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와인 명산지 바롤로

롤로는 동화 속의 벽돌집 같은 와인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와 늑대’의 막내 돼지 벽돌집처럼 튼튼하고 견고한 느낌을 준다. 간결하지만 분명하고도 단단한 맛을 지녀 오랫동안 숙성이 가능하며, 제대로 잘 익었을 때에는 장미꽃 향을 발산한다.바롤로는 알프스 아래 자락에 있는 피에몬테 지방의 도시 쿠네오에 속한 11개 마을에서 네비올로로 양조하는 레드 와인의 통칭이다. 그 마을들 중 바롤로, 라 모라, 세라룽가 달바, 몬포르테 달바가 명산지로 알려져 있다. 네비올로는 토양에 민감해 넓은 지역에 분포하지 않는다. 토양 조건이 부합하는 일부 구역에서만 자란다. 그러다 보니 네비올로를 심기로 작정한 포도밭에는 오히려 생장력이 좋은 돌체토나 바르베라 품종이 더 많이 자라기도 한다. 껍질이 두껍기로 유명한 네비올로는 거기에서 비롯되는 풍부한 타닌 성분으로 인해 오랜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좋은 맛과 향을 내는, 즉 오랜 숙성을 요하는 대표적 품종이다. 연도가 오래된 바롤로는 드물게 만나는 와인의 명품이다. 바롤로가 오랜 숙성을 요한다는 점은 사실 지역 양조가들에게는 큰 골칫거리였다.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와인이었다. 갓 담근 바롤로는 거칠고 텁텁해 도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땡감을 씹었을 때 뻑뻑하게 느껴지는 그런 맛이었다.일반 소비자들은 메를로나 피노누아의 매력 앞에 네비올로를 망각하기 일쑤였다. 오직 세월만이 풀 수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장을 낸 일단의 무리가 이른바 바롤로의 현대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숙성이 덜 되었을 때에도 마실 만한 와인 양조에 승부를 걸었다. 소출을 확 줄인 포도의 완숙을 통해 부드러운 타닌을 확보해 마시기 편한 바롤로를 탄생시켰다. 그들은 바롤로 전통주의자의 비아냥거림을 이겨내며, 드디어 새로운 스타일의 바롤로를 당당히 와인 세계에 등장시켰다.현대적인 것이라면 다 좋을 것일까. 전통적인 바롤로는 발효 기간이 더 길고, 현대적인 바롤로는 새로운 프랑스산 작은 오크통을 사용한다. 침용이 길어 껍질의 색소와 타닌이 많이 배어 나오는 전통 방식은 텁텁함을 달래기 위해 5년 이상 큰 오크 캐스크에 담았다. 한편 현대적인 바롤로는 침용 기간이나 발효조 사용 기간을 최소한으로 하고 각진 타닌을 무디게 하려고 프랑스산 오크통을 사용했다. 어떤 방식이 맞는 것일까. 사실은 둘 다 옳은 것이다. 와인은 주인의 스타일을 담아내는 것이므로.바롤로라고 다 같은 바롤로는 아니다. 지난 40년간 재배 면적이 2배 이상으로 커졌기 때문에 생산 구역과 생산자의 면면을 잘 살펴야 한다. 바롤로의 전통이라면 단연 자코모 콘테르노(Giacomo Conterno)다. 이 집 최고의 와인 몬포르티노(Monfortino)는 바롤로의 정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가 하던 방식대로 그저 따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를 따라 하셨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당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바롤로를 만들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로베르토는 이렇게 대답했다.로베르토의 할아버지인 자코모 콘테르노는 빈티지가 좋을 때에는 기운찬 타닌을 다스리기 위해 7년간을 묵히고 출시했다. 고향 마을인 몬포르테가 자랑스러워 와인명을 몬포르티노라 지었단다. 몬포르티노는 인근 마을 세라룽가의 크뤼 포도밭인 프란차(Francia)에서 나온다. 남서향이며 해발 고도가 높아 오후 내내 햇살을 받을 수 있다. 몇 달 전부터 출시되기 시작한 빈티지 1999는 색이 참 맑다. 맛이 간결하고 순박하다. 그리고 바롤로의 힘이 싱싱하게 살아있다. 마치 그랑 크뤼 피노누아의 정결함과 순수함에 타닌을 덧씌운 느낌이랄까.자코모 콘테르노에게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이름은 알도 콘테르노. 그는 로베르토의 작은 아버지다. 알도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젊은 시절에는 미국 시민권자로 살았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한국전쟁 때는 육군으로 참전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3남을 거느리고 다시금 고향으로 역이민한 인물이다. 물론 자신만의 와인을 담그기 위해서다. 그는 형 조반니와 생각이 달랐다. 이탈리아를 떠나 살면서 입맛이 바뀐 때문일까. 그는 바롤로의 거친 타닌은 포도 껍질을 너무 오래 양조통에 둔 때문으로 보고, 한 달씩이나 걸리던 것을 2~3주로 줄였다. 그리하여 좀 더 부드러운 바롤로를 얻는데 성공했다.알도 콘테르노의 베스트 와인은 그랑부시아(Granbussia)다. 몬포르테에 있는 크뤼 포도밭 로미라스코(Romirasco)에서 거둔 네비올로가 주로 쓰이며, 빈티지가 좋은 때에만 출시되는 리세르바 바롤로다. 그랑부시아 2000 빈티지는 감초 향기와 타르, 장미꽃 향기가 만발하며 입안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바롤로 애호가들은 가끔 헷갈린다. 콘테르노라는 이름이 많아서다. 자코모 콘테르노와 알도 콘테르노가 그것이다. 이들은 한 집안 식구다. 자코모 콘테르노는 창업자인 할아버지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현재는 손자 로베르토가 이끈다. 알도 콘테르노는 독립해 새로운 양조장을 건설한 창업자의 차남이다. 현대적 바롤로로 알려진 콘테르노-판티노(Conterno-Fantino)는 전혀 관계없는 다른 집안이다.이탈리아 피에몬테 = 조정용 아트옥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