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ic & Economic Style

황이 계속되고 있다. 각종 매체에서는 연일 불황과 경제 위기에 대한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경기를 전혀 타지 않을 것 같았던 럭셔리 브랜드들마저도 심각한 매출 부진을 보이고 있어 이번 불황이 단순히 중하류층만 강타한 것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최고층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변했다는 분석이 나와 흥미를 끌고 있다. 바로 ‘티 나지 않는 소비’가 그것이다.라이프스타일 그룹 ‘스타일피쉬(stylefish)’에 따르면 이렇게 세계의 최상류층 1%를 지칭하는 말이 바로 포시라이퍼(Posh Lifer)라고 한다. 이들은 일반인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예를 들면 지중해의 섬을 생일 선물로 받는다든지, 해외 유명 리조트의 스키장 슬로프를 통째로 빌려 휴가를 보낸다든지 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최상류 부자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 했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랐다면 요즘은 그들의 소비를 숨기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들의 영향력이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어서인지, 패션 산업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이전까지의 패션 세계에서는 남들 눈에도 확연히 뜨이거나 브랜드의 가치를 보여주는 로고나 디자인이 가미된 과시적인 스타일들이 강세를 보였다. 이를 통해 중산층 소비자들의 트레이딩 업 현상을 이끌어 내며 럭셔리, 혹은 매스티지 브랜드를 소비하게끔 충동질하는 마케팅 전략이 먹혀들었다. 그러나 전 세계로 몰아친 경제 위기는 모든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고, 이제까지의 과시적이고 충동적인 쇼핑 패턴에서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투자하는 개념의 쇼핑 패턴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이러한 소비자들의 쇼핑 패턴의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일까. 2009년도 봄여름 해외 컬렉션에 선보인 많은 스타일들은 우아함과 미묘한 세련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새로운 트렌드를 쏟아내기보다 안정적인 스타일을 지향하면서 디자이너만의 독창성을 강조한 컬렉션이 더 주목을 받았다. 지난가을 겨울의 트렌드가 더 클래식한 느낌을 강조했었다면 이번 시즌에는 클래식에 편안함과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루엣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는데, 한동안 유행했던 타이트한 슈트류들은 당분간 옷장 속에 묻어 두어야 할 것 같다. 다시 남성다움을 갖춘 부드러운 남성들이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마초 맨도, 그렇다고 거식증에 걸려 쓰러질 것 같은 실루엣을 가진 남성상도 아닌 건강한 남성들이 중심에 서게 된다. 바로 모든 것이 베이직, 즉 근본으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는 지나치게 남성 편향으로, 혹은 여성적 취향으로 극단을 달리는 남성이 아닌 남성성을 근간으로 유연함을 갖춘 남성이 바로 이 시대의 새로운 남성상으로 주목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 봄여름의 슈트는 전체적으로는 몸을 잘 감싸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을 강조한다. 여전히 슬림하지만 그렇다고 타이트하거나 과도하게 박시(Boxy)하지 않은 내추럴 실루엣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전체적으로 아이템들은 베이직 아이템을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전형적인 슈트 착용이 비교적 완화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슈트보다 기본이 되는 베이직 블레이저나 편안한 느낌의 재킷류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몸에 편안한 여유를 가지고 잘 맞아야 하겠지만, 때로는 1980년대 스타일로 약간 루즈한 피팅감을 보여 주어도 좋을 것이다. 혹시 1980년대의 미국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를 기억한다면, 그때의 더블브레스트 스타일 재킷에 파스텔 톤의 컬러감만 뺀 스타일이 대세다. 단 2000년대 버전에서는 고급스러운 소재 느낌과 컬러감, 그리고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은 어깨선이 차이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과거에 포멀한 느낌을 강조하면서 주로 클래식한 울 소재로 제안됐던 아이템들이 면이나 리넨으로 대체되면서, 전반적으로 캐주얼한 멋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넥타이와 같은 포멀한 코디 아이템이 아닌, 스카프나 노타이로 코디해 부담스럽지 않은 변화를 주는 것이 특징이다.컬러에서는 동색 계열끼리 함께 사용해 세련된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런웨이에서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비비드한 컬러감의 스타일을 많이 선보였지만, 실제 한국 소비자들이 과감하게 컬러감을 도심에서 착용하는 예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오히려 비슷한 톤의 컬러들을 세련되게 매칭하고, 소재의 차이에 따라 컬러 느낌이 달라보이게 입는 것이 더 쉽게 트렌드를 흡수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레이와 같이 다양한 컬러와 쉽게 매칭되는 컬러를 베이스 컬러로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끊임없는 변화만이 생존의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패션에서도 불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브랜드와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은 클래식한 베이직 스타일을 선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아이템과 쉽게 코디할 수 있는 컬러의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다. 단 소재는 최상의 퀄리티로, 바느질과 맞음새를 꼼꼼하게 따져 선택한다면 불황기에도 나만의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이정민 퍼스트뷰코리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