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 질레리가 VVIP 고객에게 제안하는 이미지 컨설팅

난 3월 초, MONEY 4월호 기획을 막 끝내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던 중 제일모직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신사복 브랜드 빨 질레리가 VVIP고객을 위한 이미지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한 번 체험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였다.귀가 솔깃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이미지 컨설팅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최고급 슈트 브랜드인 빨 질레리가 VVIP고객만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점에도 마음이 끌렸다. MONEY지의 위상을 인정받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클래식함과 고급스러움을 제품 콘셉트로 지향하는 빨 질레리는 이탈리아 전통의 비접착 수제 생산 방식을 고집하는, 가장 전형적인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중 하나다. 뛰어난 소재와 정교한 봉제 기술, 세련된 디자인이 삼위일체로 결합돼 최상의 착용감과 옷맵시를 구현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때문에 에르메네질도 제냐, 꼬르넬리아니, 카날리 등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4대 신사복 브랜드로 꼽힌다. 특히 컬러의 믹스 앤 매치는 감탄을 자아낸다.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이탈리아인들의 컬러 감각이 슈트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3월 25일 약속장소인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비즈니스 룸에 들어서니 낯익은 여성이 화사한 미소로 반긴다. 홍순아 삼성CS아카데미 소장. 국내 이미지 컨설팅 분야의 선두 주자이고 TV 등을 통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분이다.자리에 앉자마자 홍 소장은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건데 우리의 사주풀이 비슷한 것”이라며 생년월일을 물었다. 첫 대면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아이스 브레이킹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생년월일을 통해 그 사람의 내면에 맞는 색채를 골라주는 ‘색채 심리학’이라는 설명이었다.진단 결과 필자에게는 인디고 블루가 가장 잘 맞는 컬러인 것으로 나왔다. 아울러 옐로 계열의 색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본격적인 컨설팅은 컬러 컨설팅과 라인 컨설팅으로 진행됐다. 먼저 컬러 컨설팅을 위해 밝은 조명기구 아래서 필자의 얼굴을 살펴본 홍 소장은 “눈동자에 푸른색이 옅게 돌고 피부 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몇 가지 종류의 드레이프를 턱 밑에 받쳐보며 어떤 색상이 얼굴을 가장 잘 살려주는지를 비교해 보았다. 결과는 파스텔 톤의 블루 계열이었다. 홍 소장은 컬러 진단을 마친 후 “앞으로 옷을 고를 때 참고하라”며 명함 크기의 카드 한 장을 건넸다. 컬러 칩이라고 불리는 이 카드는 모두 네 가지 유형으로 각각에 서로 다른 18가지의 색상 샘플이 인쇄돼 있었다.라인 컨설팅은 긴 줄을 이용해 신체 각 부위의 비례를 측정하는 것으로 체형 진단으로 시작됐다. 측정 결과 필자의 전체적인 체형은 Y, H, D 가운데 몸의 굴곡이 거의 없는 H형인 것으로 분석됐다. (참고로 Y형은 역삼각 체형, D형은 배가 나온 체형이다) 홍 소장은 “H형도 슈트가 잘 어울리긴 하지만 보는 이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보완하려면 셔츠와 넥타이의 컬러를 조화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각 부위별로는 팔 길이가 다소 짧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홍 소장은 “팔이 짧은 사람들은 셔츠 차림일 때 소매를 걷어주면 실제보다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귀띔해 줬다. 상하체의 비율은 1 대 1이었는데 홍 소장은 “상체가 긴 사람들의 경우는 슈트 길이를 짧게 해주면 단점이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진단을 마친 후 필자와 홍 소장은 인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빨 질레리 매장으로 옮겼다. 진열된 옷 중에서 몇 벌을 걸쳐봤는데 하나같이 가볍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홍 소장은 실크 느낌의 광택이 있는 슈트를 골라 “이런 스타일이 어울릴 것”이라며 건넸다. 착용하고 거울을 보니 새 옷인데도 마치 그동안 계속 입어서 눈에 익은 옷인 양 자연스럽게 보였다.약 2시간에 걸친 이미지 컨설팅 체험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필자의 머리 속에는 “현대는 이미지 소비의 시대”라던 장 보들리야르의 말이 떠올랐다. ‘이미지 소비의 시대에 사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라면 이미지 연출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1970년대에 이탈리아 북동부의 베네토 주에 위치한 비첸차라는,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 소도시에서 탄생했다. 이탈리아 최대 남성복 업체인 포랄(Forall)의 CEO 지안프랑코 바리차가 신상품을 출시하면서빨 질레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 이 이름은 비첸차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 소유했던 성 ‘팔라초 질레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비첸차는 예로부터 최상급 원단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빨 질레리의 심볼 마크는 굳건히 뿌리 내리고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를 형상화했다.이는 인종이나 연령, 문화와 계절을 초월해 모든 남자를 위한 다양한 옷을 만들겠다는 의지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글 임혁 편집장 ·사진 이승재 기자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