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하반기에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국내 미술시장 경기는 2007년 하반기에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2008년 들어서면서 국제 경기변화에 의해 하향곡선을 긋기 시작하더니, 올해 초를 기점으로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미술시장의 경기가 언제 회복될 것인가, 조만간 회복조짐이라도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너도나도 힘들어 못살겠다고 아우성인데, 과연 미술시장의 실물경기는 어떨까. 그리고 한쪽에선 미술품 가격이 폭락했다고 난리인데, 실제 거래되는 작품 가격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실물경기에 가장 민감한 ‘중개인 가격’을 조사해봤다. 일명 ‘나까마 가격’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 가격은 미술시장의 경기변화를 체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결과를 말하기에 앞서 소위 ‘중개인(나까마)’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되짚을 필요가 있겠다. 중개인 혹은 상설화랑은 평상시 수요자가 경매를 거치지 않고 작품을 매매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유통경로이다. 엄연히 시장의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중개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을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개인 가격은 ‘미술시장 경기변화의 리트머스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중개인 가격변화를 체크해 보면 곧 실질적인 경기변화를 근접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지난 4월 중순 중개인 가격을 조사한 결과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최근 일련의 경기상황을 감안할 때 지난해에 비해 가격 하락 폭이 굉장히 클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의외로 하락 폭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작가의 경우 작품 가격이 상승한 예도 있었다. 그리고 예년의 평균수준을 유지하는 예도 일부 목격됐다.조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했다. 우선 객관적인 변화추이를 얻기 위해 작년에 조사했던 대상을 동일하게 적용했으며, 일부 인기작가의 경우 참조 란에 추가했다. 조사 방법은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중개인 및 상설화랑에 직접 설문한 결과를 평균으로 삼았다.먼저 일부 원로작가와 작고작가가 중심인 ‘주요 작가 시대별 작품가격 변화’를 보자. 최근 위작시비가 끊이지 않는 박수근(1914~1965)의 경우 오히려 작품의 호가(呼價)가 올랐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릴 경우 반드시 위작시비도 많다는 것이 정설인 양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선호도가 높은 60년대 초반 작품은 물론 일반 작품마저 품귀상태이다. 한창 경기가 좋았던 2007년도 호당 3억 원선이던 것이 4월 현재 3억5000만 원을 웃돌고 있었다.꾸준한 인기가 지속된 것은 이중섭(1916~1956)과 김환기(1913~1974)도 마찬가지였다. 호당가격은 각각 2억 원과 3000만 원이 상한가로 형성됐다. 그리고 유영국(1916~2002)은 호가의 상한가는 호당 800만 원 선이었지만, 하한가는 500만~700만 원으로 올라 평균 가격은 상승했다. 유영국의 경우 작가가 사망한 이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이다. 더불어 시장에서 작품의 유통관리도 잘하고 있다는 평가다.임직순(1921~1996)과 김기창(1913~2001), 천경자(1913~2001)의 경우 하락 폭이 큰 편에 속했다. 하지만 수요자의 선호도가 높은 작품은 어느 정도 제 가격을 유지했다. 임직순의 경우 80년대 꽃과 여인, 김기창의 경우 탄탄한 구성의 청록산수, 천경자는 여인과 꽃이 등장하는 작품이 높은 선호도를 유지했다. 천경자의 작품이라도 메인 테마에 비해 일반 소재는 약 30% 정도 낮은 가격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이 경우를 보더라도 시장의 선호도 기준이 작품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작품의 구입과정에서 같은 작가라도 어떤 작품을 사느냐에 따라 차후 리세일 과정에서 경제적 부대효과를 좌우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40대 작가’의 평균 호가를 보면 2006년부터 현재까지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장 상황에 상관없이 작가들이 자신이 받고 싶은 가격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받고 싶다고 해서 제 가격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0대 연령층은 작가적 역량과 시장의 선호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매우 크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매매가 성사되는 개인별 가격 역시 편차가 크다는 점을 유념하자.‘주요 인기작가 중개인 호당가격 비교’의 경우 주로 경매에서 인기가 높은 작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미술경기가 가장 좋았다는 2007년 하반기와 현재를 비교하기 위함이다. 만 1년 사이에 경매에서의 인기작가 층에 변화가 일어났다. 최근 들어 자주 경매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표의 하단부에 첨가했다.이우환(1936~)은 여전히 70년대 ‘라인’시리즈의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반면 ‘조응’시리즈는 가격 변동 폭이 큰 편이었다. 가령 100호 기준 2007년 9월엔 5억 원이던 것이 지금은 2억 원 정도였다. 물론 아주 수작일 경우 3억 원에도 육박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2007년도 미술시장을 달군 주역이었던 오치균(1956~)과 사석원(1960~)의 작품 가격은 2007년 한창 때에 비해 큰 폭으로 내려갔다. 유념할 것은 그 내려간 가격이 현재 상업화랑 전시에서 매매되는 유통가격을 밑돌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얘기는 곧 투기열기가 극에 달했던 재작년의 높은 작품 가격은 전시가격이 아니라 현장의 ‘중개인’ 가격과 ‘경매’가격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중장기적인 투자안목이 아니라, 단타성 투기욕이 앞설 경우 지나치게 기형적인 작품 가격대가 형성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구매자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이다.이왈종(1945~)의 경우 작품의 제작 기법에 따라 시장의 매매가격이 크게 차이난다는 점을 유념하자. 일반 작품에 비해 부조형식의 작품이 30~40% 저렴하다. 이는 부조 작품의 경우 기본 틀을 만들어 복수로 제작해 채색만 다르게 한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상대적으로 젊은 유망 작가들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홍경택, 김동유, 이동기, 박성민, 도성욱, 윤병락, 권기수, 이수동 등의 선호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었다. 점차 미술애호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선호되는 작가의 연령층도 낮아지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짐작된다.이번 미술시장의 실물경기를 가늠해보기 위한 현장 설문결과를 통해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우선 현재가 침체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상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세계 경제와 더불어 미술시장도 함께 위축된 상태는 후발주자인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점을 의식해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세계 시장에 과감히 노크해보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아마도 이번 침잠기가 끝나면 주목할 만한 유망 작가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설문결과 역시 이처럼 젊은 작가들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시장은 물론 세계 시장을 상대로 무궁한 비전을 펼쳐가는 그들이야말로 한국 미술시장의 미래를 열어갈 중추적인 주역이지 되지 않을까.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