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 경제 주체들의 시선이 이처럼 한꺼번에 환율로 쏠린 적이 또 있었을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에도 환율이 널뛰었지만 이해당사자는 정부와 수출기업 등 일부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2007년 불어 닥친 펀드 돌풍은 환율의 이해당사자를 사실상 전 국민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해외펀드 투자자에게 최근의 환율 동향은 울고 싶은 상황이다. 전 세계 주요 통화 가운데 달러화에 가장 약세를 보인 원화 탓에 해외펀드는 이중의 손실을 입고 있다. 은행들의 외화자금 차입 중단으로 중견기업들도 자금난에 허덕이고 주식시장조차 환율에 따라 출렁이고 있다. 한때 장중 달러당 1600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밀려나며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원화는 외부 충격 시 또다시 출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민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급등세가 일단 진정세로 돌아섰으나 펀더멘탈에 변화가 없는 만큼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고조될 경우 재차 상승우려가 높다”고 말했다.다행스러운 점은 대부분의 경제연구소와 금융기관들이 원·달러 환율이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내외 변수를 고려할 때 1분기가 원·달러 환율의 ‘피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의 환율 급등은 3월 위기설과 동유럽의 디폴트 위기가 맞물리면서 원화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단기 달러 유동성공급 상황이 지난해 말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이후 크게 개선됐고 장기 달러 유동성 공급의 경우 역시 과도한 원화 약세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역외선물환(NDF)등을 통한 일부 투기적 매수세가 원·달러 환율의 오버슈팅을 이끌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 연구원은 “달러 공급여건이 지난해 말에 비해 나아졌음에도 급등한 것은 투기적 매수세가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투기적 수요에 의한 상승 폭만큼 하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으며 미국과 동유럽 국가의 금융 불안이 완화되는 조짐이 보일 경우 하락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최근 수정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는 주요 경제연구소들도 비슷하게 내다보고 있다. LG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연 평균 원·달러 환율을 달러당 1280원으로 조정했다. 보고서는 “2009년 들어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환율은 올해 경상수지 및 자본수지 개선에 힘입어 추세적으로 하향 안정될 것”이라며 “다만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실물경제 침체 지속 등의 리스크 요인에 의해 하락 폭은 제한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원·엔 환율의 경우 2008년의 100엔당 1070원보다 크게 오른 1310원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삼성경제연구소도 원·달러 환율에 대해 ‘상반기 강보합, 하반기 달러약세 본격화’를 전망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상반기에는 글로벌 금융불안 상황에서도 정부의 유동성 공급과 외국인 주식투자 증가 등으로 불안한 가운데 소폭 하락하고 하반기에는 하락 폭이 커질 것”이라며 상반기와 하반기 환율을 각각 달러당 1309원과 1124원으로 예측했다. 연간 평균 환율은 1216원이다.현대경제연구원도 지난 2월 경제성장률 수정전망보고서를 통해 올해 평균 환율을 달러당 1250원으로 예측했다. 대신증권은 “2분기 이후 점차 하락하기 시작해 하반기에는 하락폭이 확대되며 연간 1280원 수준을 나타낼 것”이라며 상반기와 하반기 환율을 각각 1358원, 1203원으로 전망했다.최근의 환율이 급락세로 돌아선 것은 오버슈팅에 따른 되돌림 성격이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의 추세 하락전환은 아니라고 진단하고 있다. 국내 외환시장을 둘러싼 펀더멘탈이 근본적으로 변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떨어지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은행의 단기 외채 상환부담과 조선사와의 선물환 계약 만기 불일치로 상반기 중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수요가 줄지 않을 전망이다. 시중은행들의 해외채권 발행이 국제금융시장 불안으로 아직 1년 만기 이상의 장기물 공모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국내 외환시장에는 악재다. 2,3월 무역수지 흑자기조는 호재이나 글로벌 수요 위축에 따른 절대 수출규모 축소가 부담이다. 김종수 NH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해 이벤트성 재료 부각 시 환율의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구제금융 및 경기부양책에 대한 실망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고 동유럽발 금융위기에 대한 시장인식을 엿볼 수 있는 CDS(신용파산스와프)프리미엄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점도 환율시장에는 불안요인이다. 김 연구원은 다만 “국내 외환시장의 수급여건이 개선되고 있어 연초와 같은 원화의 ‘나홀로 약세’는 점차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국내 조선업체의 수주물량 취소 우려도 외환시장의 잠재 리스크로 꼽힌다. 경기침체로 한국 조선업체들의 수주 취소가 잇따를 경우 주문을 받고 2∼3년 동안 들어올 달러를 미리 다 팔아버린 조선업체로서는 시중에서 달러를 구해서 선물환 계약을 이행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선 대우증권 연구원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2008년 이후 수주한 915억 달러 규모의 물량에는 취소가능성이 높은 것들이 상당수 있다”며 “선박수주 취소 발생여부와 그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이 외환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지적했다.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