름다운 이별(김건모)’, ‘이밤의 끝을 잡고(솔리드)’, ‘I believe(신승훈)’, ‘너의 뒤에서(박진영)’, ‘하늘만 허락한 사랑(엄정화)’, ‘그때 또다시(임창정)’, ‘내 눈에 슬픈 비(박지윤)’, ‘내게 오는 길(성시경)’, ‘기대(나윤권)’ 등등 …. 제목만 들어도 멜로디가 떠오르는 주옥같은 발라드 가요들이다. 이 대중가요들은 발라드라는 것 이외에 공통점을 하나 더 갖고 있다. 노래방 18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곡들은 모두 김형석(41)이라는 음악 프로듀서가 작곡한 노래들이다.1989년 김광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인순이의 ‘이별연습’을 작곡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한 김형석은 지금까지 800여 곡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만들었다. 다작과 히트를 동시에 해내는 그에게는 늘 ‘미다스의 손’ ‘스타 메이커’ ‘천재 음악가’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그는 대중가요 작곡과 편곡 외에 음반제작,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중화권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상하이 홍콩 대만 등지에서 개봉된 것을 계기로 신승훈 ‘I believe’는 현지 가수들 사이에 리메이크 경쟁이 붙어 각종 차트의 1위에 올랐고 ‘엽기적인 그녀’의 영화 음악은 홍콩과 대만에서 10만장 넘게 팔려 나갔다. 이에 따라 중화권 가수들이 곡을 써달라며 ‘러브 콜’을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중화권 최고 스타인 천후이린 등에게 곡을 써주기도 했다. 사업 수완도 뛰어나다. 그는 1996년 자신이 설립한 음반기획사 ‘2게더4에버’의 프로듀서 겸 이사다. 동시에 모바일 음원 콘텐츠 공급업체인 ‘아지트’와 가수 성시경과 나윤권의 매니지먼트 전담회사인 ‘MU2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곧 아지트와 MU2 엔터테인먼트를 합병해 주식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두 회사의 연 매출 규모는 140억원에 달한다. 아지트가 100억원, MU2 엔터테인먼트가 4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밖에도 그가 직접 만든 곡의 저작권료와 작업 비용으로 벌어들이는 액수가 연간 약 4억~5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개인 김형석’ 자체도 하나의 기업이다.“얼만 전까지 작가는 배고픈 직업이었죠. 하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 작가의 창의력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제가 그 덕을 본 것뿐이죠. 되돌아보면 음악을 택한 게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업은 작가로서의 파워를 키우기 위해 시작했는데 사업을 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죠. 사업과 음악은 다른 분야이지만 작곡가 김형석의 경쟁력을 깨닫게 된 것이죠.”김형석은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작곡과 출신의 고교 음악교사였고,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는 피아노 레슨 강사였다.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지도를 받는 입시생들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자고 깼다. 남보다 일찍 피아노를 배웠다. ‘청음’의 결과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을 경계한 아버지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집에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해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속사정 때문에 재수를 해서 대학(한양대 음대 작곡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음대 진학에 필요한 공부가 부족해 한 차례 낙방하고 재수하면서 화성학 등 작곡과 입학에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 한양대 작곡과 재학 때 같은 과 선배인 유재하의 노래가 좋아 대중음악에 흥미를 갖게 됐고, 동물원 멤버들과 친해지면서 가요계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가 작곡하고 김건모가 부른 ‘첫인상’이 TV 가요프로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작곡가로서 처음 상한가를 기록했다. “김건모의 재능과 끼를 일치감치 알아보고 그를 키우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가 심했어요.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외모’였죠. 하지만 저는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가 가진 열정과 재능,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저에게 큰 영감을 줬기 때문이죠. 박진영 때도 같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전 끝까지 그를 밀어줬어요.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 대단했거든요. 제가 믿고 키웠던 그 둘은 지금 누구나 인정하는 대형 스타가 됐어요. 전 지금도 제 안목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스타 메이커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가 키운 스타들은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원래 김건모의 백댄서를 하던 박진영은 김형석을 ‘사부’로 모시며 2년 간 음악 공부를 한 케이스. 그렇지만 지금은 스승을 위협할 정도의 대표적 프로듀서이자 사업가로 성장했다. 임창정은 1, 2집에서 별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김형석의 곡 ‘그때 또다시’를 불러 히트를 쳤다. 베이비복스가 ‘야야야’ ‘Get Up’ 등으로 2~5집을 내고, 유승준은 ‘나나나’ 의 3집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 밖에 성시경 유리상자 보아 박용하 죠앤 등이 김형석을 만나 첫 음반을 냈다. 그는 ‘재능이 60, 본인 노력이 40’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신인을 뽑으면 6개월 간 관찰한 뒤 능력이 있어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데뷔하고 나면 방송 출연과 CF, 각종 행사로 연습 시간이 부족하기 십상이어서 노력하지 않는 가수는 단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형석이 아끼는 가수는 솔리드 출신 김조한. 천부적 재능이 있으면서도 밥 먹을 때고, 길을 걸을 때고 항상 음반 작업 중인 음악을 흥얼거리며 몰입해 있다고 한다. 박진영도 신인 때 코드 3개를 가르쳐 주면 밤을 새워가며 1주일 만에 10곡을 써 오는 노력파였다고. 김형석의 ‘내게로 오는 길’로 발라드의 황제가 된 성시경은 박진영 김조한 다음으로 작곡과 프로듀서 훈련을 받는 애제자가 됐다. 명문대(고려대 사회학과) 출신에다 귀공자 타입인 성시경이 음악을 대충하다 그만 둘 줄 알았으나 ‘깜짝 놀랄 정도’로 피아노를 잘 치고 어려운 곡도 잘 이해하는 데다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할 것’이라는 각오를 보여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고. 성시경은 전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며 여러 곳에서 10억~20억원의 계약금을 제의받았으나 모두 거절, 2년6개월 간 3장의 앨범을 내는 조건으로 계약금 한 푼 없이 ‘김형석 사단’에 합류했다. 그는 지금 성시경의 5집 앨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형석이 지금은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스타 프로듀서가 됐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남모를 아픔도 있었다. 1996년 사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 대기업인 ㈜대우와 23억원 규모의 계약을 한 적이 있다. 김원준이나 김현성 등의 스타들을 위해 ‘2년에 앨범 다섯 장을 낸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불거진 대우 사태로 인해 자금 조달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그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 8년여 간의 송사 끝에 2004년 승소했지만 그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 충동까지 느꼈었다고 한다. 대우 사건을 계기로 김형석은 사업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게 마련. 그는 고난을 이겨낸 경험을 발판 삼아 본격적으로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KTV와 독점 계약을 하고 김조한 조앤 등의 걸출한 가수를 키워냈다. 성시경 나윤권 등의 발라드 스타를 발굴, ‘빅 히트’를 생산해 냈다.“제 흰 머리가 그때 다 생긴 겁니다. 사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겁 없이 뛰어든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죠. 대우 사태 이후 전문 경영인을 동업자로 영입, 회사를 함께 운영해 나가고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전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업에 더 치중하고 있고 동업자가 그 음원을 사용해 수익 모델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요. 창작에 좀 더 힘쓰고 싶은 마음에 시스템 정비를 한 것이죠. 그런 식으로 저는 점차 사업에선 발을 뺄 요량입니다. 사업 이외에도 제가 할 일들이 무궁무진하거든요. 제 욕심을 다 채우려면 자꾸 다른 영역에 도전해 봐야 할 것 같아요.”그는 요즘 ‘포터블 그루브 나인(PG9)’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직접 그룹 활동을 시작했다. 김형석은 “늘 다른 가수를 히트시키기 위한 음악을 해 왔다면 이번에는 그동안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는 것”이라며 “금요일에는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도 하고,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갈 계획”이라고 말한다. 사업을 안방에서만 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중국 가수인 관지엔을 스타로 키우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관지엔은 중국에서 태어나 발레를 전공한 남자 신인 가수로, 중국에서 가수 비의 프로모션을 맡았던 회사가 발굴해 김형석이 키우게 됐다. 현재 모든 작업이 끝나고 녹음만 남겨놓고 있다. “제가 걸어왔던 모든 길들이 지금 저에게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사업 실패도 해보고 많은 투자를 해 키운 가수가 빛도 보지 못하고 잊혀진 경우도 적지 않았죠. 저라고 늘 성공만 하진 않았어요. 노래도 100곡 정도를 쓰면 4곡만이 히트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전 쉬지 않고 음악만 생각하며 달려 왔어요. 한 우물만 파니까 천연 광천수가 나오더군요.”요즘 그는 다른 장르의 음악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대중가요가 아닌 드라마와 뮤지컬의 음악들이 그것이다. 드라마 ‘봄의 왈츠’의 주제 음악 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대형 뮤지컬인 ‘구미호’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준비 중이다. 뮤지컬 구미호는 내년 초 선보일 국내 창작 뮤지컬 대작으로 벌써부터 공연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 옥주현 성시경 김조한 등의 스타 가수들이 모여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해 부르는 프로젝트 앨범도 기획 중이다. “작곡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순수한 창작보다는 정보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의 트렌드를 가장 잘 잡아내고 그걸 젊은 사람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내는 거죠. 그런 면에서 젊은 작곡가들이 좀 더 유리해요. 그래서 전 다른 장르의 음악에 더 치중할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나 뮤지컬 음악이요. 일정한 틀과 기술만 있으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죠. 상품성도 뛰어나고요. 내년쯤엔 외국에 나가 영화음악을 더 공부할 예정입니다. 창작도 자꾸 공부하고 노력해야 나오는 땀의 산물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