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 능력 국내 1위…SK에너지

로벌 정유사들은 지난해 4분기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140달러대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가 연말 40달러 수준으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석유소비도 크게 줄었다. 이 탓에 유가에 민감한 정유주들의 주가는 지난해 4분기부터 약세를 면치 못했다.하지만 올해 1분기를 거치면서 정유 업황이 눈에 띄게 나아지고 있다. 경기가 바닥에 도달했다는 지표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유류 제품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국제유가도 반등 중이다. 세계 석유소비량은 지난해 5월부터 전년 대비 하락세를 보였지만 작년 12월 저점을 기록한 후 조금씩 증가세로 돌아섰다. 아직 본격적인 수요 회복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단기 저점은 통과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반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감산 움직임으로 원유 생산량은 빠르게 줄고 있다. SK증권에 따르면 지난 2월 원유 생산량은 8124만 배럴로 지난 2006년 8월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적었다. OPEC이 지난해 12월 감산에 합의한 이후 회원국들이 이행 지침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올해 점진적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백영찬 SK증권 연구원은 “원유 생산량의 지속적인 감소와 석유 소비 회복, 투기적인 거래의 증가 가능성 등으로 유가는 서서히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유가의 상승 가능성은 달러화가 약세 전환하고 있는 움직임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화폐자산과 실물자산을 각각 대표하는 달러와 원유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역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국제 유가가 추세적으로 상승했던 지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달러 가치는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유가는 지난해 상반기 고점을 찍은 후 급락세를 보였지만 올 들어 다시 반등 중이다. 이에 반해 치솟기만 하던 달러 가치는 최근 하향 안정세에 접어들었다.특히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경기부양 정책의 일환으로 통화를 급격하게 늘리고 있어 달러 가치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의 경우 재정지출 확대에 이어 돈을 찍어 시중에 푸는 ‘양적 완화’ 정책까지 동원하고 있어 화폐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유영국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지난해 1월 기준 본원통화는 820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2010년에는 약 3.7배 증가한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경기부양 효과가 커지면서 신용창출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될 경우 폭발적인 통화팽창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유 연구원은 “통화증가로 달러 가치가 떨어질 경우 원유와 같은 실물자산 가격은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향후 2∼3년 안에 본격적인 통화팽창이 일어날 경우 국제유가는 지난해 고점을 상회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유진투자증권은 두바이유 기준으로 올해 연간 평균 유가를 배럴당 48달러로 잡았다가 최근 52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연간 평균 가격은 2010년 67달러에 이어 2011년에는 95달러까지 급상승할 것으로 이 증권사는 추정했다.이에 따라 유진투자증권이 최근 정유업종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확대’로 높이는 등 긍정적인 시각이 증권업계에 확산되고 있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3월부터 진행된 반등랠리가 연중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화폐가치 하락의 수혜가 예상되는 에너지 관련주의 전망은 매우 밝으므로 관심을 가질 만 하다”고 평가했다. 달러화 하락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에너지주가 부각되고 있다는 설명이다.SK에너지는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국내 정유주 가운데 톱픽(최선호주)으로 꼽는 종목이다. 이 회사는 지난 2007년 SK가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인적분할을 통해 사업 자회사로 분리됐다. 원유를 정제해 석유류 제품을 생산하는 석유사업, 나프타를 활용한 화학사업, 윤활유 사업, 자원 탐사 및 개발(E&P)사업 등이 SK에너지의 주력 분야다. 이 가운데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약 74%를 석유사업이 차지하고 있다. 일일 정제량은 111만 배럴로 국내 최대 규모다.SK에너지의 강점은 수익성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고 E&P 부문에서 고성장이 기대된다는 점이 꼽힌다. 지난해 4분기 SK에너지의 영업이익은 2278억 원으로 전분기(7322억원)에 비해 70%나 급감했다. 하지만 올 들어 유가 회복에 힘입어 실적은 지난해 4분기를 바닥으로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된다.NH투자증권은 올해 SK에너지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당초 1조3000억 원대에서 최근 1조7000억 원으로 올려 잡았다. 이 증권사의 최지환 연구원은 “글로벌 정유사들의 공급량 조정, 주요 국가의 경기 부양책, 국제유가 하락 진정 등으로 이익은 점진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특히 향후 수익성 개선 속도가 빠를 것이란 점이 주목된다. 지난해 울산공장의 RFCC(중질유분해시설)가 가동을 시작하면서 고도화설비 비율이 9%에서 15%로 올라선 데 이어 오는 2011년 인천공장의 고도화시설까지 가세하면 18%까지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도화 비율 상승에 따른 영업이익 증가 효과는 올해만 3000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고도화 비율이 높을수록 정유사는 낮은 원가에 휘발유나 경유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어 수익성이 좋아지는 효과를 얻는다. 따라서 고도화 비율이 높으면 정유 업황의 변동성에 덜 노출돼 안정적인 실적이 가능해진다.E&P 사업은 SK에너지의 성장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966년 페루의 석유생산광구 지분참여를 시작으로 현재 20광구에 투자해놓고 있다. 지분율을 감안했을 때 SK에너지가 보유한 석유와 천연가스의 총 매장 규모는 5억2000만 배럴에 달한다. 올해 2분기와 내년에 예멘과 페루에서 각각 LNG(액화천연가스) 광구를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어서 일일 생산량은 현재 배럴당 3만6000 배럴에서 내년 말이면 7만5000 배럴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E&P 사업은 안정적인 ‘캐시 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 화학 윤활유 등 정유 이외의 사업 분야도 호조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1조 원가량 환차손을 입었지만 올해 환율이 하락하면 2600억 원가량의 환차익이 가능할 것으로 하나대투증권은 분석했다.다만 정유사의 이익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원유를 들여와 석유제품을 만들어 팔고 남는 이익)은 하반기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이상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 3월 정제마진은 최근 가장 낮은 수준이었던 지난해 11월보다 더 낮게 나왔다”며 “정제마진 확대에 따른 본격적인 실적개선은 하반기 이후부터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인도 최대 정유사인 릴라이언스가 2분기부터 신규물량을 내놓기 시작해 단기적으로 물량 부담이 있지만 중국 남미 등 이머징 시장의 석유 소비량이 당초 예상보다 높은 수준이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또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지역 주요 정유업체들이 올해 2분기 설비보수가 집중돼 있어 신규공급 부담을 일정 수준 완충해줄 것으로 예상된다.대부분의 증권사들은 SK에너지에 대한 투자의견으로 ‘매수’를 제시해놓고 있고 유진투자증권과 SK증권은 ‘강력 매수’ 등급을 매겼다. 주요 증권사들이 제시한 SK에너지의 6개월 목표주가는 12만(동양 푸르덴셜 한화 NH투자증권)∼15만 원(SK증권) 수준이다.고도화 설비 비율 높아 수익성도 좋아져 올해 환율 하락으로 2600억 원 환차익 기대. 정제마진은 하반기 이후에나 개선 기대.박해영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