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블루칩 상가로 뭉칫돈 ‘밀물’

00억 원 대 자산가인 이명수(64·가명) 씨는 요즘 상가 투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막대한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지금, 이 씨는 포트폴리오 다각화 차원에서 상가 투자를 모색할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상가나 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이 씨는 △연수익률 5% 이상 △공실률 10% 미만 △유동인구가 풍부한 역세권 등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그가 주목한 곳은 2호선 강남역 부근. 강남역 부근의 부동산 중개업자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상가 하나를 분양받을까 싶은데. 1층 물건 좀 괜찮은 것 있습니까.” 그러나 중개업자는 수첩을 뒤적이더니 “얼마짜리를 생각하십니까. 여기는 워낙 임대가 잘 되는 지역인지라, 웬만한 금액이 아니고서는 구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씨는 중개업자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받아쳤다. “나도 갖고 있는 돈이 꽤 됩니다.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한 5억 원이면 될 거 아닙니까.” 그러나 중개업자는 웃으면서 “선생님, 농담 마십시오. 이 동네 1층 점포를 사려면 최소 10억 원 이상은 줘야 합니다. 그 이하짜리 물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상가 시장에 때 아닌 훈풍이 불고 있으며 그 중심에 근린상가가 있다. 상가 시장은 실물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물경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원금 보전조차 어려운 고위험 투자 대상이 상가다.그렇다고 불황만을 탓할 수는 없다. 불황 속에서도 경쟁력 있는 상가를 고르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불황기에 강세를 보이는 상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예전처럼 단지 내 상가, 테마상가, 근린상가 등으로 호·불황을 구분할 수는 없다.상가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상권은 경기 변화에 덜 민감하고 고정적인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이다. 대표적인 곳이 명동 강남역 여의도 등 블루칩 상권이다. 최근 상가 시장 전체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지만 이들 지역은 임대료가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강세가 계속되고 있다.상가정보연구소에 따르면 서울 최대의 상권인 강남역 부근의 경우 10평 기준 평당 매매값이 9000만~1억2000만 원이며 수익률은 6% 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강남대로변 상가 보증금은 2억~10억 원이며 월세는 1000만~6000만 원인데도 매물이 나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면도로변은 70평형대 기준으로 보증금이 10억 원이며 월세 3000만 원 선에서 임대료가 형성돼 있다.여의도역을 중심으로 한 여의도 권역은 평당 매매가 최소 1억 원 이상을 호가하고 있으며 수익률은 4%대를 기록하고 있다. 20평대 상가 임대료는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600만 원이며, 권리금도 4000만~5000만 원을 웃돌고 있다.명동 밀리오레부터 우리은행 명동지점까지의 중앙로는 서울의 대표적 상권으로 40~50평 기준 평당 매매가가 1억~3억5000만 원이다. 보증금은 최소 5억 원부터 최대 37억 원까지 다양하며 월세도 5000만~1억5000만 원이다. 이면도로 점포는 10평 기준으로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100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건설교통부가 조사한 자료에서도 근린상가에 대한 투자수익률은 여전히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교부가 추산한 상가 연간 수익률은 8~9%이며 월세 기준 평당 임대료는 12만3000원이었다. 지역별로는 신촌(10.95%) 명동 등 도심(9.93%), 영등포(9.36%) 강남(9.29%) 순이었으며 평당 임대료는 지난해보다 3000원씩 올랐으며 이중 서울은 16만5000원으로 부산(9만8000원), 대전(9만1000원)을 크게 앞질렀다. 분양시장에서도 근린상가의 강세는 계속되고 있어 일부 지역은 큰손들의 한발 앞선 투자로 매물이 동이 났다. 여의도에 있는 에스트레뉴(S-Trenue)의 상업시설인 스퀘어가든은 1층 9개 점포가 본격적인 홍보전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팔려나갔다. 평당 분양가만 6300~7200만 원대로 강남구 아파트 평균 분양가를 두 배 이상 앞지른다.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힐리앤힐(HEALI &HILL) 메디칼 프라자는 분양가가 평당 5500~6000만 원대 수준임에도 1층 5개 점포가 이틀 만에 분양이 완료됐다. 힐리앤힐 메디칼 프라자 관계자는 “1층 상가는 대체로 강남 거주 투자자들이 분양을 받았다. 특히 강남은 분양 중인 상가가 별로 없는 희소성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대치동 모 상가는 평당 8000만 원에 이르는 고가 분양임에도 분양 시작 전부터 투자자들이 몰리는 등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고 말했다.대치동에 자리한 대치프라자Ⅲ도 평당 6700만~7500만 원에 형성된 1층 10개 점포 중 8개가 대부분 강남 투자자들에게 분양됐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수석연구원은 “올 상반기만 해도 평당 8500만 원이었던 강남역 인근 상가도 손쉽게 분양됐다”며 “상가 투자에 매우 신중한 부동산 큰손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역세권을 근간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강남이란 지역 선호도 역시 여전히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한편 상가114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상가 투자를 고려하는 사람은 주로 50대며, 가장 희망하는 근린상가 매입가는 2억~3억 원 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상가114 유영상 소장은 “한동안 큰 인기를 모았던 단지 내 상가는 고가 낙찰로 인해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면서 인기가 주춤해졌고, 쇼핑몰은 그렇지 않아도 공급과잉 상태에서 온라인, 할인점 등에 고객이 몰리며 상대적으로 더 외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에 비해 근린상가는 상권 변화에 따라 다양한 업종이 입점할 수 있어 공실에 대한 부담이 적은 데다 택지지구나 신도시는 근린상가가 상권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불황기 상가 투자 전략은 어떻게 수립해야 할까. 불황기일수록 유동인구의 중요성이 커진다. 유동인구가 풍부하려면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 백화점 등이 위치해 있거나 역세권 등 교통 여건이 잘 발달돼 있어야 한다. 또 20~30대가 많이 몰리는 대학가 주변이나 산학연구단지 등도 유망지역으로 분류된다. 유망 업종으로는 프랜차이즈 요식 업종이나 유명 브랜드 의류판매업 등이 꼽힌다. 이 밖에 30억~50억 원 대 중소형 상가도 고액 자산가들의 주요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유 소장은 “다주택에 대한 세금 부담과 고용 불안에 따른 노후 대비책으로 상가 투자를 선호하고 있다”며 “부동산시장에서 주택은 선행지표, 상가는 후행지표이기 때문에 주택시장의 강세가 계속되면 상가시장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