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전설 된 짠돌이 경영

산은 무려 10조 원, 하지만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1800cc급 도요타 코롤라. 지독한 ‘짠돌이’로 유명하지만 매출 150만 달러에 불과했던 작은 식용유 회사를 매출 20억 달러가 넘는 세계적 기업으로 일궈낸 인물. 바로 인도의 대표적 정보기술(IT) 회사인 위프로테크놀로지의 아짐 프렘지(Azim Hashim Premji) 회장이다.올해 예순한 살의 아짐 프렘지 회장은 ‘인도의 빌 게이츠’로 불리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처럼 대학을 다니다 갑자기 사업에 뛰어들어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닮았기 때문이다.1945년 출생한 프렘지 회장은 1966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 부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고국에 돌아와 스물한 살의 나이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식용유 회사를 물려받는다. 그는 4형제 중 막내였지만 형들이 모두 외국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회사를 맡게 된 것. 프렘지 회장의 새로운 운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후 놀랄만한 경영 수완을 발휘하며 매출 150만 달러의 작은 식용유 회사를 매출 20억 달러의 IT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프렘지는 영국 유력 경제신문인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작년 10월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억만장자 25인’ 명단에서 1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뽑은 ‘세계의 부자 1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그에 대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의 최고 부자 자리를 차지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해외 거주자를 포함한 ‘인도계 갑부 순위’에서도 세계 굴지의 철강기업인 미탈스틸의 라크시미 미탈 회장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프렘지가 이처럼 세계적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프렘지는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세계 최고 기업을 키우겠다는 꿈을 키웠다. 처음부터 목표를 높게 잡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어려서부터 매우 침착하고 똑똑했다고 말한다. 꿈을 이루려는 프렘지의 부단한 노력은 1분도 소홀히 흘려보내지 않는 생활 태도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위프로의 본사가 있는 인도 남부 도시 벵갈루루의 자택에서 프렘지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눈을 뜬다. 커피 한 잔으로 정신을 깨운 뒤 전 세계 책임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업무 지시를 내린다. 아침 7시쯤 회사에 출근한 후에는 고객이나 정부 관리들과 아침 식사를 하며 회사 현안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바로 이어 회의를 주재하거나 국내외로 출장을 떠난다.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영자들이 엉덩이를 사무실 의자에 붙일 새 없이 현장을 뛰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 회장인 잭 웰치는 그를 두고 “경영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 곧바로 해결하는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프렘지는 큰 꿈을 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왔지만 “내 목표는 여전히 단 하나, 더 큰 성공”이라고 말한다.식용유 회사를 경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쌓은 프렘지에게 한 단계 도약을 위한 기회가 찾아 온 것은 1977년. 당시 인도 사회당 정권은 미국 IBM을 인도에서 몰아냈고 프렘지는 이 틈을 타 대만 업체인 에이서와 제휴해 PC 생산에 뛰어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PC 붐이 일면서 프렘지의 첫번째 IT 사업은 크게 성공했다. 이때 프렘지는 판매 직원 1명당 3명의 애프터서비스(AS) 직원을 두고 소비자를 만족시키겠다는 ‘서비스 중시 전략’을 내걸었다. AS가 미흡했던 인도에서 프렘지의 서비스 우선 전략은 성공의 디딤돌이 됐다.199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IT 붐이 거세게 일자 프렘지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사업의 축을 옮겼다. 물론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서비스를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았다. 덕분에 위프로는 전 세계 기업을 상대로 한 소프트웨어 개발 등 IT 아웃소싱 업무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고 매출이 연평균 40% 이상 고성장을 지속, 시가총액이 16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4위의 IT 서비스 기업으로 부상했다.프렘지의 대표적 경영 철학은 품질경영과 성실경영이다. 그는 위프로의 경영 방침에 대한 질문에 늘 “품질과 성실성을 가장 강조한다”고 답한다. 프렘지는 식용유 회사를 운영할 때부터 직원들에게 이 같은 원칙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해 왔다. 그는 또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되는 것이 경영 방침이라고 강조한다.고객에게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품질경영’과 자신을 포함해 모든 임직원이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성실경영’을 확고한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프렘지 회장의 이런 경영철학은 위프로에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초’ ‘세계 최고’ 타이틀을 안겨줬다. 일례로 위프로는 국제 공인 소프트웨어 기술 표준인 CMM의 최고 등급(5등급)을 세계 최초로 받았으며 인재 표준인 CMMI의 최고 등급(5등급)도 세계 최초로 따냈다. 또 무결점 운동인 식스 시그마를 도입한 인도 최초의 회사이기도 하다.그는 몇 년 전 직원 중 최고 실적을 올리는 한 영업 사원을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바로 해고한 적도 있었다. 직원들의 능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실성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준 사례다.이러한 프렘지 회장은 지독한 구두쇠로도 유명하다. 10조 원이 넘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자가용 비행기는 고사하고 아직도 일본 도요타의 소형차인 코롤라를 몰고 다닌다. 그나마 1996년식 낡은 포드 에스코트를 1800cc급 도요타 코롤라로 바꾼 것도 지난해였다.코롤라는 현대자동차의 아반떼와 해외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차종으로 프렘지 같은 거부가 몰고 다닐 것으로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1800cc면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그는 직원들에게도 비용 절감을 끊임없이 주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외 출장 시 이코노미 항공석을 이용하고 공항을 오갈 때도 일반 택시나 열차, 혹은 더 싼 오토릭셔(소형 삼륜 택시)를 주로 이용한다. 직원들의 출장 때 비행기 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어느 항공사가 저렴한지를 따져보도록 직접 지시한다. 해외 출장이 잦은 직원들에겐 호텔 방을 아예 장기 임대해 사용하는 게 돈이 덜 드는 게 아닌지 알아보라고 채근하기도 한다. 심지어 프렘지 회장은 두루마리 화장지 사용량을 일일이 체크하고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나갈 때 전등을 반드시 끄게 한다. 그는 지시만으로 그치지 않고 소등 여부를 직접 점검한다.위프로의 주주들은 프렘지의 비용 절감 독려를 환영하지만 회사 내 일부 직원들은 회장의 검소함이 지나치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 때문에 회사를 옮기는 직원까지 있을 정도다. 또한 프렘지 회장에 대한 가장 큰 비판 중 하나가 회사 지분을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위프로 주식 중 80% 이상을 소유하고 있고 사원들에 대한 스톡옵션 제공도 인포시스 등 경쟁 기업에 비해 적다. 그렇다고 프렘지 회장이 꼭 구두쇠인 것만은 아니다. 직원들과 함께 엄격한 절약을 실천하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는 매우 적극적이다.그는 ‘아짐 프렘지 재단’을 만들어 매년 500만 달러를 내놓고 있다. 이 돈으로 프렘지는 인도 어린이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선 질과 양적으로 우수한 초등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며 “인도는 이런 면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위프로가 이러한 재단을 만들어 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프렘지 회장은 장성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한 명은 하버드대를 나와 런던에서 베인&컴퍼니사의 컨설턴트로 근무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아짐 프렘지 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후계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위프로에는 이사회 등 공정하고 투명한 후계자 선정 절차가 있다”며 “후계자는 회사의 모든 사원이 대상이 될 수 있고 내 아들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한다.프렘지 회장은 뇌물이나 정치 자금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도 역시 다른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정치인에게 잘못 보이면 사업하는 데 치명적이지만 그는 “사업의 투명성에 대한 신념으로 살아왔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점에는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기자 jran@hankyung.com아짐 프렘지출생 1945년 7월 인도 뭄바이학력 뭄바이 세인트메리스쿨, 스탠퍼드대 엔지니어링학경력 1966년 위프로 경영 승계1981년 컴퓨터 하드웨어 사업 시작1984년 소프트웨어 사업 추가존경하는 인물 마하트마 간디, 잭 웰치경영 스타일 현실적이고 비판을 잘 받아들이는 편, 철저한 비용 절약 강조, 품질 경영 및 직원들의 성실성 중시기벽 공항에서 오토릭셔(소형 삼륜 택시) 이용하기, 여행할 때 스스로 다림질하기프렘지의 절약 사례들·프렘지의 자동차는 1800cc급 도요타 코롤라·국내외 출장 시 이코노미석 이용하기·공항을 오갈 때도 일반 택시나 열차 이용·직원들의 출장 때도 저렴한 항공사 챙기기·잦은 해외 출장 시엔 호텔 방 장기 임대·두루마리 화장지 사용량 일일이 체크하기·사무실에서 퇴근할 때는 항상 소등 점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