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현황
년 11월 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한 신성건설. 시공 능력 평가 41위의 중견 건설 업체인 이 회사가 파산 위기에까지 내몰린 데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가 큰 몫을 했다. 이 회사는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2004년 말 분양된 311가구 아파트에 대한 PF 대출 지급보증을 하는 조건으로 시공을 맡았다. 그런데 이 가운데 100여 가구의 미분양 물량이 생기면서 시행사가 돈을 빌린 저축은행에 43억 원의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 꼼짝없이 채무를 떠안게 된 신성건설은 10월 31일 만기까지 돈을 마련하지 못해 1차 부도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해당 저축은행이 어음을 회수했지만 이후에도 상환하지 못하고 추가로 회사채 350억 원도 갚지 못하면서 결국 기업 회생 절차 개시 신청을 택했다.요즘 건설 업계는 PF 우발채무 때문에 벌벌 떨고 있다. ‘불확정채무’라고도 불리는 우발채무는 장래에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발생하는 채무다. 이 가운데 PF 우발채무는 신성건설의 사례와 같이 건설사가 시행사에 대해 보증한 PF 대출을 시행사 부도 등으로 인해 그대로 떠안게 되는 경우다.PF 우발채무가 무서운 이유는 무엇보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이 2008년 11월 발표한 ‘디레버리징의 신용이슈’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신용 등급 ‘BBB-’ 이상 41개 건설사의 재무제표를 합산한 부채비율은 189%에 불과하지만 PF 우발채무를 포함한 수정부채비율은 42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정부채비율이 1000%를 넘는 건설사도 7개나 됐다.더욱이 PF 우발채무의 상당 부분이 금융회사의 추가 차입에만 의존하는 고정화 상태라는 점에서 더욱 걱정된다. 굿모닝신한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 PF의 60% 이상이 분양 전이고 분양된 사업장도 절반가량이 분양률 50%를 밑돌아 정상적인 순환이 끊어진 상태다. “단계적 회수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20%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사실상의 고정화 상태”라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이에 따라 신용 평가 회사들은 PF 우발채무가 많은 건설사들의 신용 등급을 내리고 있다. 한국신용평가가 2008년 12월 신용 등급을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하향 조정한 동문건설 동일토건 우림건설 월드건설 중앙건설 동일하이빌 삼능건설 우미건설 등 8개 건설사도 PF 우발채무가 많은 점이 주요 지적 사항으로 꼽혔다. 예컨대 동문건설은 한국신용평가로부터 “신규 수주를 통한 PF 지급보증 대출액이 1조1117억 원에 달하고 있어 유동성 부담이 내재돼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대형 건설사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림산업과 GS건설, 대우건설도 PF 대출에서 파생된 유동화기업어음과 자산유동화증권 등으로 인한 우발채무 발생 가능성이 심각하다는 지적과 함께 신용 등급을 강등 당했다. GS건설은 2008년 9월 말 현재 PF 대출 잔액이 5조600억 원에 달하며 대림산업은 3조 원을 넘어섰고 대우건설도 3조4000억 원에 육박했다.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은 PF 대출 무차별 회수에 나서면서 건설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시행사가 모 증권사로부터 받은 700억 원 규모의 PF 대출을 떠안게 된 한 대형 건설사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만기 연장이 갑자기 끊겨 곤욕을 치렀다. 증권사가 처음에는 3개월 단위로 금리를 조정해 가며 1년간 자금을 빌려주겠다고 문서로 약정하면서 발행 당시 2.3%의 발행 수수료까지 챙겨놓고는 이제 와서 6개월 안에 모두 갚으라고 한 것. 이 회사는 한 달에만 50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같은 이유로 지난해 말 3개월 동안 ABCP 2380억 원을 증권사에 갚는 바람에 연말 자금운용 스케줄이 꼬여 버렸다. 다른 중견 건설사는 한 증권사가 2009년 4월까지 약정된 ABCP를 이유 불문하고 상환하라고 요구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상태다.신규 PF 대출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것도 건설사들을 괴롭게 만드는 요인이다. 아무리 ‘알짜’로 예상되더라도 PF 대출이 안 돼 사업을 벌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견 건설사를 중심으로 기존 사업을 포기하거나 신규 사업을 벌이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우림건설은 2008년 7월 서울 금천구 독산동 육군도하부대 이전부지 개발 사업에서 손을 떼고 롯데건설에 넘겼다. 이 사업은 지하철 1호선 시흥역과 독산역 사이에 있는 도하부대 부지 19만여㎡에 고층 오피스 빌딩과 아파트, 상업시설 등을 짓는 프로젝트로 총 사업비가 2조5000억 원에 이른다. 잘만 하면 엄청난 이익이 쏟아질 수도 있는 사업이었지만 문제는 PF 대출이었다.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가 불가능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대형 건설사들도 PF 사업에서 발을 빼는 추세다. 2008년 10월 접수 마감이었던 경기도 광교신도시 비즈니스파크 PF 사업에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컨소시엄이 단 한 곳도 없어 공모가 연기됐다. 광교신도시 비즈니스파크는 광교 내 16만2000㎡(4만9000평) 부지에 사업비 1조5000억~2조 원을 투입해 글로벌 업무복합단지를 조성하는 대형 사업이다. 이에 따라 SK건설과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우건설, GS건설, 포스코건설 등 주요 대형 건설사들이 사업 수주를 추진해 왔으나 결국 막바지에 모두 포기했다. SK건설은 특히 사업 수주를 위해 2007년부터 태스크포스팀(TFT)까지 가동한 터였다. 그러나 금융 경색으로 대형 PF 사업을 추진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발을 빼고 말았다. 앞서 같은 달 마감된 코레일의 대전역세권 개발 PF 사업 공모도 참여한 건설사가 없어 유찰됐다.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부동산 PF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건설사가 지나친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는 점에서다. 법무법인 지평·지성이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2008년 12월 개최한 ‘PF 건설사업 위기’ 세미나에서 KB국민은행 프로젝트금융부의 신명재 팀장은 그 이유로 주택 개발 사업에 있어서 돈을 빌려 준 금융회사가 입주자 모집 공고일 이후에는 사업장에 대해 담보신탁이나 저당권을 설정할 수 없게 돼 있는 점을 들었다. 시행사의 부도로 사업이 중단되면 대한주택보증이 당해 사업장을 인수해 입주 예정자에 대한 분양 보증 책임을 이행할 뿐 금융회사의 채권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금융회사는 시행사의 자금 조달 능력이 떨어지면 시공사의 지급보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는 대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대한주택보증이 독점하고 있는 주택 분양 보증 업무의 취급 기관 확대다.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춘 금융회사에도 주택 분양 보증을 허용해 다양한 금융 기법을 통해 시공사에 편중된 리스크를 참여자별로 적절하게 분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자칫 분양자에게 리스크가 전가될 가능성도 있어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이와 함께 PF 사업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들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현재는 시행사와 시공사가 공동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대출금 및 분양 수입금을 관리할 때 나중에 시행사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회사는 이 예금 채권을 시행사분과 시공사분으로 분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가압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법원이 일종의 조합 재산으로 간주해 가압류를 걸지 말아야 PF 사업의 안정성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견해들도 제기되고 있다.임도원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