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여의도 아파트 부지를 3종 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바꿔 국제금융 중심지 배후 주거지로 손색없는 업무 시설을 갖추도록 할 예정이어서 이미 초고층 건축의 길을 열어뒀다. 상업지역이 되면 용적률은 600%까지 올릴 수 있다.난 1월 20일. 여의도 일대가 초고층으로 개발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전화통은 그야말로 불이 났다.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는 문의에서부터 당장 급매물을 잡아달라는 요구가 쏟아졌다. 여의도에서 5년 넘게 중개업을 해 왔다는 김모 사장은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2006년 하반기에도 이런 모습은 없었다”며 “지난 2년간 문의 전화 한 통 못 받았던 날이 한 달이면 보름 이상 이어졌다가 오랜만에 영업한다는 느낌을 맛봤다”고 귀띔했다.지금 여의도 아파트 시장은 크게 들떠 있다. 여의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계획은 ‘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이었다. 한강을 병풍같이 가로막는 성냥갑 아파트를 없애는 대신 초고층 건물을 허용해 스카이라인을 정비하고 녹지 축을 만들어 바람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영등포구 선유도공원 야외에서 열린 언론 설명회에 참석해 직접 브리핑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오 시장은 한강변 재건축·재개발 대상 지역에 대해 난개발이 우려되는 소규모 단지별이 아니라 여러 아파트 단지를 함께 묶어 대규모로 진행하는 통합 개발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개발 계획을 종합하면 여의도는 금융 업무와 초고층 주거단지가 결합된 한국의 ‘맨해튼’으로 거듭난다. 여의도는 건물들의 평균 층수를 40층으로만 맞추면 층수 제한이 없다. 주거 부문의 최고 층수만 50층 내외로 정했을 뿐이다. 1970년대에 지어진 12~15층짜리 중층 재건축 대상 아파트들은 이제 환골탈태하게 된다. 서울시는 여의도 아파트 부지를 3종 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바꿔 국제금융 중심지 배후 주거지로 손색없는 업무 시설을 갖추도록 할 예정이어서 이미 초고층 건축의 길을 열어뒀다. 상업지역이 되면 용적률은 600%까지 올릴 수 있다. 3종 주거지역이었을 때 법적 최고 용적률이 300%임을 감안하면 2배나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물론 서울시는 개발 이익 환수를 통해 부동산 투기 방지에 나설 예정이다. 개발 부지의 25~40%를 서울시에 기부채납해야 하는데 이는 일반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기부채납된 부지에는 도서관 전시관 공원 호텔 등 다양한 공공 시설이 들어선다. 설사 40%의 부지를 기부채납하더라도 여의도는 밑질 것이 없다. 용적률 600%의 10분의 4를 기부채납하면 360%가 되므로 주거 지역 최고 수준인 300%보다 많기 때문이다. 현지 부동산 시장에서 재건축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주요 이유가 여기에 있다.게다가 여의도는 한강변 초고층 개발 이외에도 호재가 많다. 금융위원회는 1월 21일 여의도를 국가가 지원하는 국제금융중심지로 공식 지정했다. 국제금융중심지란 해외 유수의 금융회사들을 유치하고 금융·서비스 산업의 수준을 높여 국제금융 거래의 허브로 키우겠다는 목표 아래 진행되는 국책 사업이다. 이를 위해 금융중심지법까지 만들어졌다. 서울시는 여의도가 금융 중심지로 지정됨에 따라 2015년까지 싱가포르 홍콩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아시아 3대 국제금융 중심지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국회의사당을 제외한 여의도 일대 397만6000㎡를 중심업무지구(28만8000㎡)와 지원업무지구(50만9000㎡) 배후주거지구(65만8000㎡)로 구분해 체계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세계적 수준의 경제 문화 관광 복합 도시로 조성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중심업무지구에는 초고층 복합 빌딩인 서울국제금융센터(SIFC)와 파크원을 각각 2013년과 2011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지원업무지구에는 고급 오피스와 회의 시설 및 특급호텔 해외 금융 전문 교육기관 등이 자리 잡는다. 서울시는 여의도 금융 중심지 육성 정책들이 성공할 경우 2020년까지 80여만 명의 고용이 창출되고 금융 산업 생산액이 85조 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원효대로만 건너면 용산 국제업무지구가 조성된다.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은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 56만8000㎡를 통합 개발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2016년 완공 예정이다. 사업비는 28조 원이다. 지상 150층(620m) 높이의 랜드마크 타워가 치솟고 업무 상업 주거 문화 시설이 들어서는 복합 타운이다. 지상 20~70층 높이의 오피스빌딩 12개동이 건설되는 등 전체 부지 면적의 80%가 업무와 상업시설로 채워져 주거 시설은 부족한 편이다. 주상복합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를 더해도 2200여 가구에 불과하다. 결국 여의도의 고급 주택 수요가 넉넉해진다는 의미다. 오는 5월이면 김포공항과 강남을 이어주는 지하철 9호선도 개통된다. 3조5000여억 원의 민간 자본이 투입된 9호선을 이용하면 여의도역에서 강남구 교보타워까지 20분, 김포공항까지는 30분이면 닿는다. 급행열차를 이용하면 소요 시간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9호선은 상징색(금색)을 따서 ‘골드 라인’으로 불리는데 여의도는 골드 라인 가운데서도 ‘골든 스폿(황금지점)’에 자리 잡았다.이 같은 호재가 맞물려 있는데 가격 변동이 없다면 말이 안 될 것이다. 삼부아파트 인근 A중개업소 관계자는 “한때 8억3000만 원 하던 92㎡형은 7억 원까지 떨어졌다가 지금은 8억 원 안팎에서 매물이 나온다”며 “보통 1억 원 정도 올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삼부 125㎡형은 10억5000만 원에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11억 원이 약간 넘었던 최고점에 육박할 정도였다. 시범아파트의 경우 79㎡형이 6억 원 초반에서 급매물이 나왔으나 2월에는 7억5000만 원에 호가됐다. 업계에서는 매물도 많지 않다고 전한다. 여의도 B공인 관계자는 “1월에만 여의도 일대에서 50건 정도의 거래가 이뤄지면서 급매물이 소진됐고 대부분의 매물이 회수된 상태”라고 귀띔했다. 물론 집값이 끝을 모르고 오르는 것은 아니다. 경기 침체 부담으로 추격 매수가 붙지 않으면서 현재 시장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전문가들은 한강변 초고층 개발 허용으로 투자 메리트가 커졌다는데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적어도 손해 보는 일은 드물 것이라는 말을 모범 답안처럼 꺼내 놓는다. 업계 관계자는 “여의도는 여의도 자체와 주변에서 늘어나는 업무 시설에 비해 주거 기능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라며 “여기에 재건축의 매력까지 커졌으니 관심을 둘 만하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시간 싸움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합 개발을 하게 되면 사업 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서울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들 간 협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은 예상되지만 대규모 개발의 유리한 점을 적극 홍보하면 다소나마 갈등에 따른 시간 지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재건축 욕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노년층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강남이나 목동과 같은 교육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것도 여의도의 집값 상승에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에 대해 스피드뱅크 김은경 팀장은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에서 짭짤한 수익이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박’ 수준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봤을 때 지금 집값을 버티지 못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바로 뛰어들지 말고 조금 기다렸다가 급매물을 노려야 한다”고 조언했다.박종서 한국경제신문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