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빈 엠브렘 미쉐린코리아 대표

쉐린은 타이어 부문 세계 최고(最古), 최다 판매를 자랑하는 업체다. 미쉐린이 가는 길이 바로 타이어의 역사다. 오늘날 전 세계 타이어 시장의 95%를 차지하는 래디얼 타이어는 1946년 처음 미쉐린이 개발한 대표적인 혁신 사례다. 탈부착 자전거 타이어, 공기 주입식 타이어, 튜브 없는 타이어, 항공기용 래디얼 타이어, 공기가 필요 없는 타이어 등도 모두 미쉐린의 역작이다. 오늘날 수송 기기에 쓰이는 타이어 상당수가 미쉐린에 의해 개발되고 발전돼 왔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세계 1위 업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불어 닥친 불황 가운데서도 미쉐린이 내다보는 시각은 좀 색다르다. 불황이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함께 갖춘 업체들엔 되레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미쉐린의 판단이다. 한국법인인 미쉐린 코리아를 2년째 이끌고 있는 오이빈 엠브렘 대표는 “불황기에는 합리적인 소비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미쉐린엔 또 하나의 플러스 요인”이라고 분석한다.엠브렘 대표는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지난 2004년 미쉐린에 입사했으며 비유럽권 해외 근무지로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인터뷰도 정확히 약속된 10시 정각에 시작할 정도로 매사에 빈틈이 없다. 북유럽 특유의 근면성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배어 있다.그는 타이어맨 ‘비벤덤’으로 대표되는 브랜드 인지도와 뛰어난 품질을 고성장의 비결로 꼽는다. 무엇보다 기술 혁신에 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상당 부분을 자사 타이어 기술의 우수성을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미쉐린이 개발한 래디얼 타이어는 노면과 직각으로 코드(타이어 안쪽 고무 속에 들어가는 보강재)를 배열해 지면과의 마찰력을 줄여 기존 타이어보다 내구성은 30∼40%, 연비는 25∼30% 개선한 획기적인 상품이다.타이어 제조 기술의 핵심은 내구성, 연비, 안전성을 모두 최대치로 끌어올리는데 있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 수치를 끌어올리면 나머지 두 가지는 수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세 가지 포인트 간의 격차를 최대한 줄이면서 전체적인 품질을 최고로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쉐린의 기술력은 바로 이 점을 말한다. 높은 기술력 때문에 미쉐린은 20여 년 전부터 미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우주선 타이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파리모터쇼에서는 모터와 서스펜션 등 주행 관련 부품을 휠 안에 내장한 액티브휠을 처음 선보였다. 만약 차에 이 휠을 장착하면 엔진 변속기 구동축 서스펜션 브레이크 등을 별도로 달 필요가 없다. 다만 전기를 공급하는 장치만 설치하면 된다.자동차 업계와 마찬가지로 타이어 업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친환경이다. 얼마나 오래 쓰고 차의 연비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유럽 국가들은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매연을 줄이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할 움직임이다. 이 때문에 타이어 하나를 구입할 때도 연비 개선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구입한다. 물론 친환경에 있어서도 미쉐린은 동종 업계 중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하고 나서 992년 업계 최초로 ‘에너지’ 타이어라고 불리는 친환경 타이어를 개발했다. 미쉐린의 에너지 타이어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기아차 씨드에 장착돼 판매 중이다. 현재 에너지 타이어의 판매 비중은 전체의 30% 수준이다.이런 미쉐린에도 한국 시장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쉐린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엠브렘 대표는 “아직까지는 금호, 한국타이어 등 토종 업체들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지만 가격 대비 품질을 따지는 한국민들의 정서로 비춰볼 때 우리(미쉐린)의 시장점유율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타사 제품에 비해 월등히 높은 재구매율을 그 이유로 설명했다. 그는 “타이어는 단순히 가격으로만 가치를 매길 수 없지만 좋은 타이어를 장착하면 연비도 개선할 수 있고 사용 연한도 늘어 결국 이것저것 따지는 가격차가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면서 승용차보다 트럭, 버스 시장의 판매 비중이 높은 것을 근거로 설명했다. 현재 미쉐린코리아는 국내에서 ‘에너지 XM1’ ‘에너지 MXV8’ ‘에너지 MXV8 S8’를 판매 중이다. 이 제품들은 1000km당 2리터가량의 연료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 생산되는 승용차 타이어 중 친환경 제품이 절반을 차지하며 지난해에는 유럽 시장에서 4세대 에너지 타이어를 출시해 호응을 얻었다.“버스, 트럭 운전자나 사업주들은 돈에 민감한 분들입니다. 이들이 왜 한국, 금호 등 한국 브랜드보다 약간 비싼 우리 제품을 구입한다고 보십니까. 연비 개선, 사용 연한까지 고려할 경우 그다지 가격차가 큰 편이 아닌데다 무엇보다 안전성 등 기술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죠. 타이어 하나가 차량의 승차감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값으로만 타이어의 가치를 매겨선 안 됩니다.”국내 시장 진출도 미쉐린이 가장 앞섰다. 1987년 우성타이어와 설립한 합작법인 형태로 국내 진출했으며 1991년에는 공식적으로 한국지사를 설립했다. 합작법인 설립 시점까지 올라가면 20년이 넘는다. 엠브렘 대표는 올해 경영 키워드를 ‘철저한 현지화’로 정했다. 대리점 유통망을 늘려 고객과의 거리를 더욱 좁혀 나가겠다는 것이 최대 과제다. 다양한 고객 행사를 마련하는 한편 사회봉사 활동도 적극 벌여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미쉐린코리아는 지난 수년간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본부’와 함께 ‘미쉐린 사랑의 연탄 나눔 캠페인’을 전사적으로 전개해 연간 2500만 원 정도를 후원금으로 기탁했다. 그 역시 한국 내 가장 인상 깊었던 일로 전 직원들과 땀을 흘려가며 연탄을 배달했던 것을 꼽았다.최고경영자(CEO)로서 직원들과 유대 관계를 증진하는 데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실제로 그는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낸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직원들과 함께 회사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에 공기밥을 비벼가며 식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개업 대리점을 방문해 돼지머리에 돈을 꽂고 절을 하며 업소 관계자들과 정겹게 막걸리 한 사발씩을 들이켜는 것도 그가 한국 생활 중 꼼꼼히 챙기는 부분이다. 북유럽 외에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그가 이렇게 바뀌게 된 것 역시 부단한 자기 노력의 결과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세일즈의 기본이라는 대원칙을 그는 생활 속에서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올해 매출 계획을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엠브렘 대표는 “원·달러 환율 변동 폭이 워낙 커 올 매출액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일단 지난 몇 년간 계속돼 왔던 두 자릿수 이상 성장을 목표로 정했다”고 밝혔다.그는 시간이 나면 집 근처 남산 주위를 조깅하거나 서울 근교 산에 오르는 트레킹을 즐긴다. 또 최근에는 언젠가 노르웨이로 돌아갈 것에 대비해 큰 딸에게 스키를 가르치며 주말을 보낸다.오이빈 엠브렘미쉐린코리아 대표노르웨이 과학기술대프랑스 파리 HEC(MBA)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