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예리 과장의 부동산 재테크 ‘강남입성’ 풀스토리
건설 홍보팀 곽예리 과장(가명·34)은 결혼 6년 동안 일곱 번 이사한 끝에 강남 30평형대 아파트에 입성한 맹렬 여성이다. 곽 과장의 파란만장한 ‘강남 입성기’를 듣기 위해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예정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있었다.“회사일도 많고 공부 부담(야간 대학원)도 적지 않을 텐데, 재테크까지…대단하시네요”라는 기자의 인사말에 곽 과장은 “바쁜 생활을 일부러 즐기는 걸요”라며 환하게 웃는다.그녀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맞벌이하면서 야간 대학원에 다니고, 집안 살림에다 아이까지 키우지만 힘든 내색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가꿀 줄 아는 데다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 지금 그녀를 ‘부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부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그에 따른 행동 수칙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곽 과장은 대단히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긍정’이라는 화두부터 풀어나갔다. 곽 과장은 지난 99년 말 2년 간의 열애 끝에 대기업에 다니던 현재의 남편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 전 예비부부는 살 집을 찾아 나섰다. 당시 이들이 갖고 있던 현금은 5500만원. 대출 1000만원을 보태 6500만원짜리 전셋집을 찾을 요량이었다. 전셋집은 뭐니 뭐니 해도 출퇴근 접근성이 좋아야 하니, 지하철 역세권에 있는 아파트면 적당할 것 같았다. 강남권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곽 과장의 주요 ‘활동 무대’가 강남권이었기 때문이다.지하철 3호선이 닿는 옥수동에 가봤다. 이만한 전세자금으로는 산꼭대기에 있는 다가구 주택밖에 구할 수 없었다. 송파구를 찾았다. 8호선이 생기면서 역세권으로 바뀐 풍납동의 H아파트 18평형이 썩 마음에 들었다. 조금만 더 보태면 아예 매입할 수도 있었지만 신혼 때는 전셋집에 만족하기로 하고 주인에게 6500만원을 맡겼다. 하지만 전세 기간 2년 동안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전셋값이 그 사이 1억5000만원으로 급등한 것이다.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곽 과장의 집을 방문해 건너편 단지로 거의 쫓아내다시피 했다. 중개업자는 곽 과장 부부가 어차피 전세금 차액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곽 과장이 풍납동 아파트에서 이사를 간 곳은 맞은편 성내동 청구아파트 16평형이었다. 전세금은 9500만원. 2년 동안 전세금은 높아졌지만 아파트 평수는 작아진 셈이다. ‘집을 어떻게든 사야겠다’는 독한 마음이 든 것도 이때부터다.우선 남편이 갖고 있던 청약통장을 활용해 분양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군데 시도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인터넷으로 청약 접수했던 한남동의 한 주상복합 70평형에 덜컥 당첨됐다. 당시 꽤 인기 있는 아파트였는데, 최소 평형이 70평형이었던 것이다. 계약금도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싼 아파트였다. 곽 과장은 당첨 직후 웃돈 3000만원을 받고 전매할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은 돈을 번 셈이지만, 추후 청약통장을 사용할 기회를 잃게 됐다.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퇴직금으로 4000여만원을 받았다. 마침 곽 과장도 3000만원에 달하는 적금을 탈 수 있었다. 이래저래 집을 살 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갖춰지고 있었다. 곽 과장은 퇴근 후와 주말 시간을 이용해 아파트 매물을 보러 다녔다.곽 과장이 주로 눈여겨본 아파트 매물의 조건은 우선 ‘강남권 아파트’였다. 곽 과장의 생활 터전일 뿐만 아니라 자신과 남편의 직장에서도 가깝기 때문이다. 또 이곳에 집을 사야 투자 수익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음으로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역세권 단지를 구했다. 부부가 절약하기 위해서 출퇴근 수단으로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0분이 넘는 단지면 실거주 목적으로 매입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들었다.강남 역세권 아파트를 찾았지만 가격이 비싸면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곽 과장 부부가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전세자금을 포함, 최대 1억9000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대출 수준은 1억~1억5000만원 정도로 계산됐다. 시세가 최대 3억4000만원이 넘으면 매입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지난 2003년 10월29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골자로 한 정부의 10·29부동산대책이 발표됐다. 대책 발표 직후 다주택자들의 급매물이 한두 개씩 나오기 시작했다. 곽 과장은 이것이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청담동 S아파트 23평형 매물이 2억8000만원에 시장에 출현했다. 여전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최고가 대비 수천만원 조정받은 상태였다. 곽 과장은 조바심이 일었다.성내동 전셋집의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른 세입자를 직접 구한 다음 곽 과장 부부는 싸구려 월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청담동 아파트를 전세자금과 남편 퇴직금, 본인의 적금 등을 모두 털어 매입했다. 청담동 아파트엔 당시 전세 세입자가 살고 있었고 계약 기간도 1년 이상 남아 있는 상태였다. 전세를 끼고 매입하는 셈이어서 대출 이자 부담이 전혀 없는 점도 좋았다. 이 아파트는 대단지는 아니었지만 배후 가구가 많아 ‘대단지 효과’를 볼 수 있었던 데다 지하철 청담역까지 걸어서 5분이면 닿을 수 있었다. 청담공원도 가까웠다.하지만 월세를 내다 보니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한 게 친정집과 시댁을 활용하는 것. 곽 과장은 우선 광장동의 친정집으로 이사 가기로 마음먹었다. 친정집에 마침 남는 방이 하나 있었던 것. 3~4개월 살다 보니 옮겨야 할 형편이 됐다. 또다시 짐을 꾸려 양재동 시댁으로 들어갔다. 당시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4~5개월 동안 ‘시집살이’를 하는 게 더 편했다는 게 곽 과장의 회고. 1년여 간 이집저집 전전한 끝에 곽 과장 부부는 드디어 청담동 자신들의 아파트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때의 감격이란….곽 과장은 청담동 23평형 아파트에 처음 내 집을 마련했고, 사는 데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지만 좀더 큰 평형으로 갈아타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다. 아이가 커가고 있었고 평형이 좀더 넓어야 투자 수익도 높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곽 과장이 매입한 23평형 아파트는 그동안 부동산 시장 침체 속에서도 5000만~6000만원의 웃돈이 붙어 있었다. 갈아타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주변에도 적당한 매물이 많았다. 같은 단지 32평형을 대출을 끼고 과감하게 5억여원에 매입했다. 대출을 많이 낄 수밖에 없어 이자가 부담스러웠지만 좀더 절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곽 과장의 기대대로 이 아파트 값은 그동안 1억원 가까운 투자 수익을 안겨줬다. 아파트 값은 현재도 계속 상승 중이다.곽 과장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대출금을 어느 정도 갚으면 더욱 넓은 평형으로 갈아타기를 시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사를 몇 번 더 다녀야 할 수도 있지만 각오는 돼 있다. “최고의 노후 대비 재테크를 하고 있는데 이사 다니는 일 쯤이야….” 곽 과장의 생각은 확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