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부빈의 ‘러시안 잼’

자매’ ‘갈매기’ ‘벚꽃 동산’ ‘바냐 아저씨’…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제목만 들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은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꽃피는 5월 LG 아트센터에서 체호프 마니아를 위한 종합 선물세트를 준비했다. 연극 강국 폴란드의 대표 연출가 안제이 부빈(Andrezej Bubien)과 러시아 현대문학의 베스트셀러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Ludmila Ulitskaya)가 만나 러시아 현대극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러시안 잼’이다.‘러시안 잼’이 체호프 마니아를 위한 작품이라는 것은 이 드라마 의 부제 ‘체호프 이후(After Chekhov)’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안 잼’을 보다보면 체호프의 작품 중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의 등장인물과 주요 사건들을 21세기 러시아 상황에 맞게 재구성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마치 체호프의 여러 작품들이 하나의 드라마로 재탄생한 듯하다.이 작품은 2002년을 배경으로 모스크바 근교 시골 마을에 사는 레표힌 일가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인 나탈리야는 19살부터 가족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살고 있던 영지를 재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가족들 간의 갈등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자본주의와 실용주의의 물결을 먹을 수 없는 잼에 비유한 작품이 바로 ‘러시안 잼’이다.‘러시안 잼’ 공연에서 가장 획기적인 점은 원작에 없는 독특한 무대장치에 있다. 물이 가득 차 있는 무대. 그 위에 자리 잡은 레표힌 일가의 응접실은 마치 섬처럼 보인다. 주위에 놓인 불안해 보이는 몇 개의 다리를 통해 등장 인물들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마치 낡고 오래되어 버려진 집처럼 보이는 응접실은 과거에 연연해 살고 있는 주인공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연극의 피날레, 집이 팔리자 인부들이 들어와 집에 있던 모든 가구와 다리를 치워버린다. 결국 무대 위에는 무인도 같은 응접실만 덩그러니 남고, 그곳에 남은 레표힌 가족들은 외부와 어떤 접촉도 할 수 없고, 떠날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러시안 잼’은 여전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과거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는 21세기 러시아인들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러시안 잼’은 부빈의 연출력과 사찌르 극장 배우들의 환상적인 앙상블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2007년 폴란드 국제 연극 페스티벌과 2008 황금소피트에서 여러 부문 수상 및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올해에는 러시아 최고의 예술 축제인 황금마스크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연출가상, 최우수 무대미술상 후보에도 올랐다. 2시간 15분 동안 과거와 현재 속에서 괴로워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유머와 풍자로 그려낸 러시아 현대극의 진수를 느껴보자.국이 낳은 세기의 소프라노 ‘조수미’와 세계 5대 오페라 하우스를 정복한 러시아의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르스토프스키’. 세계적인 두 거장을 2009년 5월 28일과 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2005년 공연 후 한국에서 4년 만에 다시 볼 수 있는 무대. 이번 공연은 클래식의 걸작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조수미는 1995년 내한 공연 이후 약 15년 만에 펠리샹 다비드의 고난이도 아리아 ‘미조리의 노래’를 선보인다. 롯시니의 오페라 <세미라미데>에 삽입된 ‘나를 유혹하는 아름다운 빛’, 오베르의 오페라 <검은 망토> 등 오페라 아리아를 통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진수를 보여 줄 것이다. 드미트리 흐보르스토프스키가 들려주는 이탈리아와 독일 오페라와 프랑스, 러시아 오페라 아리아도 놓칠 수 없는 무대가 될 것이다.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는 토마스 햄슨, 브린 터펠과 함께 세계 3대 바리톤이라 불린다. 타고난 성량과 농도 짙은 음색,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로 무대를 장악하며 전 세계 음악계로부터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태어났으며, 1989년 영국에서 열린 카디프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조수미, 드미트리 흐보르스토프스키와 함께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로 손꼽히며 국제 오페라 무대와 레코딩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온 마린’의 지휘가 공연의 완성도를 한껏 높였다. 게다가 세계적인 카운터 테너 요시카즈 메라와의 협연,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 신년음악회, 오페라 ‘춘희’, ‘정조대왕의 꿈’ 등 지난 5년간 400여 회의 왕성한 연주, 녹음 활동을 펼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MPO - Mostly Philharmonic Orchestra)가 반주한다. MPO의 반주는 조수미와 드미트리 흐보르스토프스키 두 거장의 환상적인 음색과 함께 환상적인 무대로 만들 것이다.김가희 기자 holic@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