Greppo)에서 재배한다. 이 밭은 필록세라로 황폐화된 후 페루치오가 미국산 태목을 들여다 오직 산지오베제에다 접붙여 조성했다. 남들이 여러 품종으로 혼합해 당장 마시기 좋은 와인, 팔기 쉬운 와인에 매달릴 때에도 이 가문은 오로지 마을의 정체성이 담긴 산지오베제를 통해 숙성력이 좋고 오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와인을 양조하려고 애썼다. 청포도를 섞어 산지오베제의 타닌과 신맛을 잠재우기보다 그 속성들을 오히려 긴 숙성 기간을 통해 와인 내부로 스며들도록 했다. 그러니 비욘디 산티는 양조 기간이 5~6년 이상 소요된다.프랑코가 후회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가 되기 위한 오크통 숙성 기간을 단축한 것이다. 서둘러 판매하려는 지역 양조업자들에게 손을 들고 말았다. 그 결과 짧은 기간에 타닌과 신맛을 다스리려니 큰 오크통보다는 바릭(barrique: 225리터들이)이 필요하게 됐다. 프랑스에서 흔한 바릭이 이제 국경을 넘어 몬탈치노에도 범람한다. 결국 브루넬로라고 해서 다 같은 브루넬로가 아니다. 생산자를 가려야 한다. 일상 와인으로 넘쳐나는 토스카나에서 몬탈치노로 가보라.‘이제 몬탈치노 언덕에는 토끼보다 양조업자가 더 많다’고 푸념하는 그곳에 그랑 크뤼(최고급 와인을 지칭하는 말)가 있다. 토스카나 그랑 크뤼는 당연히 비욘디 산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