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시대 달라진 펀드 가입 절차

본 펀드, 브릭스 펀드, 중국 펀드, 러·브 펀드…. 펀드 붐을 타고 최근 2∼3년 새 유행처럼 번졌던 대표 상품들이다. 생전 처음 가입하는 펀드지만 ‘고수익’ ‘대박’ 기대감에 소위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다. 현재까지의 결과는 불완전판매로 금융사들은 투자자들의 줄 소송에 시달리고 수익은커녕 원금의 절반 이상 손실을 본 투자자가 대부분이다.지난 2월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더 이상 이런 풍경은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자통법은 투자자의 특성에 맞춰 상품을 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원하더라도 투자 성향이 ‘안정’으로 분류되면 고위험 투자 상품 가입을 위해서는 별도의 각서까지 써야 한다. 이런 새로운 절차로 인해 자통법 시행 초기, 일선 창구에서는 번거로움을 하소연하는 투자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예전에는 ‘무슨 펀드에 가입할게요’라고 얘기한 후 창구 직원이 내민 서류만 작성하면 됐지만 이제는 투자자 유형 분석 등 무려 6단계의 펀드 판매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불편함은 따르겠지만 일반 가게에서 기성 양복을 구입하던 시대에서 맞춤형 양복 시대로 전환된 셈이다. 몸에 꼭 들어맞는 양복을 입기 위해서는 재단사의 꼼꼼한 신체 치수 측정과 재단 절차는 감내해야 할 과정이다.자통법 시행은 금융권의 펀드 판매 역량에도 불구하고 차별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특화가 없었던 이전과 달리 앞으로는 펀드 판매 직원에 대한 교육 수준, 판매 절차 준수와 사후 관리 등에 따라 고객층과 판매 실적이 크게 엇갈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최근 영국의 유로머니가 선정한 ‘2009년 대한민국 최우수 프라이빗 뱅크’로 선정된 하나은행을 통해 달라진 펀드 투자법과 투자 노하우를 살펴본다.자통법 시행 이후 펀드 가입 시에는 판매 회사 직원들과의 상담을 통해 연령, 보유 자산, 투자 경험 등을 토대로 적합한 펀드를 권유받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판매 회사와 직원들의 능력이 투자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얘기다. 투자 성향에 따라 어떤 펀드를 추천할지, 해당 펀드와 시장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는 지식을 확보하고 있는지, 전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운용할지 등 지적 수준과 경험, 인프라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일 전망이다. 특히 갈수록 정교해지는 새로운 구조의 펀드 상품의 속성과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경우 자칫 고객에게 큰 손실을 안겨줄 수 있는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김성엽 하나은행 상품개발부 부장은 “판매 직원들의 능력과 경험에 차이를 엄격하게 관리해 투자자에게 맞춤형 자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며 “많은 펀드를 판매하는 것보다 투자자에게 가장 잘 맞는 펀드를 파는 게 훨씬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하나은행의 경우 2007년부터 펀드 판매 직원들의 판매 자격을 6단계로 구분, 상품의 종류와 금액을 엄격히 제한하는 동시에 자산 관리와 관련된 각종 자격증 취득을 적극 권하고 있다고 김 부장은 덧붙였다.2005년 적립식 펀드 투자가 유행하면서 투자자들은 은행 창구에서 상담을 거치지 않고도 펀드에 가입할 수 있었다. 가입 후 1년에 1∼2번 받아보는 운용 결과 통지서는 일반 투자자에게 해독하기 어려운 난수표나 다름없었다. 판매사들도 펀드 판매에만 열중했지 사후 관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가 중요한 자통법 시행 이후에는 사후 관리에 대한 법적 책임이 한층 강화됐다. 투자자는 분기마다 펀드의 운용 현황, 투자 규모 수익률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산운용보고서 자산보관보고서 등을 받아보게 된다. 특히 주기적으로 펀드 잔액을 통보 받기 때문에 가입한 펀드의 성과에 대해 지속적 관리가 가능해진다. 펀드의 위험 등급이 바뀔 경우 고객에게 공지하는 적극적 위험 관리 체계도 가동하게 돼 있다. 무엇보다 투자자가 궁금해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펀드 판매인 또는 상담 센터 등이 즉각적으로 피드백해 줘야 하는 것도 이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하나은행의 경우 2007년부터 펀드 투자자가 정한 상한·하한 수익률 및 월말 수익률을 SMS(단문 메시지 서비스)로 제공해 오고 있다. 2008년부터는 e메일을 통해 펀드 잔액 수익률 및 시장 동향에 대한 보고서도 월 1회씩 발송하고 있는 점도 일반 은행과 차이점이다.하나은행은 자통법 시행 이후 이 같은 사후 관리 시스템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2월부터 664개 전체 영업점을 대상으로 매월 1회씩 펀드 판매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한편 직원 교육을 통한 불완전 판매 사전예방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특히 프라이빗 뱅커(PB)가 배치되지 않은 영업점에는 완전 판매 역할을 담당하는 ‘펀드 리더제’를 도입, PB 고객이 아닌 일반 고객도 고위험 상품에 대한 체계적 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펀드 리더는 각 영업점에 펀드 판매 리더를 1명씩 지정, 고객들에게 펀드 신상품, 시장 동향, 투자 전략에 관한 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와 함께 투자자가 보유한 펀드에 대해 진단하고 운용 성과가 부진할 경우 대안 펀드를 권고,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펀드 클리닉 시스템도 하나은행의 차별화된 펀드 관리 시스템으로 꼽힌다.김 부장은 “시장 상황 및 운용 결과에 따라 펀드의 수익률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며 “다시 다가온 저금리 시대에 펀드는 효과적인 재테크 수단인 만큼 과거의 ‘묻지마 투자’ 관행에서 탈피해 적극적인 사후 관리를 통해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