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 인간의 역사는 대립과 경쟁이 키워드였다. 성장하거나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분야에서든 적과 라이벌이 필요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적과 동지, 전쟁과 평화,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 부자와 가난, 공과 사, 전부와 전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흑과 백,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단어가 대립개념과 함께 받아들여졌다. 대립개념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였다. 그래서 세상에는 수많은 경계가 생겨났고 자연히 사람들의 뇌리에도 무수한 벽과 울타리가 쳐졌다.시대가 변하면 사고(思考)와 인식(認識)의 방법도 바뀐다. 유행어가 돼버린 ‘블루오션’의 개념이 그러하듯 요즘은 대립과 경쟁 구도를 벗어난 새로운 상황 인식이 각광받는다. 대립하거나 경쟁하지 않아도 인간은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다는 인식, 더 나아가 대립과 경쟁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행복의 상대개념이 반드시 불행인가, 동지가 아니면 무조건 적인가, 부자가 아니면 다 가난하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경계는 무엇인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실들이 무서운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역사 인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컨대 신라가 수행한 삼국통일을 불온하다고 주장한 단재(丹齋·신채호)의 대립적이고도 부정적인 사관(史觀)에서 벗어나 정확한 사실(史實)을 파악하고 삼국 모두에게서 취할 점을 찾으려는 통합적이고도 긍정적인 역사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 선조가 걸어온 우리 역사를 우리 스스로 헐뜯고 비난해서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되랴. 세계 인류사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도 제 조상이라고 섬기고 받드는 일본 총리의 서글픈 행보를 감안하면 뒤늦었지만 여간 반가운 변화가 아니다. 독도나 집권층의 신사 참배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일본 국가나 국민 전체와는 분리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옳다고 본다. 어려운 주문이지만 그래야 우리가 국제적으로 성숙해진다. 21세기가 요구하는 것은 매사에 긍정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사고다.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정신적으로도 반드시 부유한가에 의심이 일고, 행복의 척도가 물질과 분리되면서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계층들이 생겨나 우리사회의 주류를 형성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우에 따라 사회주의식 공개념을 도입하는가 하면 사회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받아들여 날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기도 한다. 철학사에도 유물(唯物)과 유심(唯心), 실재(實在)와 관념(觀念)이 뒤섞인 전혀 새로운 학설이 등장해 과거의 흑백논리와 대립적인 우주 인식을 비판한다. 친구를 사귈 때나 조직에서 사람들과 교유할 때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행동이나 그릇된 처신 한두 가지로 그 사람 전부를 불신하거나 배제하기보다는 장단점을 파악해서 꾸준히 기회를 주는 통합적이고 긍정적인 사고가 훨씬 도움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부끄러운 일 한두 가지쯤은 가슴 깊이 숨기고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닌가. 벌거숭이로 태어나서 일생을 두고 천변만화(千變萬化)해 가는 게 사람이고 인생일진대 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통합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다양한 가치가 범람하는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사고(思考)도 습관이다. 처음엔 어려워도 자꾸 해보면 몸에 익는 게 습관이다. 불행한 사람도 자꾸 행복하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얼마 안 가서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처럼, 통합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도 할수록 는다. 가장이 그러면 온 가족이 즐겁고 사장이 그러면 온 회사가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