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외환시장이 큰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9월 중순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이후 나타났던 일대 혼란보다 더 심각한 상황도 연출됐다. 미국 달러를 구하는 쪽은 넘쳐나는데 달러를 갖고 있는 쪽은 도무지 물량을 내놓지 않았다. 여기에다 ‘3월 위기설’마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은 3월 초 1600원 근처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태가 조금만 더 이어지면 제2의 외환위기가 올 것이라는 공포감마저 형성됐었다.올 들어 3월 초까지의 환율 움직임을 되살펴 보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와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말 환율 종가는 1259 원50전. 1월2일 새해 시장이 열리자마자 곧바로 1300원대로 튀었다. 2월13일엔 1400원을 넘어섰고 일주일 뒤엔 1500원까지 돌파했다. 3월6일 장중 고점은 1597원에 이르러 연초 대비 환율 상승폭(원화가치 하락폭)은 20%에 육박, 전세계 주요 국가 중 최고를 기록했다.천정부지로 치솟던 환율은 외환당국이 개입하고 나서야 비로소 잡히기 시작했다. 외환당국은 환율이 1550원을 넘어서기 시작한 3월2일과 3일에 15억 달러가량을 팔았다. 또 올 들어 최고점을 기록한 6일에도 1590원 이상에서 상당한 규모의 달러를 매도한 것으로 시장에선 파악하고 있다.외환딜러를 중심으로 한 시장에선 외환당국이 1600원 근처에서 세 차례나 개입하자 1600 원 선 사수 의지가 확고하다고 받아들였다. 때마침 허경욱 기획재정부 1차관은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향후에도 강도 높은 개입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한바탕 회오리가 지나간 바로 다음주 월요일(9일)부터 환율은 하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1일엔 15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재정부와 한국은행, 이른바 외환당국의 ‘힘’이 마침내 먹혀들었다.그렇다면 외환당국은 시장개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은 고위관계자는 “재정부와 마찬가지로 한은은 외환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의무가 있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개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얘기다.외환당국은 그러나 아무 때나 개입하지는 않는다. 한은에선 ‘일시적인 외환 수급 불균형이나 대외적인 충격이 발생해 환율 변동성이 심화되고 외환시장 안정이 저해될 우려가 있을 때’ 등으로 정해 놓고 있다. 환율의 급등락을 완화하기 위한, 즉 미세조정(Smoothing Operation)이 주목적이란 설명이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도 “주요국 재무부와 중앙은행 중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개입을 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며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미국과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절상시키기도 했다.문제는 외환당국이 이른바 ‘미세조정’에 그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재직시절인 지난해 7월이 대표적 사례다. 국제 원자재가격이 뛰는 와중에 환율마저 오르자 당국은 물가안정을 내걸고 7월9일 점심시간을 이용해 한꺼번에 60억 달러 이상을 쏟아낸 적이 있다. 이른바 ‘도시락폭탄’이다. 당국을 이를 통해 달러당 1050원 하던 환율을 단번에 1000 원 아래로 떨어뜨렸다.하지만 지나친 개입은 더 큰 화(禍)를 불러오는 법. 환율은 이후 지속적으로 올랐으며 9월 리먼 사태 이후엔 1500원대 이상으로 올랐다. 강만수 장관은 무모한 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을 200억 달러 이상 까먹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한국 정부는 1997년 하반기에도 환율을 잡는다고 나섰다가 달러만 축내고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영국 정부도 1992년 파운드화 가치를 지키려고 했다가 조지 소로스 등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고 두 손을 들기도 했다.올해 이뤄진 외환당국의 시장개입은 현재까지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그다지 많은 달러를 투입하지 않고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당국이 올 들어 쏟아 부은 돈은 기껏해야 20억 달러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환보유액이 2월 말 기준 2000억 달러를 웃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1%에 불과한 돈이다. 이를 통해 환율을 100원 이상 끌어내렸으니 대단한 성공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물량 투입과 더불어 적절한 구두개입이 병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이 한 방향으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완곡한 표현 안에 강력한 뉘앙스를 담아 시장에 경고를 보냈다.현재의 MB정부 2기 경제팀이 환율 안정에 성공한 또 다른 측면은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근의 환율상승(원화약세)은 글로벌 달러강세와 맞물려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단기 대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세계금융위기가 진정되지 않고선 위험자산 선호현상이 가라앉기 힘들고, 이는 결국 달러 보유 욕구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2기 경제팀은 오히려 이 같은 환율 상승을 수출 확대에 활용하겠다는 뜻도 공공연히 내비쳤다. 시장의 큰 흐름은 따라가되 단기적인 왜곡현상만 치유하는 것으로 전술을 택한 것이 시장에 먹혀들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2기 경제팀이 환율이 1600원 선 근처로 다시 치솟지 않는다면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의문은 한 가지 남는다. 외환당국은 적정 환율을 얼마로 보고 있느냐는 점이다. 당국자들은 물론 이에 대해 어떠한 답도 내놓지 않는다. 첫째 적정 환율 수준 자체를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스스로도 회의적이고 둘째 만약 그런 판단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더라도 이를 공표하면 당국의 ‘패‘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입을 여는 것 자체가 금기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당국이 시장개입에 나서는 시점에서의 환율을 보고 적정 환율대가 어느 수준인지를 추정하는 일만 가능하다.민간에선 적정환율을 1400원대로 보는 분위기다. IBK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적정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초반이라고 밝혔고 이에 대해 다른 민간 기관들도 대체로 수긍하는 듯 하다.IBK투자증권이 적정 환율을 구하기 위해 쓴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실질실효환율이고 다른 하나는 회귀분석을 통한 것이다. OECD는 지난 1월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을 84.3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실질실효환율이 100 이하이면 저평가됐다는 뜻이다. 실질실효환율의 기준시점이 2000년인데 당시 환율이 1250 원이고 여기에 84.3을 감안하면 1483 원이라는 것이 IBK투자증권의 설명이다. 또 환율과 산업생산, 종합수지(경상수지+자본수지), 대외채무, 외환보유액 등을 감안해 회귀분석을 한 결과로는 1300원대 중반으로 분석했다. 결국 이 둘의 중간치인 1400원대 초반이 적정 환율이라는 것이 IBK투자증권의 진단이다.박준동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