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의 전설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

랑스는 와인의 천국이다. 얼마 전 야후닷컴이 전 세계 국가별로 연상되는 단어를 설문 조사한 결과 ‘와인=프랑스’였다. 사실상 프랑스 전역이 포도밭이지만 그중에서 보르도는 프랑스 와인의 역사이자 심장부다. 부르고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지만 생산량이나 브랜드 가치 면에선 보르도에 미치지 못한다. 보르도는 프랑스를 떠나 하나의 거대한 와인 브랜드로 커졌으며 토착 포도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소비뇽 블랑, 세미용 등도 덩달아 전 세계로 팔려나가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보르도 와인이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지난 12월 4일 서울 프라자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2008 보르도 그랑크뤼 전문인 시음회’ 참석차 내한한 패트릭 마로토 샤토 브라네르 뒤크뤼 회장과 스테판 본 네이베르크 샤토 캬농 라 갸플리에르 오너와 만나 간단한 와인 토크를 가졌다.샤토 브라네르 뒤크뤼와 샤토 캬농 라 갸플리에르는 보르도 내 생줄리앙과 생테밀리옹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이들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 맛은 부드러우면서도 기품이 느껴져 국내에서도 상당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두 사람은 현재 보르도 그랑크뤼 연합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마로토 회장은 지난 2000년부터 5년간 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했다.마로토: 우리는 상쾌한 와인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과일향이 풍부하고 상쾌하며 동시에 구조감이 단단하고 우아함이 느껴져야 합니다. 이 4가지를 한꺼번에 만들어 내기가 어려울 것 같지만 일단 우리 와인을 마셔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와인이 제맛을 내려면 최소한 3~4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최고 정점은 7~15년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이마저도 빈티지(수확 연도)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네이베르크: 오래될수록 좋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 우리 샤토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선 테르와르(Terroir)가 가장 중요합니다. 와인은 테르와르가 좋아야 하며 위대한 와인 역시 훌륭한 테르와르가 뒷받침돼야 하는 법이죠. 생테밀리옹 여러 곳에 포도밭을 갖고 있는데 나오는 와인 맛도 제각각인 걸 보면 테르와르라는 게 참 흥미롭습니다.보르도 와인의 핵심은 테르와르다. 예전에는 토양이라는 말로 직역됐지만 테르와르는 단순히 땅으로만 한정지을 순 없다. 좀 복잡한 단어다. 프랑스인들이 자국 와인을 ‘원조’라고 치켜세우는 것 역시 테르와르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인들에게 테르와르는 토양, 기후, 지질, 습도, 강수량, 일조량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한마디로 와인이 자라는 환경 전체를 의미한다. 와인이 자라는 최적의 환경이 바로 테르와르이며 자연환경이 좋을수록 ‘위대한 와인’이 탄생한다고 프랑스인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점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실체가 없는 테르와르가 마케팅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 비판 세력의 주장이다.마로토: 아닙니다. 그건 와인을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그는 이 부분에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내에서도 테르와르는 천차만별입니다. 프랑스처럼 기후, 토양이 제각각인 곳도 드물 겁니다. 다양성이 형성된다는 뜻이죠. 차로 1시간 차이가 나는 곳도 서로 토양이 다릅니다.네이베르크: 좋은 포도가 생산되기 위해선 땅이 척박해선 안 됩니다. 물이 없어야 합니다. 좋은 포도밭은 땅을 파면 자갈, 모래, 진흙이 뒤섞여 있습니다. 수분을 빨아들이지 못하면 포도나무는 성장을 멈추고 그러면 영양분을 열매로 보냅니다. 따라서 테르와르는 인간이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일 뿐이죠.프랑스인에게 와인은 자존심 그 자체다. 테르와르가 좋은 곳은 프랑스밖에 없는 것이냐고 묻자 마르토 회장은 “레드와인만 놓고 보면 보르도, 부르고뉴, 북이탈리아 외에는 테르와르라는 말을 쓰기가 힘들다”며 자국 와인의 우수성을 한껏 치켜세웠다.마르토 회장이 경영하고 있는 샤토 브라네르 뒤크뤼는 지난 17세기 설립된 와이너리로 1855년 그랑크뤼 4등급으로 지정받았다. 50헥타르에 이르는 생줄리앙 농장에서 한 해 28만 병을 생산하고 있으며 주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다. 거친 카베르네 소비뇽 향을 메를로가 부드럽게 만들며 절묘한 하모니를 연출하는 것이 이 와인의 매력이다.샤토 캬농 라 갸플리에르는 생테밀리옹의 그랑크뤼급 와인으로 와이너니를 소유한 네이베르크는 800년 가까이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프랑스 백작 가문이다. 19.5헥타르에서 한 해 6만5000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사용하는 주된 품종은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등이다. 현 소유주인 스테판 본 네이베르크는 ‘보르도 최고의 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멋쟁이다. 캬농 라 갸플리에르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첫맛은 강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향이 주는 여운이 길다.마로토: 5년 전부터 매년 한국을 찾고 있는데 매년 달라지는 와인 열기가 놀랍습니다. 아마 이토록 빠른 시간 내 성장하는 나라를 찾기도 어려울 겁니다. 와인을 이해하는 수준도 굉장히 높아요. 사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와인을 따라주면 다들 받으면서 어색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유럽인 이상으로 자연스러워요. 와인에 대한 식견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입니다.2005년 빈티지는 최근 생산된 와인 중 최고 작품이다. 프랑스인 의 표현을 빌리면 지난 반세기 동안 이만한 테르와르가 없었다. 세계 최고의 와인 평론가로 꼽히는 로버트 파커도 “내 평생에 가장 좋은 빈티지를 꼽는다면 주저 없이 2005년을 선택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2005년 빈티지는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봄, 여름의 일조량이 예년보다 높고 연중 강우량이 적어 포도 알이 잘 농축될 수 있었다. 포도나무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서리, 폭우, 폭염도 없었고 생산량이 적어 와인의 품질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다. 이번 2008년 브르도 그랑크뤼 전문인 시음회에 출품된 와인은 전부 2005년 빈티지였다.마로토: 굉장히 훌륭한 빈티지입니다. 흔히들 위대한 빈티지로 1945년, 1954년, 1959년을 꼽는데 2005년도 이들 빈티지와 비교할 때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이보다 더 좋은 날씨를 기록한 해는 없었다고 과언이 아닙니다.네이베르크: 2005년 빈티지가 위대한 것은 프랑스 전역의 작황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레드, 화이트, 디저트 와인 등 거의 모든 와인들의 품질이 최상급이죠. 저는 지난 1945년 이후 이보다 좋은 빈티지는 없었다고 봅니다.마로토: (네이베르크 백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거야 샤토 캬농 라 갸플리에르가 속한 생테밀리옹 지방에서 그동안 워낙 좋은 와인이 안 나왔기 때문 아닌가요. 그러니까 45년 만에 맞은 최고의 해일 수밖에요. 우리는 이렇게 좋은 빈티지를 만나는데 30년밖에 안 걸렸어요. (웃음)네이베르크: 우리는 남과 다른 와인을 만드는 것을 최고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포도 묘목 하나도 우리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제품만 씁니다. 땅의 기운이 테르와르이기 때문에 살충제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잘 결합돼야 좋은 와인이 태어날 수 있는 법이죠.마로토: 우리는 품종 배합이 약간 다릅니다. 다른 샤토에 비해 카베르네 소비뇽 배합 비율이 좀 높습니다. 또 양조, 숙성 방법도 차이가 납니다. 물론 오크통 스타일까지도 다릅니다. 이런 것들이 아주 미묘하지만 맛의 차이를 결정하는 법이지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MONEY 독자들이 우리 와이너리를 방문하신다면 기꺼이 보여드리겠습니다.Box in Box그랑 크뤼는 보르도 와인의 최상을 차지하고 있는 와인 등급이다. 보르도 와인 생산량의 3~4%에 불과해 프랑스인들도 함부로 마실 수 없는 고가 와인 대부분이 이 등급에 포진해 있다. 국내에서도 판매가가 대부분 1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보르도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 1973년 설립된 민간 단체다. 그랑 크뤼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와 동일한 품질을 인정받은 샤토 등 131개 와이너리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