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 팀장

환위기 직후 하루에 200원 이상 널뛰는 걸 보면서 환율 무서운 걸 알게 됐죠. 최근의 환율은 2002년 이후 줄곧 눌려왔던 원화 평가절하 요인이 분출하면서 변동 폭이 한층 커진 것 같아요.”올 들어 폭등세를 보인 원·달러 환율시장은 외환위기 직후 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하루에 수 원 단위로 움직이던 환율 변동성이 100원 안팎까지 커지자 외환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 팀장에게는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마치 10여년 전 외환위기 직후의 환율시장 모습이 재연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당시 국내 한 외환컨설턴트 회사에서 근무했던 정 팀장은 PC통신에 30분마다 환율 정보를 올리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원·달러 환율에 대한 정보 접근이 워낙 제한적인 상황인 탓에 PC통신에 30분 단위로 올라오는 시세변동 정보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어요. 후발주자인 한 업체는 5분 단위로 정보를 제공했는데 당시 PC통신 천리안의 전체 콘텐츠 제공업자 가운데 월간 서비스 매출 1등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선물환이 없었던 당시는 은행들이 환율 변동 리스크를 개인들에게 모두 전가하는 시스템이었다고 정 팀장은 지적했다. “기준환율이 1600원인 경우 전신환으로는 사자와 팔자가 각각 1530원,1670원으로 스프레드가 140원, 현물의 경우 편차가 200원에 달했습니다. 은행이 개인에게 변동성 리스크를 떠넘긴 셈이죠. 외환컨설턴트 회사들은 이 틈새를 노리고 은행 딜링 룸에서 직접 계약을 떼어와 사자와 팔자 편차를 크게 줄인 딜로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외환컨설턴트 이후 삼성선물 외환애널리스트를 담당했던 정 팀장은 직접 트레이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2005년 우리은행 파생금융팀 트레이더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트레이딩에 갈증을 갖고 있던 차에 우리은행에서 직접 파생상품을 다룰 기회가 와서 결단을 내렸죠. 당시 이자율 스와프를 다뤘는데 머릿속에 맴돌던 이론들이 실전을 거치는 동안 확실히 정리되는 기분이었어요.”2007년 4월께 국내 외환시장의 불안을 미리 짚어낸 보고서를 낼 수 있었던 데는 이자율 스와프시장의 이상 징후를 간파한 덕분이었다는 게 정 팀장의 설명이다.외환시장의 밑바닥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덕분에 변동성이 커질 때일수록 정 팀장은 거시적 안목에서 환율시장을 바라본다.“2000년 이후 외환시장에 들어온 딜러들에게는 최근의 변동성이 당혹스럽겠지만 저로서는 이미 한 차례 이런 상황을 경험했던 점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2002년 이후 원화가 지나치게 고평가 돼 있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지난해 초 ‘조만간 한번쯤 크게 출렁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게 현실화된 셈이죠.”지난 2월에 낸 ‘3월 환율 전망보고서’에서 정 팀장은 “원·달러 환율이 전고점을 뚫고 상승하겠지만 지나친 저평가 측면이 있어 호재 출현 시 환율하락 폭이 빨라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이후 환율은 장중 한때 1600원을 뚫었으나 정부당국의 개입과 역외 세력들의 차익실현으로 1400원대로 밀려났다.정 팀장은 “3월 위기설과 동유럽 위기설이 겹치면서 원화를 지나치게 약세로 몰고 간 측면이 있다”며 “1600원을 고점으로 1차 고비는 넘겼으나 미국 금융기관의 스트레스 테스트, AIG CDS(신용파산스와프) 추가 부실 등 외부요인 발생 시 다시 출렁일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지난해 환율 급등의 요인이 수요부족이었다면 올해는 달러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환율을 자극하고 있다고 정 팀장은 분석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당초 정부의 목표치인 경상수지 200억 달러 달성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기에 조선업체의 선수금까지 감안하면 펀더멘털 측면에서 올해 수급개선을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원화 저평가에 따른 해외 교포 자금의 국내 송금 등에 의해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있어 외부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정 팀장은 최근 개인들의 통화선물 거래비중이 크게 늘어난 데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통화선물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월 5%에서 최근에는 20∼30%까지 늘었다. “유지 증거금이 계약(5만 달러)당 4.5%에 불과할 정도로 레버리지가 크기 때문에 마진콜 위험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외환 선물 시장은 ‘프로들의 세계’라는 얘기다.증권선물거래소는 최근 계약당 5만 달러인 통화선물 계약을 1만 달러로 내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대해 정 팀장은 “신용 리스크 우려로 은행들이 선물선도 거래에 응하지 않는데다 기존 선물환 가입 업체의 경우 손실이 너무 커져 있어 중견 수출업체들이 환헷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계약당 규모를 낮추고 중도 실물 인수도를 허용할 경우 환헷지에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선물시장이 현물시장을 흔드는 ‘왝 더 독’처럼 최근 국내 주식시장은 환율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환율 변동 폭이 예상치를 뛰어넘으면서 시장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자본수지 변동에는 외국인들의 주식 채권 매매 비중이 절대적이었으나 해외펀드 붐이 일기 시작한 2007년 하반기 이후에는 자산운용사의 환헷지 수요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해 변동성을 키우고 있습니다.”정책 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외환시장에서 향후 환율을 전망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정 팀장은 “환율을 예측하는 것은 주가 예측만큼 어렵다”면서 “다만 지난 10년간의 원·달러 환율 평균이 1100원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국내 수출기업들의 대외 경쟁력이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물가상승 압박이 적은 적정 환율 수준을 1200원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