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생명의 물’… 위스키 이야기

구 북단 섬나라의 산골짜기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위스키 제조자들의 장인 정신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들의 정성과 비법은 스카치위스키로 탄생돼 오늘날 지구촌 어디에서나 애주가들의 삶에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1096년부터 300년간 일어난 십자군 전쟁은 성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종교 전쟁이었으나 1000여 년간 단절된 동서양 교류의 마당이 되기도 했다. 9~10세기의 이슬람 문화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스페인 포르투갈에까지 이르는 광범한 지역에서 꽃을 피웠다. 이 시기에 연금술사들은 물질을 변화시켜 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온갖 실험을 했다. 이중 증류 기법은 그들의 비법 중 하나였다. 이렇게 이슬람 연금술사들로부터 기독교 수도승들에게 전파된 증류 기술은 서양 증류주의 기원이 되고 있다. 술을 금지한 땅 중동에서 유래된 증류주는 중동 이외의 모든 지역에서 찬사를 받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위스키와 브랜디, 그리고 보드카는 각국의 부대에 배치된 수도승들에 의해 탄생됐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에일 맥주를 증류해 위스키라 부르고 있다. 위스키는 라틴어 ‘아쿠아 바이티(Aqua Vitae:생명의 물)’에서 변형된 단어다. 신비한 액체인 생명의 물은 수도원에서 제일가는 안정제였으며 많은 약초들과 잘 혼합해 약으로도 쓰였다. 또한 긴긴 겨울을 나는데 더없이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지난 1994년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스카치위스키 500년 기념 파티는 생명의 물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1494년)을 근거로 마련됐다. 이후 1506년 국왕 제임스 6세는 인버네스를 방문해 곳곳에서 생명의 물을 마시고 그 술의 신비함에 취해 이를 왕의 술로 삼았다. 이후 위스키는 민간 깊숙이 퍼져 스코틀랜드의 민속주로 자리 잡게 된다.스코틀랜드 왕이 잉글랜드 왕을 겸하면서 탄생된 대영제국은 1713년 스코틀랜드 위스키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앵글로 색슨족인 잉글랜드인들과 켈트족인 스코틀랜드인들은 수백 년간 전쟁을 해 사이가 몹시 나빴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제조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북쪽의 고지대 산속으로 숨어들어 갔으며 사람들은 이들을 ‘밀조업자’라고 불렀다. 이들은 세리(稅吏)들의 눈을 피해 위스키를 밤에 증류했는데 달 빛 아래서 술을 빚었다 해서 ‘달빛치기(Moon Shiner)’라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증류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의 도시 지역이나 잉글랜드에 비밀리에 유통됐다.양조업자들이 사용한 통은 주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서 셰리(식사 전에 마시는 와인)나 포트(식사 후에 마시는 와인)를 저장했던 것이다. 어떤 때는 세리를 따돌리기 위해 위스키를 수년간 굴속에 숨겨 놓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통 속의 술은 호박색으로 변해 있었고, 풍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을 지닌 전혀 다른 위스키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우연한 발견이야말로 후일 스카치위스키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스카치위스키는 1824년이 돼서야 양성화돼 체계적 숙성법이 연구 발전된다. 오크 통에서 숙성되는 도중 위스키는 계속 증발해 연간 2~3%씩 줄어든다. 이때 줄어든 부분을 천사의 몫이라 한다. 스코틀랜드에 가면 하늘에 떼지어 나는 천사를 보지 않았느냐는 농담을 듣곤 한다. 증류 기술이 모든 유럽에 전파됐는데 왜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가 발전했을까. 스코틀랜드의 계곡에 가면 물이 얼마나 맑은지 알 수 있다. 잉글랜드나 유럽의 물이 석회질을 많이 함유한 물인데 비해 스코틀랜드 물은 위스키 증류에 최적의 조건이다. 스코틀랜드 땅의 표층은 피트(Peat:이탄)로 덮여 있다. 무한한 노천광인 셈이다. 사실 스카치위스키의 스모크 향은 피트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조건은 연중 폭이 넓지 않은 온도와 습도다. 위스키는 이런 기후에서 서서히 숙성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지는 것이 바로 장인 정신이다.1831년 발명된 연속식 증류기(Continuous Still)는 위스키 산업에 혁명을 가져왔다. 이전의 위스키는 몰트(Malt:맥아)만을 원료로 해 단식 증류기(Pot Still)로 증류한 몰트위스키였다. 몰트위스키는 향이 풍부하고 맛이 좋았지만 생산비가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이에 비해 소량의 몰트와 옥수수 호밀 등의 값싼 곡물을 발효해 연속식 증류기로 증류한 위스키를 그레인위스키라고 하는데 이 그레인위스키는 단기간에 대량 생산할 수 있다.몰트위스키는 향이 풍부하고 맛이 강렬하며 증류하는 곳마다 특성의 차이가 많은 반면 그레인위스키는 비교적 밋밋하고 특색이 적다. 두 가지 위스키의 특징들은 혼합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내며 이때 블렌디드 위스키가 나온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1850년대에 판매된 위스키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위스키 생산자와 판매자의 분업이 일어났다. 도시 지역에서 위스키를 판매하는 상인들은 산간벽지의 생산자들에게 원액을 사서 블렌딩해 제품을 개발했다. 블렌딩 기술만 있으면 좋은 제품을 마음대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생산되는 위스키는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북부 산간 하이랜드(High Land) 지방의 스페이 강 유역은 밀조 시대부터 잘 익은 과일 향이 풍부한 원숙미가 나는 원액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서양 연안의 서부 해안과 섬에서 나는 위스키 원액은 피트(Peat) 향이 강하고 남성다운 거친 맛이 특징이다. 에든버러 부근의 남부 지역은 로랜드(Low land)라고 하는데 이 지역의 위스키는 신선한 과일 향을 내며 맛이 부드럽다. 다양한 원액으로 균질한 품질을 가진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블렌더의 몫이다. 블렌더들은 예민한 후각과 독특한 창의력으로 그들만의 경지를 개척해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명품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