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수 현대증권 대표
권 은행 가리지 않고 금융 업종 종사자들의 급여가 생산성에 비해 턱없이 높아 깜짝 놀랐습니다. 투자은행(IB) 하겠다고 외치면서 선진 금융 기법을 먼저 들여온 게 아니라 미국 수준의 높은 임금이나 이직 문화 같은 좋지 않은 면을 더 빨리 받아들인 게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습니다.”언뜻 금융업계 외부 관계자의 지적 같지만 현직 국내 대형 증권사 최고경영자(CEO)가 바라본 국내 금융업계의 한 단면이다. 최경수 현대증권 대표는 “금융 업종의 현재와 같은 임금 체계는 생존경쟁에 처한 현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데 큰 장해물이 될 수 있다”며 “생산성 향상 후 임금이 따라가는 모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평생 세무담당 관료로 살아온 최 대표가 들여다 본 증권업계는 그동안의 외형 성장이나 인재들의 질적 향상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언제든 회사를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낮은 조직 충성도나 수익이 나면 회사에 유보해 새로운 투자를 준비하기보다 당장 성과급으로 나눠 갖는 시스템은 일반 기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입니다.”최 대표는 재정경제부에서 30여 년 동안 세무 전문 관료로 근무하다 조달청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대학에서 세무학을 가르치던 중 지난 4월 현대증권 대표로 취임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던 증권사들의 실적이 올 들어 급전직하하고 있는 상황에 사령탑을 맡아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 대표는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취임 후 ‘하지마라’ ‘줄여라’ ‘깎아라’를 외치는 잔소리꾼이 되어 버렸다”며 “하지만 2009년 상반기까지는 ‘생존’을 경영의 화두로 삼고 있는 만큼 당분간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그렇지만 최 대표는 그동안 공격적 투자에 나서지 않았던 현대증권에게 어쩌면 이번 위기가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대형 증권사 가운데 유일하게 자산운용사가 없었던 현대증권은 그동안 펀드 판매는 물론 국내외 자기자본투자(PI) 등에서도 경쟁사에 비해 보수적 입장을 취해 왔다. 2007년까지 활황장에서는 약점이 됐던 이 같은 처지가 금융 위기가 심화된 이후에는 오히려 약이 되는 상황으로 돌변한 것.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의 부실이 상대적으로 적고 영업용순자산비율(NCR)은 500%대로 증권사 가운데 1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최 대표는 “당분간 신용 경색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PF와 자기 자본 투자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의 유동성 문제도 갈수록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동안에는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상품 설계 경쟁력 차이가 크지 않았으나 자본시장통합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2009년부터는 확실한 차별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2009년은 전체 금융사들에 사활이 걸린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금융 위기가 실물로 전이되는 초기 단계에서 금융과 실물이 동시에 침체되는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2, 3, 4월을 고비로 보고 있는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 이내로 떨어질 공산이 큽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생존’이 관건인 만큼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최대한 안정성 위주로 경영할 방침입니다. 자기자본 투자도 억제하면서 전통적 영업 기반인 브로커리지와 자산관리 영업에 초점을 맞출 계획입니다. 고용도 IB 영업 확대 시 필요한 최소 인력 외에는 동결하고 대표이사를 포함한 전 임원들의 급여도 2008년 11월부터 최대 20%까지 삭감했습니다.”“2008년 상반기까지 레버리지를 일으켜 PF 등에 투자한 증권사들은 지금도 단기 콜 자금에 의존할 정도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자금 경색으로 PF와 중소기업 대출, 가계 대출 부실화 가능성도 높은 가운데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확충에 나서면서 사실상 대출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정부나 한국은행은 개별 기업들의 자구책 마련 이후 본격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금융 위기의 실물 전이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한은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회사채 매입 등의 공격적 대응이 없을 경우 설 명절 이전에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이미 신용보증기금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 발행에 산업은행 대우증권 동양종금등과 공동 주간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4000억 원 규모를 발행했고 향후 2조 원까지 규모를 늘릴 계획입니다. 신보의 지급보증과 8%대의 금리에도 불구하고 회사채가 외면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채권시장 안정 기금이 풀린 후에는 회사채 시장이 호전될 것으로 봅니다. 여유 자금이 있는 투자자자라면 우량 회사채에 투자할 적기라고 봅니다. 회사 차원에서도 우량 회사채에 대한 투자를 보다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과거에는 인적 구성이나 자본력에서 은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했지만 이제는 은행과 경쟁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섰습니다. 은행의 고유 업무인 예대마진 등의 이자 수익 부분을 제외한 파생상품 펀드 등에서는 오히려 증권사의 경쟁력이 더 높아졌습니다. 은행의 질적 성장이 정체된 반면에 증권 분야는 훨씬 빠르게 성장해 온 것 같습니다. 펀드 불완전 판매 소송이 은행에 집중되는 것도 이 같은 경쟁력 격차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09년에 펀드 환매가 본격화될 경우 은행의 불완전 판매 문제가 한층 더 커질 소지가 더욱 많다고 봅니다. 현재 신뢰 상실 위기에 처한 금융회사들에 이처럼 여러 문제가 불거질 2009년이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급여 수준에 비해 상품 개발 능력이나 리스크 대응 면에서는 아직 국내 금융권은 선진 IB에 비해 초기단계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미국 IB의 몰락은 리스크 관리의 실패 사례입니다. 과다한 차입과 파생상품에 대한 공격적 투자가 불러온 결과인 셈이죠. 과거 우리나라도 외환 위기에서 이 같은 리스크 관리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반복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현재 은행권의 유동성 위기는 단기 수익을 위해 유동성과 건전성을 희생시킨 탐욕이 부른 화이기도 합니다. 증권사가 유동성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있는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감독원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 등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정부 당국의 금융권에 대한 규제는 은행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반면 증권사에는 엄격한 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약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교훈에서 보듯 앞으로 한국식 IB 모델은 미국의 자유방임적 모델보다는 적절한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을 계기로 완전 허용되는 신종 파생상품 등의 금융상품 분야에 대서는 일부 규제강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여성 전용 자산관리 센터는 기존 지점망 운영 방식에 대한 발상의 전환 차원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했습니다. 가계 자산운용의 주체인 여성 고객층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겠다는 전략입니다. 4월부터는 현대증권의 강점 중 하나인 전국 140여 개 지점망을 기존 브로커리지 영업 중심에서 종합자산관리센터 형태로 전면 쇄신할 계획입니다. 주택지역 지점망은 종합자산센터로 바꾸고 상업지역은 주식 영업 중심, 지방은 소점포 형태 등 타깃 고객층에 따라 지점망을 세분화할 예정입니다.”“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직 구체적 상품 계획을 잡지 않았지만 고객의 수요를 적극 반영하기 위해 수요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 시장의 동향까지 감안해 상품을 디자인할 계획입니다. 현대증권 고유의 자산관리 이미지 구축을 위해 별도의 브랜드를 마련할 계획입니다.”현대증권 대표서울대 지리학과행정대학원일본 게이오대학 경제학 석사재정경제부 세제실장조달청장계명대 교수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