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숨결에 세월의 가치가…

유럽의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수백 년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앤티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곳곳에서 이런 장터가 열린다. 누구라도 자신의 집에서 대대로 물려온 물건을 들고 나가 팔 수 있는 장이 서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더라면 앤티크 문화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 쓰면 쓸수록 가치가 올라가니 더욱 조심스럽게 물건을 다루면서 보존하고 자손에게 물려주게 된다. 꼭 전문 컬렉터들이 아니더라도 앤티크 문화에 주체로서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앤티크의 종류 앤티크는 다양한 생활품들을 망라한다. 언뜻 생각나는 것만 꼽아 봐도 가구 책 도자기 은제품 유리 보석 장신구 농기구 자동차 카메라 오디오시스템 램프 와인 화폐 우표 사진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종류의 앤티크가 있다.그 중에도 가구는 앤티크의 중심에 있어 왔으며 가장 넓은 수요층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가구라는 앤티크의 범주 안에서도 그 종류가 상당히 많다.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대륙과 영국의 가구는 목재 사용 역사와 디자인 면에서 상당한 차이점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루이 14세의 프랑스가 바로크적인 웅장함을 지향한데 비해 영국은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었다. 가구는 목재와 용도와 시대, 디자이너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오크 호두나무 마호가니는 영국 가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시대에 따라 가구에 쓰이는 목재가 변했다.서양 현악기의 가치와 재테크 2004년 10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도쿄 스트링 콰르텟’의 연주 소식이 각종 미디어를 장식했다. 그들이 연주한 음악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그들이 연주하려고 가져온 앤티크 악기에도 초점이 맞춰졌다. 현악기의 명장,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가 제작한 명기 세트 ‘파가니니 콰르텟’은 그 가치가 무려 총 2500만 달러(300여억 원)에 달했다. ‘도쿄 스트링 콰르텟’은 이 악기를 빼고는 말 할 수 없는 악단이다. 연주회가 열릴 때마다 혹은 앨범을 낼 때도 예외 없이 그 악기들이 소개되곤 한다.‘파가니니 콰르텟’이란 바이올린의 거장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가 생전에 소유했던 두 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비올라, 한 대의 첼로를 가리키는 용어로, 파가니니가 동료 음악가와 현악 4중주를 연주하기 위해 구입했던 것이다. 파가니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 값은 수직상승했고, 일본문화재단이 1994년 워싱턴의 ‘코코란 갤러리’로부터 모두 1500만 달러(약 130억 원)에 구입해 도쿄 현악4중주단에 대여해 오고 있다. 이처럼 명품 악기는 연주자들이 직접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부호들이 구입해 임대하거나 증여하는 경우가 많다. 훌륭한 연주자가 연주함으로써 가치가 올라가면 그것으로도 이미 투자 수익을 얻는 결과이기 때문에 기관투자도 이루어진다. 특히 버블기에 일본 자본이 명품 악기들을 대거 수집했기 때문에 현재 세계 명기(名器)들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일본인들의 컬렉션 목록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악기는 1100여 개로 추정되지만 지금까지 전해져 연주에 사용되고 있는 수는 아주 제한적이다.비올라와 첼로는 희소성이 더하다.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비올라는 현재 12개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누군가 현악사중주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스트라디바리 세트를 소유한다는 것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파가니니 사후에 이 네 악기를 모두 소유한 이는 프랑스의 유명한 제작자이자 딜러인 뷔욤이란 인물이었으며 그 이후로는 이멜 헤르만이라는 딜러가 이 콰르텟을 동시에 소유했다고 한다.이 같은 희소성을 생각하면 도쿄 스트링이 사용하고 있는 콰르텟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 될 법하다. 일례로 30여 년 전 정경화 씨가 25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과르니에리는 지금 국제 악기 시장에서 600만 달러 선까지 가격이 올랐다. 스트라디바리도 30여년 전 15만 달러 정도에서 현재는 300만~600만 달러로 가격이 뛰었다.앤티크의 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얼마 전 루이 15세 시대에 파리에서 제작된 옻칠 뷔로(접이식 화장대) 한 점이 500만 달러에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됐다. 또 클래식 자동차인 ‘부가티 로열’이 미국에서 160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 그레타 가르보 등 왕년의 스타들이 소유했던 클래식 자동차 ‘듀센버그’도 100만 달러를 상회한다고 한다.그러나 이렇게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는 럭셔리 품목만이 앤티크는 아니다. 벼룩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수백 달러짜리 제품 중에도 앤티크라 할만한 것들이 많다. 자기 형편에 맞춰 앤티크를 수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빈티지 라디오나 누군가 신었을 구두, 속옷들도 시간이 흘러 100년이 넘으면 앤티크라 불린다. 그러나 아무것이나 100년을 살아남지는 못한다. 만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물품이 3대를 거쳐 후손들에 의해 버려지지 않고 보존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가치는 인정된 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와인을 마실 때 빈티지 리스트에 의해 값이 정해지듯 앤티크도 그러하다. 수확연도에 일조량과 기후 전반이 와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바이올린은 소리가 중요하다. 아무리 오래됐고 명장이 제작했다고 해도 소리가 나쁘다면 가치는 떨어진다. 일설에 따르면 스트라디바리우스 등 이탈리아 크레모나 지역에서 제작된 바이올린들이 명기가 된 데에는 당시 태양 흑점 활동으로 생긴 기후 변화가 이 지역의 단풍나무를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게 해 목재의 밀도가 높아진 것도 큰 요인이 됐다고 한다.이같이 앤티크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 가치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언제 누가 만들었는가, 얼마나 희소성이 있는가, 보존은 어느 정도 잘 되었는가 등이 중요하다. 같은 조건이라면 오래된 것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고 흔치 않은 물건이라면 가격이 그 만큼 높게 매겨진다. 책의 경우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누가 그렸는가, 초판인가, 또는 상을 받은 적이 있는가, 장정을 가죽으로 했는가 등의 조건이 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디자이너가 직접 사인을 남겼다면 이 또한 가치가 높다. 특히 가구는 조지안 시대에 좋은 디자인을 많이 남긴 치펀데일이나 로버트 애덤과 같은 가구 예술인들의 사인이 남아 있다면 가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앤티크는 시장 원리에 따라 값이 결정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의 트렌드도 값을 매기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이나 미국에서 영국의 전통 가구인 오크에 관심이 일기 시작하자 그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빅토리아풍의 보석이 인기를 얻게 된 후 값이 빠르게 오른 사례도 있다. 앤티크는 국경을 가로질러 국제 시장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오르내리기도 한다. 특히 100년이 넘는다는 증빙이 있으면 관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국경을 넘는 거래는 더욱 활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