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가장 선호받는 종목 중 하나가 바로 ‘불황에도 강한 기업’이다. 이런 기업들은 경기 사이클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실적을 내면서 투자자들에게 꾸준한 수익률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리스크를 싫어하는 투자자들에겐 이런 종목이 제격이다.그렇다면 ‘불황에도 강한 기업’은 과연 어떤 기업일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브랜드 파워, 이는 가장 강력한 첫 번째 요소다. 브랜드 파워는 곧 독점적인 시장 점유율로 이어진다. 새로운 상품을 끊임없이 내놓으며 시장을 주도해 갈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이런 기업들은 오히려 불황일 때 독점지배력이 돋보인다. 따라서 실적의 오르내림도 작다. 주가 움직임도 좋다. 단기 그래프를 보면 등락이 나타나지만 길게 놓고 보면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린다.태평양은 ‘불황에도 강한 기업’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먼저 주가부터 살펴보자. 지난 2001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태평양의 주가는 주당 5만원 수준에 머물렀다. 1995년 국내 화장품 시장이 개방된 이후 외국 브랜드들이 속속 국내 시장에 상륙, 시장을 침투한 데 따른 결과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태평양은 우려와 달리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다져나갔다. 결국 태평양 주가는 2001년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 이후 잠깐의 조정기를 거친 후 지속적인 오름세를 이어갔다. 2005년 6월 초에는 27만 원대를 기록했다. 주가 흐름을 이어놓은 장기간 그래프를 보면 전형적인 ‘45도 종목’(45도 각도로 위로 올라가는 종목)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태평양의 기업 내재가치(펀더멘털)로 봤을 때 향후에도 그래프의 방향은 우상향(右上向)을 지속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태평양 주식이 투자자들로부터 국내 대표적인 가치주 중 하나로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상승가도를 달려온 비결은 무엇일까.첫 번째는 바로 브랜드 파워와 시장 장악력이다. 태평양은 명실공히 국내 화장품 시장 1위 업체다. 지난 60년간(태평양은 올해가 창립 60주년이다) 차곡차곡 쌓아온 노하우로 화장품 업계를 리드하며 갈수록 시장 지배력을 높여가고 있다. 특히 브랜드 파워는 여전히 상승세다. ‘설화수’ ‘헤라’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이 태평양의 대표적인 상품 브랜드다. 이 가운데 특히 설화수와 헤라는 연간 3000억원대의 매출을 일으킬 정도로 브랜드 파워가 막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산 고가 제품의 침투 속에서도 백화점 화장품 판매량의 15%가량을 차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현대증권 조윤정 애널리스트는 “설화수와 헤라의 성공으로 외국산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 대표 업체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며 “이들 두 제품의 시장 점유율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태평양의 국내 화장품 시장 점유율은 고가 제품의 매출 증가에 힘입어 지난 2002년 27.3%에서 2003년 30.5%, 2004년 34.5% 등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국내 경기 불황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강력한 유통망을 보유해 시장 장악력이 뛰어난 것도 태평양의 무기다. 태평양은 화장품 시장에서 파괴력이 있는 방문판매뿐 아니라 백화점이나 전문점 등 다수의 유통 채널을 보유해 경기 사이클에 따라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수익 기반도 안정적이다. 태평양의 총매출 가운데 고가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2%에 달한다. 고가 화장품 매출은 보통 경기흐름에 덜 민감하다. 고소득층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브랜드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경기 침체로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가 2003년 이후 줄곧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태평양이 유독 플러스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도 바로 고가 제품군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태평양의 시장 점유율은 머지않아 45%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태평양의 또 다른 강점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변신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는 태평양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끊임없는 브랜드 확장 및 유통망 확대 전략, 지주회사 도입, 해외 진출을 통한 글로벌 전략 등이 그런 사례다.예컨대 지난해부터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초저가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시장을 침투해 나가자 태평양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인 브랜드 확장과 재정비에 나서는 동시에 유통망을 대폭 개편했다. 저가 브랜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선보인 휴플레이스 매장의 경우 지난 5월 초 468호점까지 개설, 단일 유통망으로는 국내 최다를 기록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마케팅 비용 부담으로 단기적인 실적 둔화가 있었으나 태평양의 발 빠른 대응전략은 시장에서 서서히 먹혀들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 태평양은 프리미엄 제품군에 이어 중저가 시장으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투자증권 정재원 애널리스트는 “태평양이 저가 브랜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선보인 휴플레이스 매장이 작년 말 300개에서 올해 말 700개로 늘어나면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올 매출액이 전년 대비 6.7%, 영업이익은 12.2%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최근 가속도를 내고 있는 해외진출도 내수시장 한계를 극복하고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태평양은 올해 해외투자 규모를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린 2000만달러로 잡고 있다. 매출 규모도 지난해에는 1억달러 정도였지만 올해는 1억3000만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다.지난 4월 발표한 지주회사 전환 방침도 태평양 주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당시 발표된 지주회사 도입 계획안에 따르면 태평양은 자회사인 퍼시픽글라스와 장원산업을 올해 안으로 합병하고 내년 초 지주회사인 태평양홀딩스(가칭)와 태평양을 분할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퍼시픽글라스에 대해선 이미 지난 5월30일 흡수합병을 마무리지었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 체제가 도입되면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해지고 각 계열사들은 고유의 사업영역에만 몰두할 수 있어 경쟁력이 강화되는 것은 물론, 주주가치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삼성증권 한영아 애널리스트는 “태평양의 경우 특히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물론 핵심 사업의 역량 강화라는 두 가지 포석이 동시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금을 많이 갖고 있는 퍼시픽글라스와 장원산업을 흡수 합병해 해외 투자와 인수합병(M&A) 등 전략적인 부문을 집중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전략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지주회사 체제 도입으로 태평양의 배당 매력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투자증권 윤효진 애널리스트는 “지주회사의 특성을 생각하면 배당성향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과거 농심이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를 설립한 당시 배당성향이 2002년 13%에서 2003년 17%, 2004년 17.6%로 크게 확대된 경우를 고려할 때 이 같은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태평양의 배당성향은 15.9%로 비교적 낮았다. 태평양은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매년 이익을 내면서 2002년부터는 차입금을 모두 정리해 무차입 경영을 해오고 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을 나타내는 자기자본이익률(ROE)도 지난해 기준 18.7%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유통 주식 비율도 60%대에 달해 유동성도 풍부하다.물론 불안요소도 있다. 성장 속도 둔화가 그것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성장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속도가 정체돼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실제 이 회사는 지난 2003년부터 매출액 증가율이 정체 상태다. 특히 지난해에는 초저가 브랜드 대응을 위한 마케팅 비용 등으로 실적 둔화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지난해 대대적으로 벌인 브랜드와 유통망 재정비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효과를 보여 실적은 다시 개선 쪽으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신증권 정연우 애널리스트는 “투자 집중에 따른 단기 비용 발생과 이에 따른 실적 개선 폭 축소는 태평양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오히려 토양이 될 것”이라며 “불황기에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해온 이 같은 전략은 본격적인 경기 회복기에 태평양의 기업가치를 한 단계 더 레벨업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대형 외국 업체들의 침투가 갈수록 거세지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국내 화장품 시장은 외국 브랜드와 태평양의 2강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외국산 브랜드에 맞서 경쟁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가 태평양이 향후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 중의 하나다.☞ 태평양 주가추이 : ☞ 화장품시장 점유률 : ☞ 태평양 매출액 및 영업이익 추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