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좋지 않은 직원에게는 두 번까지 기회를 주지만 컴플라이언스(준법의무) 위반 시에는 단 한 번이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No Second Chance). 단순히 법규를 지켰느냐는 차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의 영업행위가 신문의 1면에 나왔을 때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인가를 판단하는 ‘뉴스 페이퍼 테스트’도 강조하고 있습니다.”이현승 SK증권 대표는 인터뷰 내내 컴플라이언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스크 관리야말로 증권사의 가장 중요한 역량인데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국내 금융기관들이 사족(蛇足)처럼 치부해온 컴플라이언스가 조직 내에 뿌리를 내려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인터뷰를 위해 만난 국내 금융사 CEO(최고경영자) 가운데 컴플라이언스를 이토록 강조하는 경우는 이 대표가 처음이었다. 그는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붕괴된 것도 내부 컴플라이언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증권업계 내부에서 영업통 과정을 거쳐 CEO에 올랐다면 이런 인식을 갖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컴플라이언스를 강조할 경우 자칫 영업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자본금 규모나 외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강한 내부 문화에서 비롯된다”며 “고객에게 신뢰받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가 컴플라이언스”라고 강조했다.지난해 6월부터 SK증권을 맡은 이 대표는 이전까지 증권업계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대학교 4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재정경제부 서기관 생활 13년 만인 2001년 훌쩍 관가를 떠나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AT커니로 옮겨 화제를 낳았다. 이후 메릴린치 기업 및 국제금융담당 이사, GE에너지코리아 사장을 역임하는 등 잇따라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고 이런 경험은 고스란히 자산으로 돌아왔다. 이 대표는 “재경부 시절 비서관으로 4명의 장관을 모시면서 경제를 큰 안목으로 보는 시각을 배웠다면 AT커니와 메릴린치에서의 근무는 재무와 투자부문에서 경험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GE에너지코리아 사장을 지내면서는 고객가치와 지속가능한 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국내 증권업계 최연소(43세) CEO로 SK증권에 새로운 조직문화를 이식시키고 있는 이 대표를 만나 국내 금융업계 현황과 SK증권의 성장전략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미국 IB의 사업모델이 실패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다만 지나친 탐욕으로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죠. 자기자본의 20배가 넘는 레버리지나 장단기 자금의 미스 매칭 등은 분명 문제입니다. 마치 부동산중개업자가 중개 외에 자기가 돈을 빌려 직접 투기를 하다 망한 경우인데 그렇다고 부동산중개업이 없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의 실패를 교훈삼아 한국형 IB는 차입을 통한 무리한 확장보다는 중개업 본연의 임무인 위험분산과 중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SK증권의 경우 회사채 발행, 한계기업 구조조정, 인수합병과 자산배분 등을 타깃 영역으로 삼고 있습니다.외부에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GE는 지주회사 체제가 아닙니다. GE는 GE캐피탈을 100% 자회사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는 리스크에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의 경우 이와 달리 지주회사 시스템이 확산되고 있어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간에 자연스러운 방화벽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지주회사라는 방화벽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산업과 금융의 시너지를 통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최근 글로벌 위기가 확산되는 와중에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죄수의 딜레마처럼 ‘일단 나부터 살자’며 규제강화나 보호무역주의와 같은 자국 이기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위기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흥 국가 가운데 가장 개방형 자본시장시스템을 갖춘 한국의 경우 이런 변화 속에서 외국 자본에 먹히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강한 금융문화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봅니다.”자통법에는 위험 요소와 기회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당장 법 시행 후 기회보다는 위험 요소가 먼저 부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선 투자자보호 차원에서 불완전판매에 대한 입증책임이 고객에서 증권사로 바뀐 것은 리스크 관리측면에서 커다란 변화입니다. 새로운 상품과 영업 등을 통한 기회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시차를 두고 자통법의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IT(정보기술)과 인력 수준면에서는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시장변화에 대응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보완할 점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듣고 싶은 정보와 듣기 싫은 정보가 있는데 리스크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싫은 정보에도 귀를 여는 오픈마인드가 중요하고 이는 균형된 시각을 갖추는 데 필수적입니다. 현재 국내 증권업계에는 듣고 싶은 정보에만 귀를 여는 쏠림 현상이 있다 보니 리스크 컨트롤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그룹 내 금융솔루션 제공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모바일과 금융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신성장 동력인 그린 분야 파이낸싱 등 ‘따로 똑같이’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신성장 엔진을 지속적으로 찾아내는 동시에 그룹의 금융 전반을 지원하는 것입니다.단순한 현지 주식중개업무가 목적이 아닙니다. 중국 시장을 또 다른 내수시장으로 보고 있는 그룹의 큰 그림 아래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IPO(기업공개) 등 IB업무를 겨냥한 포석입니다. 이미 중국 쑤저우 지역에 8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2개의 빌딩에 투자하는 등 브로커리지 영역 외의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에 진출하는 그룹 계열사의 파이낸싱을 지원하는 것도 부수적 업무입니다.경직돼 있는 제조업체보다 수요와 공급원리가 오히려 더 잘 작동하는 분야가 증권업계의 인력시장인 것 같습니다. 확장기에는 인력부족에 따른 임금상승이 불가피하겠지만 경기침체기에는 임금삭감이나 인력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SK증권의 경우 리서치센터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는데 이는 신분상의 안정과 조직에 대한 로열티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최근에는 애널리스트가 단순히 리포트만 내는 기존 관행에서 탈피, 사내 법인 및 소매영업팀에 대한 서비스와 외부 기관 및 개인투자자에 대한 부가 서비스를 강화한 고객서비스 리더제도도 도입했습니다.연초 들어 회사채 시장이 다소 풀렸으나 우량회사와 비우량 회사 간 양극화가 두드러집니다. 비우량회사의 경우 연 10%의 금리에도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을 정도입니다. 비우량회사채 발행시장의 회생 여부는 경기회생에 전적으로 달렸는데 1년 이내에 시장회복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힘을 얻지 못할 경우 당분간 시장에서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글로벌 실물경기의 회복 지연으로 국내 경기 회복은 최소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위기에 처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는 진단처럼 현재의 위기는 구조적 위기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쇼트트랙에서 순위가 바뀌는 순간은 직선에서 곡선주로로 진입할 때입니다. 올해의 경우 국내 증권사 간 경쟁에서 변곡점이라고 봅니다.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강한 기업문화를 구축해 생존과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타사와 달리 기존의 영업방식에서 탈피해 컴플라이언스 마인드를 중시할 것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SK증권 대표GE에너지코리아 대표메릴린치 이사A.T커니재정경제부 사무관미. 케네디스쿨 행정학석사미. 하버드 로스쿨서울대경영학과 행정대학원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