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연금재테크인가

은 낙엽’이란 말이 있다. 조어(造語)에 능한 일본인들이 만든 유행어로, 젖은 낙엽이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듯 ‘은퇴 후 부인 곁에 붙어 있는 처량한 남편’을 뜻한다. 나무에서 떨어져 땅에 뒹구는 신세도 처량한데 비에 젖기까지 하면 더 서러워진다.부인에게도 젖은 낙엽이 좋을 리 없다. 얼마 전 발표된 미국의 한 심리학 리포트에 따르면 은퇴 후 부부는 ‘세력권 싸움’을 벌인다. 부인은 가정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생각해 왔는데 은퇴 후 느닷없이 남편이라는 침입자가 등장, 일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아침, 저녁 식사를 해줬는데 이제 점심까지 챙겨줘야 하니 부인은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이 노후 준비도 잘 했을 리 없다. 막상 고정 수입이 끊기고 의료비 등 지출이 급증하는 상황은 낯설고 당혹스럽기만 하다.만약 젖은 낙엽들이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셰익스피어의 연극 이름을 젊은 시절에 생각해 봤더라면 은퇴 후 처지가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젊었을 때 누구든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추진 계획도 만든다. 그래서 한때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의 평가는 후반기에 내려진다.나폴레옹은 시저나 알렉산더보다 더 위대한 전공을 세웠지만 사람들은 그를 패망시킨 워털루 전쟁과 비참한 죽음만을 기억한다. 비리 사건 등으로 몰락한 정치인의 과거 화려한 경력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한때 큰 부를 일궜더라도 노년에 곤궁해지면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없다. 아름다운 퇴장이야말로 인생의 성패를 가름하는 핵심 요인이다. 따라서 눈앞에 닥친 일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인생 계획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괴물’은 ‘국가 권력이 개인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한국 상황만은 아니다. ‘젖은 낙엽’이나 ‘세력권 싸움’ 설(說)은 공교롭게도 세계 1, 2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서 제기됐다. 부자 나라에서도 노후 보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선하고 능력 있는 정부라도 개인의 행복을 완벽하게 보장해 줄 수는 없다. 더군다나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우리나라 출산율(1.08명)은 세계 최저가 된 지 오래다. 이미 시골은 노인으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은 2030년 여성 평균 수명이 85세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적고 노인의 수명이 늘어나면 연금 체계의 불균형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작년 기준으로 생산 가능 인구 7.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었지만 2030년에는 2.7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그러니 국민연금의 부실화는 피할 수 없다.따라서 노후에 지급하는 돈을 줄이고, 가급적 지급 시기도 늦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공무원 군인 교직원 연금 등도 시간이 문제지 언제까지 정부가 재정을 축내면서 현재 수준의 연금을 지급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이 해 줄 몫은 노후 생활비의 30% 정도가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나라가 해 주지 못한다면 우리 자식들이 부모를 돌봐주지 않을까. 통계청 조사(2002) 결과 응답자의 88%가 부모를 부양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자녀에게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부모들 입장에선 대단히 섭섭한 일이다. 하지만 낙담할 일만은 아니다. 세대를 초월해 모든 부모는 자녀에게 헌신한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했다. 자녀는 부모보다 자신들의 후손에게 더 큰 희생을 할 수밖에 없다.오히려 모든 자녀는 강한 부모를 원한다. 늙었더라도 자식들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는 힘과 권위를 가진 부모를 원한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학원 한두 개를 줄이는 대신 연금 등에 투자해 노후까지 강한 부모로 남아야 한다. 그것이 진짜로 자식을 사랑하는 길이다.은퇴 재테크를 하라고 하면 모두가 돈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재무 설계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인간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줬던 보험을 리모델링하면 더 좋은 보장을 받으면서도 월 납입 금액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가계부까지 작성하지는 않더라도 한 달만이라도 지출액을 파악해 보면 불필요한 소비를 억제할 수 있다. 신용카드를 없애고 결제와 동시에 돈이 인출되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지출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사교육비도 합리적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 자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사교육에 대해 과감하게 메스를 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연금 재테크가 20년 이상 초장기 투자이기 때문에 ‘원자폭탄보다 무섭다.’는 복리효과가 가미돼 투자 대비 수익률이 매우 높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