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환의 물리로 풀어본 경제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에서는 정량적인 금융 분석, 즉 금융공학 전문가들을 일컬어 퀀트(Quant) 혹은 ‘닥터 Q’라고 부른다. 퀀트는 최첨단 금융공학 상품인 파생상품의 설계사로 수학 물리학 통계학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이공계 전문인력이다. 채권시장의 옵션가격을 결정하는 모형으로 유명한 에마뉴엘 서먼이 대표적인 퀀트다.서먼은 아인슈타인을 꿈꾸던 물리학도로서 컬럼비아대학에서 입자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박사 후 연구원이 됐다. 이후 몇 년 간 그는 임시직으로 가족과 떨어져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뉴욕 인근 벨연구소의 한직에 머물렀다. 1980년 초부터 중개업자들은 주식과 채권을 단순히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파생상품을 다루기 시작했다. 위험을 분산하고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파생상품은 시장에서 점점 더 중요해졌다. 미국 내 대형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이 시기에 파생상품을 다루기 시작했다. 또한 천재적 물리학자가 많이 모여 있다고 알려진 벨연구소 등으로 인재 스카우트에 나섰다. 서먼은 1985년 골드만삭스로 옮긴 후 금융전략 그룹에서 주식옵션의 가격결정에 대한 ‘블랙-숄즈의 방법’을 채권으로 확장하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최일선 금융공학자로서 파생상품과 첨단 위험관리의 무한한 잠재력과 복잡성을 이해, 응용하는 데 공헌했다. 1993년 물리학자이자 응용수학자인 피셔 블랙과 경제학자인 마이런 숄즈는 주식의 가격을 결정해 주는 간단한 공식을 만들어냈다. 이 업적으로 숄즈와 또 다른 공헌자 로버트 머튼은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블랙은 수상 2년 전에 유명을 달리했다). 블랙-숄즈의 공식은 주식옵션을 거래할 때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수학적 복잡성을 빼고 나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모형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주식 옵션이란 매수자가 미래의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가격으로 매도자로부터 주식을 사는 것이 가능하도록 쌍방 간에 계약을 하는 것이다. 즉 미래의 정해진 시기가 될 때까지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 옵션만을 가진다. 예를 들어 주식의 현재 시세가 10만원이라고 하자. 옵션 행사시기 가격은 12만원과 8만원 등 두 가지만 있다고 가정한다. 미래의 지정된 시기에만 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유럽형 옵션’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주식가치가 12만원으로 올라갈 확률이 4분의 3이고, 8만원으로 내려갈 확률이 4분의 1이라고 하자. 그러면 옵션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 간단한 논리로 보면 3/4×2만원+1/4×0만원=1만5000원이 된다.만약 매도자가 금융공학을 적용해 차익거래(Arbitrage)를 할 경우 결론은 달라진다. 이 경우 위험이 전혀 없이 일정한 이익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은행에서 무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수수료 없이 주식을 살 수 있다고 하자. 은행에서 4만원을 대출받고 자기 돈 1만원을 보태 주식의 반을 현재 가격(5만원)에 산다. 간단히 추리해 보면 주식이 오른 경우나 내린 경우 모두 자기 돈 1만원은 다시 챙길 수 있다. 이러한 위험회피를 헤징(Hedging)이라고 하며, 이 헤징비용 1만원이 바로 옵션의 적정가격이 된다.이 간단한 사실이 모든 것을 바꿨다. 옵션의 적정비용인 1만원보다 더 많이 내고 사거나, 덜 받고 파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경우에나 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이 공식을 이자 및 거래비용, 미국형 옵션, 위험의 동적변화, 그리고 채권 및 환율 등 다양한 경우에 확장하는 문제는 지금도 많은 금융회사가 수학과 물리에서 뛰어난 퀀트를 찾고 있다. 바야흐로 금융과 물리가 손을 맞잡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