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스 파리를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루브르 박물관을 한 번쯤 방문한다. 루브르는 본래 중세 십자군의 주역이었던 존엄왕 필립에서부터 프랑수아 1세까지 프랑스 왕이 거주하던 궁전이었지만 루이 14세가 루브르 궁을 ‘예술의 성전’으로 만들었다.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루브르 박물관이 일반 대중들에게 완전히 공개가 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다. 왕을 폐위시킨 프랑스 국민 회의는 1783년 루브르 왕립 미술관을 대중 미술관으로 개조하면서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가 되었다.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모나리자>를 직접 감상하면 그 작은 크기에 놀란다. 크기가 77cm×53cm밖에 안 되는 백색 포플러 나무에 유화로 그려져 있는 패널화지만 그 당시 액자에 넣을 수 있는 최초의 그림이었다.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공식 초상화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악사와 광대를 화실에 초청을 모델의 자연스러운 표정을 이끌어냈다고 한다.<모나리자>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당시 피렌체 공화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상인 조콘다의 젊은 부인 리자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모나리자>를 의뢰인에게 전해주지 않고 1516년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작품을 가지고 왔다. 프랑수아 1세가 이 작품을 소장하게 된 경위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지만 16세기 퐁텐블로 궁에 걸려 있었다. 그 이후 <모나리자>는 튈리르 궁의 나폴레옹 개인 침실에 걸려 있다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져 18세기에 최초로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품 중 신문을 읽고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이다. 이 작품은 실제 사건을 재현함으로서 낭만주의를 뿌리 내리게 했다.1816년 망명 귀족 출신인 뒤루아 드 쇼마레가 지휘하던 왕실 해군 소속 메두사 호가 서아프리카 세네갈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다. 당시 배에는 구명보트가 얼마 없어 승선자 149명은 뗏목에 타야만 했다. 그러나 뗏목에 연결된 보트에 타고 있던 선장은 자신의 안전만 생각해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고 도망쳐 버렸다.149명의 사람들은 뗏목에 의지한 채 세네갈 해안을 12일 동안 망망대해에서 굶주림과 공포에 떨어야만 했었다. 뗏목은 아르고스 함대에 발견되어 15명만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생존자 중 프랑스로 돌아온 코레아르와 사비니라는 두 명의 생존자가 난파 당시 상황을 글을 발표함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무능한 뒤루아 드 쇼마레를 메두사 호의 책임자로 위임한 사실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신문을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된 제리코는 자연 재해로 인해 불안과 공포로 광란에 빠진 사람들을 표현하고자 이 작품을 제작한다.바람에 돛은 부풀어 있고 파도는 당장이라도 뗏목을 덮치려고 넘실대고 있고 하늘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여 있으며 바람은 뗏목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왼쪽 하단에 두 구의 시체 중 하나는 바다로 서서히 미끄러져 가고 있는데 시체의 모델은 화가 들라크루아다.난파당한 사람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쏠려 있는데 화면 왼쪽 수염을 기른 생존자는 아들의 시체 옆에서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고 뗏목 중앙에는 무릎을 꿇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으며 화면 오른쪽에는 한 남자가 큰 통 위에 올라가 수평선 너머 배를 발견하고는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천을 흔들고 있다. 돛대 근처에서 바다를 향해 손을 들고 있는 남자와 옆에 있는 사람이 두 명의 생존자 코레아드와 사비니다.오른쪽 하단 파도에 의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시체는 나중에 그려진 것으로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생존자들이 천을 흔들고 있는 방향의 작은 배는 뗏목을 구조하기 위한 배다.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는 구조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두 명의 생존자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전해 듣고 실물과 같은 거대한 뗏목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죽은 사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지역의 병원 시체실에서 시신을 연구하기까지 했다.루브르 박물관에서 여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 앵그르의 <터키탕>이다. 이 작품은 앵그르가 50여 년 동안 그려온 목욕하는 여인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누드화의 정물화로 불릴 만큼 많은 여인들의 관능적인 몸을 표현한 <터키탕>은 앵그르 작품 중에 드물게 구성 자체가 공상적이다.하렘의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상상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 악기를 들고 있는 여인 오른쪽에 어색할 정도로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인을 앵그르가 가장 신경을 많이 써서 표현했는데 두 번째 부인 델핀을 모델로 했다. 그녀 뒤에서 서로의 가슴을 만지고 있는 두 명의 여인은 동성애를 암시하고 있다.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1867>의 이 작품은 원래 사각형의 캔버스로 제작되었으나 작품을 구입했던 루이 나폴레옹에게서 돌려받은 후 앵그르는 원형의 캔버스로 바꾸었다.박희숙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