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한 KB투자증권 사장

민은행은 국내 최대 은행이다. 은행 규모의 잣대가 되는 자기자본 규모도 가장 크지만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1200여 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어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소매금융에 특히 강하다. 그래서 펀드판매 실적이나 고객계좌 수는 다른 은행을 압도한다.때문에 전문가들은 지난 2007년 국민은행의 모회사인 KB금융지주가 한누리투자증권(현 KB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증권업에 진출하자 증권업계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민은행이 자사의 영업망을 활용해 지원에 나설 경우 KB투자증권이 리딩증권사로 도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저가 수수료를 앞세워 소매시장 공략에 나서게 되면 그 파괴력은 엄청날 것으로 평가했다.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현재 전문가들의 예상은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KB투자증권은 지난해 회사채 시장에서 증권사 2위에 올라 두각을 나타내더니, 롯데의 두산주류 인수자문을 맡아 M&A분야에서도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 2월에는 온라인 소매위탁매매 사업에 진출해 50여일 만에 10만 명 넘는 고객을 확보했다. 올해말까지는 고객수가 최소 25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회사는 앞으로 4년후인 2013년에는 대우증권 삼성증권 등 국내 대형증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 빅3’종합증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청사진까지 제시해놓고 있다.KB투자증권의 이런 변화의 한 가운데에는 지난해 3월 사령탑으로 취임한 김명한 사장이 있다. 김 사장은 20여년의 금융인 생활 대부분을 씨티은행 체이스맨하탄 JP모건 도이치뱅크 등 외국계 금융투자회사에서 보낸 IB(Investment Bank) 전문가다. 특히 JP모건과 도이치뱅크에서는 한국 대표를 맡아 국내 영업을 진두 지휘했었다.그동안 외국계 IB출신들이 국내 증권사로 전직을 하면 단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부 시스템이 생소한데다 영업환경도 달라 과거와 같은 실적을 내기 쉽지 않아서다. 그러나 김 사장은 주변의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며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다. 회사의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꿔놓으면서 실적도 비약적으로 호전시켰다.김 사장은 KB투자증권을 맡으면서 회사의 순환보직제를 폐지하고 본부별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 그는 “국내 증권사 인력들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는 높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며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한 전문가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인재 경영의 핵심이라고 판단해 순환보직제를 없앴다”고 말했다. 내부결 제시스템도 간소화 했다. 모든 결제나 의사합의는 e메일로 하고 중요사안이나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사항은 결제권자들이 모두 한 방에 모여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결정을 하도록 했다. 의사결정이 훨씬 신속해 졌음은 물론이다.조직도 바꿨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기업금융에 속해있던 M&A(인수·합병)업무와 ECM(Equity Capital Market 주식관련 발행업무)부서를 따로 묶어 IB사업본부를 만든 것이다. 그 결실은 롯데의 주산주류 인수 자문사 선정으로 나타났다. 김 사장은 “한누리투자증권은 원래 기업금융과 법인영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던 회사였다”며 “KB금융그룹으로 편입된 후 관계사와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이들 부문에서의 실적이 크게 호전됐다”고 말했다.실제 지난해 대부분의 국내 증권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이익규모가 절반으로 줄었고 손실을 낸 회사도 있었지만 KB투자증권만은 예외였다. 매출과 이익이 모두 전년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고 올해 역시 시장상황이 녹녹치 않지만 최소 50% 이상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그러나 KB투자증권의 진짜 잠재력은 IB부문 보다는 소매부문에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KB투자증권은 아직 1개의 지점도 없다. 그런데도 소매부문에서 잠재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역시 관계사인 국민은행이 있기 때문이다.KB투자증권은 지난 2월 KB플러스타(plustar)라는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내놓고 본격적으로 온라인 위탁중개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이 시장에서는 이미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우증권 하나대투증권 등이 0.0015%의 초저가 수수료를 앞세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중소형 증권사들은 아예 시장에 진입할 엄두도 못내고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KB투자증권은 국민은행 고객을 겨냥하고 이 서비스를 시작했고 결과는 ‘역시나 ’였다. 서비스 시작 50일 만에 계좌수가 10만 계좌를 넘어섰고 지금도 꾸준히 하루평균 2000여 개 계좌가 개설되고 있다. 회사측은 올해 약 25만 개 계좌가 개설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김 사장은 “올해 KB투자증권은 온라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후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라며 “국민은행 1200개 영업점과 금융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그러나 일부의 우려대로 수수료를 내려 출혈경쟁을 부채질 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온라인 수수료 0.0015%는 서비스 원가 수준에 불과해 추가적인 인하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오히려 은행 보험 증권 등을 결합한 KB만의 원스톱 금융서비스로 승부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KB투자증권은 이달 중에 하나의 통장으로 증권 은행 카드서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고 마일리지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복합금융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KB금융그룹의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금융상품을 앞세워 온라인 고객을 확보해 가겠다는 것이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KB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약 3200억 원. 국내 최대 증권사인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삼성증권 등의 2조2000억∼2조3000억 원대에 비하면 약 7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KB투자증권이 어떻게 앞으로 4년 내에 이들 증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 증권사로 성장할 수 있을까. 김 사장은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자체적인 역량 강화를 통해 외형을 확대해 나가겠지만 우리의 경영목표를 달성하는 데 좀 더 빠르거나 확실하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기존 증권사 인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KB투자증권이 M&A 등을 통해 단기간에 업계를 장악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있다. KGI증권 유진투자증권 등 업계에서 매물이 나올때마다 KB금융지주가 강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그러나 김사장은 M&A를 위해 무리수를 두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미 우리는 2013년까지 성장계획을 짰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우리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면서 “M&A에 관심은 있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반드시 성사시켜야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진투자증권 인수전에서 낮은 가격을 써내 결과적으로 인수에 실패한 것에 대해서도 그는 “무리하지 않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기 때문에 적정가격을 넘게 비싸게 가격을 써낼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김 사장은 금융위기가 진정되면 미뤄뒀던 해외진출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KB투자증권은 이미 홍콩에 현지법인을 두고 해외사업을 모색해왔다. 김사장은 “내년에는 아시아 지역국가에 진출하는게 가시화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나 나라별로 다른 전략을 갖고 진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김 사장은 올해 주식시장에 대해 “지난해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세계 각국이 강도높은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어 ‘회복’쪽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 4분기나 내년 상반기쯤에는 대세상승장이 열릴 전망”이라며 “세계경기도 급속도로 턴어라운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경기침체기에도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확대되는 국내 대표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신중한 자세로 접근할 것을 당부했다. 김 사장은 “시장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아 남아있는 상태”라며 “차입보다는 여유자금으로,1∼2개월 내의 단기투자보다는 중장기적 투자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 사장은 KB투자증권의 핵심 경쟁력으로 ‘차별화된 고객서비스’를 꼽았다. 고객을 대하는 태도부터 고객에게 제공하는 상품까지 다른 증권사와 차별화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KB투자증권의 새로운 모토인 ‘투자휴머니즘’역시 이런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김 사장은 “투자를 숫자 분석 중심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존중하겠다는 것이 투자휴머니즘”이라며 “고객들이 원하는 상품을 개발하고 서비스함으로써 투자휴머니즘을 구현하겠다”고 말했다.예를 들면 리서치센터에서 추천하는 종목도 지금까지 셀(매도) 바이(매수) 뉴트럴(중립) 등으로 획일적으로 구분돼 있었지만 앞으로는 투자자들을 투자 기간과 투자 규모 투자 성격 등에 따라 세분화한 뒤 이들에게 맞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제시해주는 방안으로 바꿀 예정이다. 고객의 구미와 성향에 따라 그에 맞는 종목들을 추천해주겠다는 것이다. 또 단순히 추천에 그치지 않고 회사를 믿고 해당종목을 사는 고객에게는 아예 수수료를 받지 않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KB금융그룹과의 시너지를 통해 다양한 복합 금융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장외파생상품 인가를 신청할 방침이다. 김 사장은 “은행과의 연계를 통해 다른 증권사와의 차별화된 복합상품을 개발하고,은행과 다른 상품등을 갖춰나가면 고객자산관리 분야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도 KB금융그룹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자신했다.KB투자증권사 대표서울대 경제학과미시간대 MBA씨티뱅크 애널리스트케미컬뱅크 서울지점 수석딜러JP모간체이스 한국대표도이치뱅크그룹 한국대표 겸 글로벌마켓 총괄대표글 김태완·사진 이승재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