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너 묘지’(Designer Departures). 마케팅계의 노스트라다무스라 불리는 트렌드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저서 ‘미래 생활사전’ 에서 언급한 것이다. 미래의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자신이 살아왔던 스타일대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묘지에 그런 의지를 담은 디자인 개념을 적용할 것이란 얘기다. 심지어 유명 디자이너나 건축가까지 동원해 묘비와 묘지를 만들 것이란 예견이 허무맹랑한 억측만은 아닐 성싶다.이 같은 사례는 미술의 요소가 그만큼 일상생활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최근 기업들이 문화와 예술을 마케팅의 도구로 삼아 고객들을 유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술가의 창의력과 기업의 사업전략의 만남, 이것을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이라고 한다.아트마케팅의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와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만남을 들 수 있다. 둘의 만남은 단순한 소모성 상품 그 이상의 ‘루이비통 철학’을 구현해냈다. H&M 역시 마찬가지이다. 칼 라거펠트, 스텔 매카트니, 마돈나, 꼼므데 가르송 등 매년 유명 패션 디자이너와의 합작 컬렉션을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국내의 아트마케팅 성공사례 역시 적지 않다. 쌈지는 경영이념 자체에 아트를 접목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의 젊은 팝아티스트인 낸시 랭이나 세계적인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작품이미지를 제품에 직접 적용시켜 큰 성공을 거뒀다. 또한 젊은 작가들을 꾸준히 후원하는 별도의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제일모직은 여성 브랜드 구호(KUHO)를 통해 ‘하트 포 아이(Heart for Eye) 도네이션 티셔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화가 한젬마, 패션 포토그래퍼 김현성, 영화배우 장미희 등을 디자인에 직접 참여시킨 예도 있다. LG전자의 경우 주방 가전에 순수 예술작품이 접목된 ‘갤러리 키친’을 표방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트 디오스(Art DIOS)’ 테마의 냉장고 출시로 국내는 물론 중국 시장을 석권하는 쾌거를 맛봤다. 이에 앞서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이 참여한 휴대전화 ‘샤인’,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패션브랜드 프라다와 함께 한 ‘프라다폰’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다.이 외에도 ‘오예스와 함께 떠나는 세계미술관 여행’ 마케팅을 펼친 해태제과나 국내외 저명 미술작품을 매장 곳곳에 배치한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역시 문화마케팅의 모범적인 전형이라 하겠다. 기업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활용범위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미술시장의 확대와 문화산업의 발전을 견인할 것이다. 이번 호에도 지난달에 이어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작가를 몇 명 소개한다.“작가 김현식은 한국의 미술가들 중에서도 단연 독특하다. 그의 작품은 국제사회에서 더 주목받을 만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워홀과 비견될 정도의 미술사적인 의의도 지닌다. 전연 새로운 ‘예술행위’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나의 해석이 옳다면 언젠가 그는 과거 100년사에 남을 선구적인 예술가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세계적인 석학 홍가이의 말이다.회화가 평면언어라면 조각은 입체적인 표현의 대명사다. 전통적인 표현방식에선 회화가 평면성과 공간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다. 적어도 김현식의 작품을 제외한다면 이 가정은 진리에 가깝다. 하지만 홍가이의 지적처럼 그는 보란 듯이 전통회화가 지닌 평면성의 한계를 극복해냈다. 다년간의 시행착오적 실험을 거쳐 새로운 개념의 ‘시각예술작품’을 고안해낸 것이다. 캔버스 표면에 밑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출발하지만, 위에 에폭시 수지(epoxy resin)를 붓고 건조된 그 층 위에 날카롭고 뾰족한 금속 기구로 이미지를 긁어 색채를 입히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만의 특별한 ‘사이공간’이 창조된다. 마치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완성된 동일한 평면회화 7~8점이 역시 일정한 간격으로 켜켜이 쌓인 것을 한꺼번에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물론 사이사이의 간격(공간)은 유지한 채 한 몸이 된 평면작품이다.데비 한은 ‘종합예술인’이다. 작업과정 전반을 살펴봐야만 비로소 그의 작품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얼핏 컴퓨터로 합성한 디지털 사진이거나 평범한 인물을 찍은 초상사진으로 알기 쉽다. 더욱이 함께 선보이는 입체작품은 마치 공장에서 뽑아온 것만큼이나 정교하다. 하지만 이 모든 작품은 그녀의 직접적인 관여로 완성된 것이다. 때문에 그녀를 어떤 특정한 장르에 끼워 맞춘다는 것은 작품의 반쪽만을 보는 데 그치는 것과 같다.데비 한의 화두는 ‘왜(why)’이다. 상식으로 굳어진 일반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질문은 그녀의 작품을 지탱하는 뼈대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사고와 신념에 쉼 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수도자의 수행법으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그녀는 다시 청·장년기를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자연스럽게 미의 본질에 대해서도 동서양의 전통적 감성을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정체성의 재정립을 위해 애쓴다. 여성의 미에 대한 관점을 재조명하고 있는 ‘비너스’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최근의 ‘스포츠 비너스’ 작품은 미의 상징으로 인식된 비너스 상을 대중스포츠의 공 형태와 접목해 새로운 문화아이콘으로 재탄생 시키고 있다. 여기에 나전칠예라는 동양 고유의 전통 공예기법을 응용해 동서양의 전통을 재해석하고, 조각과 공예의 경계까지 포용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김남표의 ‘인스턴트 랜드스케이프’ 시리즈는 상상 속의 풍경화다. 마치 꿈속에서 만났음 직한 풍경들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놀랍다. 흔히 풍경이란 말에는 이미 ‘동식물의 상태와 자연현상 등 토지 위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종합’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김남표의 손에 의해 재구성된 초현실적인 화면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 담겨 있다. 현실과 상상의 중간접점이 아니라, 둘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는 형국이다.형식은 순수 회화적인 구성을 띠고 있지만, 화면에 인조털 등을 부착한 오브제 작업으로 전혀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이렇듯 김남표의 인스턴트 풍경은 통념적으로 고정된 관점을 ‘독특한 시각적 전이와 연출’로 뒤집어 놓는다. 마치 너무나 일상적인 자연풍경의 이면엔 이미 그런 ‘메디테이션 월드(meditation world)’가 숨겨져 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김남표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금세 깊은 사색에 잠기게 되는 것은 물론, 어느덧 익숙해질 즈음에 ‘유쾌한 환영(幻影)’을 꿈꾸게 된다.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