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희극인 베니스의 상인에는 샤일록이라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가 나온다. 부채를 못 갚으면 1파운드의 살을 떼어 내겠다는 계약을 체결하는 샤일록은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샤일록의 그림자는 2005년 중국에도 드리워 있다.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눈물까지 이끌어 낸 사고가 발생했던 랴오닝성의 쑨자완 탄광. 지난 2월 춘절(설) 연휴 기간에 발생한 가스폭발 사고로 214명이 세상을 떠났다. 1949년 공산 정권 수립 이래 최악의 탄광 사고가 터지자 당시 홍콩 언론들은 이 탄광에 인력을 공급한 원저우 제2징항(井巷)공정공사와 광부들 사이에 중국판 노비 계약서가 체결됐다고 폭로했다. 사고로 숨질 경우 2만위안(약 250만원, 1위안은 125원)만 보상하면 된다는 것. 계약서엔 사고로 부상해 노동력의 일부를 잃으면 대졸 초임을 약간 웃도는 4000위안, 전부를 잃으면 6000위안을 보상한다는 조항도 있었다.중국 최대 명절 춘절 연휴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광부들의 요구도 거부당했다. ‘춘절 기간에 일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고 1000위안의 벌금을 낸다’는 조항 때문에 광부들은 단 하루 가족과 만두를 빚은 뒤 ‘죽음의 맨홀’로 들어갔다. 춘절에 광부들을 막장으로 몰아넣은 것은 ‘검은 황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캐고 싶은 원저우 상인의 집착인 듯싶다.그런 집착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중국 경제는 자원 다소비 구조다. 중국 경제는 건국 이래 50여년 동안 10배 성장했다. 하지만 광산 자원 소모량은 40배 늘었다. 중국 경제가 과열되자 전력난이 심화했고, 이는 석탄 품귀로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전기의 70% 이상이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에서 나온다. 석탄 가격이 급등한 배경이다. 돈 냄새를 맡는 데 탁월한 원저우 상인이 그 흐름을 놓칠 리 없다. 2000년께부터 그들이 달려간 곳은 랴오닝성뿐이 아니다. 대표적인 석탄 생산지 산시(山西)성에는 차오메이탄(炒煤炭:석탄 투기단)이 떴다는 소문이 돌았다. 차오팡퇀(炒房團:부동산 투기단)을 조직했던 원저우 상인이 석탄을 다음 타깃으로 삼았다는 것이다.광산으로 원저우 자본이 흘러들면서 중국 지도부가 맹목적인 광산 개발을 경고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원저우시는 작년 말 저장성 정부와 함께 조사팀을 구성, 산시성으로 날아갔다. ‘원저우 기업가 석탄업종 투자 의의 및 역할’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를 들여다 보자. 산시성에는 3000여개의 광산이 있다. 이 가운데 원저우 상인이 투자한 게 300여 곳. 30억위안이 들어간 이들 광산에서 연간 2000만t의 석탄이 생산된다. 산시성 연간 석탄 생산량의 4.5%, 중국 전체로는 1%를 차지한다. 구이저우 안후이 신장 등지에까지 원저우 상인이 석탄은 물론 유전 투자 등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자원 개발에 흘러든 원저우 자본은 훨씬 많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보고서는 그러나 “원저우 상인의 석탄 투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 때문”이라며 “그 사실만으로 원저우 상인을 이상하게 볼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실제 원저우 상인은 폭리라는 말을 싫어한다. 원저우의 한 부부는 모아온 모든 돈을 유전 개발에 올인했다. 부부는 일꾼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일했다. 1년 뒤 그들은 한 방울의 기름도 발견하지 못했고 남편은 이승을 하직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높은 위험, 높은 수익)에 베팅하는 원저우 상인의 단면이다.하지만 그들은 투기라는 말도 싫어한다.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을 때 원저우 상인은 앞장서서 투자를 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이제는 원저우 상인을 부동산 거품의 속죄양으로 삼으려고 한다. 석탄 투자도 마찬가지다.” 원저우 상인 우 선생의 얘기다. 여론의 눈은 곱지 않지만 원저우 상인이 속한 원저우시와 저장성 정부는 우호적이다. 저장성의 자원난을 해결할 구세주로 보기 때문이다. 검은 황금에 대한 원저우 상인의 집착은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