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삶을 화폭에 담는 이왈종

야흐로 조선시대 화가의 바람이 불고 있다.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 등을 소재로 한 책, 영화,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풍속화가로 일컬어지는 이들은 양반과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려내 후대 사람들이 당대의 모습을 상상케 하는데 도움을 준다. 단지 장면을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학과 풍자를 담은 작가적 시선으로 시대상을 반영하기에 이들의 작품은 그 의미가 더 크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겹쳐 떠오르는 화가가 있다. 제주도를 근거지로 현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는 이왈종이 바로 그 주인공. 그는 대학 졸업 후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으며 일찌감치 추계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후학 양성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화가로서, 교수로서 입지를 구축했으니 어느 정도 ‘구색’을 갖췄다고나 할까. 그러던 1990년 어느 날, 서울 생활을 접고 홀연히 제주도로 떠났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고 했건만 오히려 외지로 찾아 들어간 것이다. 세속적인 욕심 예컨대 돈, 명예, 사람들과의 어울림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창작물에는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물욕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이전 작품에 못 미치는 작업을 하기 일쑤다. 스님들이 하안거, 동안거를 통해 수양하는 시간을 갖듯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서 스스로 출발선을 다시 그은 셈이다.“그림을 그리자.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끊자. 선과 악, 쾌락과 고통, 집착과 무관심의 갈등에서 벗어나 중도(中道)의 길을 걷자. 좋은 작품은 평상심에서 나온다. 마음과 육체가 둘이 아닌 세계,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세계, 그것은 바로 아무런 집착이 없는 무심의 경지이며 중도의 세계다.”제주도 정착 초기 자신에게 수없이 되뇌었을 법한 말이다. 여러 사람들과 교유하던 서울과 달리 가족들과 헤어진 채 혈혈단신으로 지내는 그곳은 귀양살이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제주도에 살지만 토착민은 아닌 입장에서 현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400여 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오름들, 사계절 내내 피어나는 꽃, 그리고 하나둘 들어서면서 요즘 제주의 또 다른 한 모습이 된 골프장과 골퍼 등이 등장한다. 그의 그림은 변해가는 제주도의 모습을 담은 풍속도이며 현대의 풍속화가로 그를 떠올리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1. 제주 생활의 중도, 장지 위에 혼합 재료, 194×286cm, 20082. 제주 생활의 중도, 목조 위에 혼합 재료, 140×301cm, 20083. 제주 생활의 중도, 장지 위에 혼합 재료, 151×222cm, 20084. 제주 생활의 중도, 장지 위에 혼합 재료, 130×162m, 20082008년 10월, 3년여 만에 연 개인전에서 이왈종 작가를 만났다.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듯 엉성하게 묘사한 그림, 화사하고 따뜻한 색감, 불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이미지는 보는 이를 자연스레 무장 해제시키는 힘을 지닌다.“평상심을 찾아야 행복해지지 마음속에 갈등과 욕심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는 우리나라보다 못살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더 높게 나오지 않습니까. 좋은 옷과 신발을 걸치지 않아도 그곳의 아이들을 보면 순수함이 그대로 비춰지잖아요. 물질로부터 충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물질을 가질수록 욕심이 사나워지죠. 모든 것을 놓는 연습, 포기할 줄 알고 마음을 덜어내는 훈련을 하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어떤 것에든 집착을 하면 마음이 흉해지기 십상인데 희한하게도 자연은 아무리 집착을 해도 정신세계를 더 정화시키는 마력을 지녔죠. 잡초 속에서 들리는 벌레 우는 소리 같은 사소한 것에서도 깨닫게 되는 게 많습니다.”그의 일반적인 라이프사이클은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 기상 후 오후 5시까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넓은 전시장을 가득 채운 수십여 점의 회화, 조각, 도자 작품이 모두 신작이라는 사실은 금욕적인 생활을 짐작하게 한다.모든 작품의 제목이 ‘제주 생활의 중도’인 것에서 알 수 있듯 그가 작업의 화두로 삼는 것은 중도의 세계다. 이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마음을 가리킨다. 바꾸어 말하면 흔히 갖게 되는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분노와 평정을 모두 다 끌어안는 마음 자세라고도 할 수 있다. 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책을 읽는 여인, 꽃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는 사람들, 찻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않은 부부, 장독대가 있는 마당에서 뛰어노는 개…. 일견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숨은 그림처럼 의외의 위치에 탱크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중도에 대한 ‘이왈종 식’ 해석이다.“골프를 하는 모습은 품위 있어 보이지만 그 분위기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평소에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점잖게 보이던 사람일지라도 단돈 천 원이라도 내기를 하게 되면 깐깐하고 양보심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리죠. 이런 면에서 인생도, 골프도 험악한 전쟁터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탱크를 그렸습니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양면적 심리는 나쁜 것이라기보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를 융합하고 화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우연한 계기로 골프를 시작하면서 이왈종 작가는 한동안 그 매력에 빠져든 적이 있다. 그러나 ‘그림 그리는 놈이 골프만 하면 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화가답게 그림으로 승화했다. 이미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을 정도로 골프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이따금 라운딩을 할 때면 유성 펜으로 그린 그림과 친필 사인이 들어간 공으로 친다.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였던 것처럼 전신에 곰보 자국을 휘두른 조그만 골프공 안에는 늘 남녀가 부둥켜안고 사랑을 나누는 춘화(春畵)를 그려 넣는다. 그러나 그림이 들어간 골프공은 판매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왈종 작가와 함께 필드에 나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가 오비(Out of Bounds)를 하기를 바란다. 오비가 난 공은 줍는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동양화가로 불리는 이왈종.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 물고기, 꽃나무, 집 등의 크기는 상식적이지 않다. 꽃나무 안에 집이 그려져 있고 물속에 있어야 할 물고기는 허공에 떠 있으며 심지어 집채만 하기도 하다. 비례가 맞지 않는 것이다.“인간이 보는 세계와 그들이 보는 세계는 차이가 많겠죠. 인간의 입장에서는 인간만이 삼라만상의 중심이 되고 동물의 입장에서는 또 그들 자신이 삼라만상의 근본이며 중심이 될 것입니다. 존재의 유무라든가 상대적 개념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일 뿐 만물도 인간과 똑같은 존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죠. 미물일지라도 존재적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제 그림은 보다 자유롭습니다. 인간이 새도 되고 새가 인간도 되고 꽃도 될 수 있다는 가상을 그린 것입니다.”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가 보이는 창조적 조형성을 나타내는 그의 회화에는 현대인의 진솔한 모습, 영원한 인간의 명제와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한 구도적 질문과 해답이 담겨 있다.글 정지현 미술전문 칼럼니스트·사진 제공 갤러리 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