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길어지고 있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웰빙 바람으로 은퇴 후에도 30년 이상 노후생활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돈이 없는 노후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에 따라 노후 대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제도를 마련했고 많은 금융회사들이 개인연금 상품을 내놓아 소위 삼중 보장 제도의 틀은 완성됐다. 특히 단기 수익률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문화가 서서히 정착되면서 중장기 자금을 펀드로 운용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투자자금을 관리한다는 것은 여전히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다. 나이에 따라 자금 수요가 달라지고 투자 패턴도 바뀌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감안해 말을 갈아타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이런 투자자라면 ‘평생 펀드’ 혹은 ‘생애 설계 펀드’로 불리는 ‘라이프사이클 펀드(Life Cycle Fund)’를 고려해 보는 게 좋다.인생 주기를 반영한 펀드라이프사이클 펀드는 나이에 따라 차별화한 투자 전략을 세워놓고 10년 이상 긴 시간을 투자자와 함께 하는 금융 상품이다. 이 펀드는 생애설계 펀드로도 불리며 자금이 필요한 특정 시점(결혼, 주택마련, 자녀 교육, 노후생활 등)을 만기(2010년, 2015년, 2020년 등)로 설정해 운용한다. 운용 형태로는 주식, 채권 등 기초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일반 펀드와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오브펀즈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미국에서 대부분이 펀드오브펀즈 형태로 운용된다.나이가 젊었을 때에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을 노려도 좋다. 따라서 젊은 투자자는 주식의 비중을 높여 수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게 좋다. 대신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급적 위험을 줄여야 한다. 특히 노년이 되면 수익률이 낮더라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주식 대신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는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이는 게 좋다.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매달 혹은 수시로 돈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적립식 펀드와 비슷하지만 주식과 채권 편입 비율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라이프사이클 펀드가 일반화돼 있다. 미국은 1996년 라이프사이클 펀드 설정 규모가 6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05년 1670억 달러로 무려 27배나 급증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에 대비해 장기적으로 자금을 관리하고 운용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우리나라 걸음마 시작우리나라의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삼성 웰스플랜(삼성투신운용), 미래에셋 라이프사이클 연금투자신탁(미래에셋 자산운용), 푸르어드바이저 재간접(푸르덴셜 자산운용), 한국LCF혼합재간접(한국투신운용), HSBC 라이프사이클펀드(피델리티) 정도다. 대부분 주식 편입 비율이 다른 자펀드를 만들어 놓고 가입자의 연령대가 변하거나 가입자의 요구가 있을 때 편입 펀드를 바꿔주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일례로 삼성웰스플랜은 주식 투자비율 80~20% 범위에서 6개의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펀드 한 개 등 총 7개의 자펀드를 거느리고 있다. 가입자가 젊은 경우 주식 편입 비율이 최고 80%까지 높아지고,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채권의 비중이 최고 100%까지 높아지게 된다. 미래에셋 라이프사이클 연금펀드는 주식에 80% 이상 투자하는 ‘라이프사이클2030’에서부터 채권형 펀드인 ‘라이프사이클6090’까지 5개 펀드로 이뤄져 있다. HSBC의 라이프사이클 펀드도 피델리티의 운용 능력을 바탕으로 지역별 산업별로 다양한 주식과 채권에 분산 투자하게 되며 2010년이나 2020년에 은퇴하거나 은퇴를 바라보는 40대 50대 고객을 겨냥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퇴직연금 대안으로 부상라이프사이클 펀드는 또 퇴직연금 상품의 가장 좋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국세청(IRS)이 퇴직연금 도입 25주년을 맞아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라이프사이클 펀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 보고서는 20년 전인 1985년 1000만 명에 불과했던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2005년에 4700만 명으로 늘어났는데 이런 성공은 뮤추얼 펀드 같은 공격적인 주식투자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라이프사이클 펀드의 가입자 비중은 1996년 12.1%에 불과했으나 2002년 30%를 넘어서 작년에는 48.5%로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굿모닝신한증권이 퇴직연금을 라이프사이클 펀드로 설계해주고 있는데, 미국처럼 퇴직연금이 확대될수록 라이프사이클 펀드를 활용하려는 경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보험사도 라이프사이클 상품 출시노후 보장과 위험 대비 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는 보험사도 라이프사이클 펀드와 개념이 비슷한 상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노후 대비 상품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PCA생명은 은퇴 준비를 위한 재무 설계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이 제시하는 투자 기간에 맞추어 라이프사이클 펀드에 투자하는 변액보험(무배당 PCA 프리미어 변액유니버셜보험)을 출시했다. 또 알리안츠생명도 한국의 연금시장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미국이나 유럽 홍콩 등에서 유행하는 라이프사이클 펀드를 조만간 국내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한편 전문가들은 라이프사이클 펀드는 가입 기간이 최소 1년 이상인 경우가 많고 90일 이내에 환매할 경우 수익의 70%를 환매 수수료로 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기 투자자금을 라이프사이클 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