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미국의 44대 새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글로벌 악성 금융 위기에 대한 대처 방식이 바뀌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미국의 최대 현안인 모기지발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 문제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오바마식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이 모델은 모든 위기 처리에 국가의 역할을 공식 인정하는 것으로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복원력이 없을 때 적용하는 위기 해결 방식이다. 이전까지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의 방식은 시장의 기능과 복원력을 전제로 한 것으로 지금처럼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대증요법이었다.이미 올 9월 말에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제시한 방안과 비슷하다고 해서 ‘브라운-오바마식 모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방식이 추진됨에 따라 앞으로 기업 경영과 투자 환경에는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금융시장은 난기류를 보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해결에 대한 기대가 조심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악성 금융 위기 해결에 가장 절실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비상시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을 이 모델은 공식 인정했기 때문이다.워런 버핏 등이 주장한 위기의 3단계 이론 가운데 첫 번째 단계인 돈이 부족한 유동성 위기는 5부 능선을 지났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현재 세계 경기는 유동성 위기로 돈이 제때에 공급되지 않고, 시스템 붕괴로 시장과 가격 변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함에 따라 금융 불안이 본격적으로 실물경기에 옮겨 붙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일본과 유럽 경제는 지난 2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또 1분기 0.9%, 2분기 2.8%로 올 상반기까지 비교적 잘 버텼던 미국 경제도 3분기에는 성장률이 마이너스 0.3%로 크게 떨어졌다.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대부분 개도국의 경제도 성장률이 잠재 수준 밑으로 떨어지는 경착륙이 우려될 정도로 둔화되고 있다.최근 들어 주식과 부동산, 금 등 모든 자산 가격이 추세적으로 하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종전과 달리 하루 간격으로 등락을 거듭하면서 변동 폭이 확대되고 있어 투자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모든 자산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은 실물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실물경기는 지난 1년간 세계 자산 가격이 평균 40% 이상 폭락한 데 따른 역자산 효과와 앞으로 본격화될 구조조정에 따른 역기능 등으로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2.2%로 올 4월의 3.3%에 비해 크게 하향 수정됐다. 이번처럼 미국 일본 유럽 등 대부분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 것은 IMF가 세계 전망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개도국 성장률도 선진국 둔화 폭보다 평균 1%포인트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소득 갭(GDP gap: 실제성장률-잠재성장률)으로 볼 때 내년에 세계와 각국 경제는 마이너스로 떨어져 경기 침체 하에 물가가 동시에 떨어지는 무기력 단계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IMF는 모든 회원국들에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 부양 차원에서 금리를 내리더라도 회원국들의 공조 하에 경제 주체들이 확실히 느낄 수 있도록 이른바 ‘빅 스텝’ 금리 인하 방안을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이에 화답이라 하듯이 세계 각국들은 정책금리를 속속 내리고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는 각각 1%, 0.3%까지 떨어져 실질적인 ‘제로’ 금리 시대에 접어들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영국이 금리를 한꺼번에 1.5%포인트 내리는 것을 계기로 기준금리를 서둘러 인하하고 있다. 우리도 불과 한 달 만에 기준금리를 1.25%포인트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당분간 국제금리의 인하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 금융회사들은 선진국의 정책금리는 ‘제로’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도국들의 정책금리도 내년에 예상되는 성장률 수준까지 대폭 인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4%인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3% 내외까지 추가적으로 인하될 것으로 국내 전망 기관들은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주가와 집값은 실물경기 침체와 신용 경색 완화 가운데 어느 요인이 부각되느냐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변동 폭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가와 집값은 초기에는 실물경기 침체가 더 부각되면서 추세적으로 더 떨어지다가 시간이 갈수록 신용 경색 완화 조짐이 뚜렷해지면 상승 국면에 진입하는 것이 과거의 모습이다.주식과 부동산 가운데에서도 먼저 반응하는 것이 주식이다. 대체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은 6~9개월 정도의 시차를 갖고 순차적으로 반응한다. 일드 갭(yield gap: 1년 후 주식 기대수익률과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 간 차이)으로 볼 때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주식의 경우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브라운-오바마식 모델의 적용으로 금융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앞으로 다가올 금융 환경에 있어서는 △자원 배분이나 위기 처리 주체는 시장보다 국가가 △금융 산업 구조는 투자은행보다 전통적인 시중은행이나 금융지주회사가 △금융상품은 복잡한 파생상품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순한 상품이, 그리고 △모든 감독 체계에 있어서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현 체제와 환경을 보완 혹은 개편될 가능성이 높다.새로운 국제금융 기구나 국제 통화 질서에 대한 요구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촉발된 모기지 사태가 불과 1년이란 짧은 기간에 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악화된 데에는 컨트롤 타워로 IMF-세계은행, 선진 7개국(G7) 회담, 현 통화 체제인 자유변동환율제 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IMF의 기능 강화론이나 해체론, G7 회담에 대신할 선도그룹(steering group) 창설, 신브레튼 우즈 체제 논의 등이 일고 있다.국제간 자금 흐름에 있어서는 당분간 본국으로의 회귀 성향이 강화될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셔의 이론대로 나라별로 금리나 통화가치 면에서 다소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경제 주체들의 자금 운용 방식이 앞으로 상당 기간 중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프런티어 마켓→ 신흥시장→ 선진 신흥시장→ 선진시장 순으로 신용 위기 우려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학계에서는 경제 주체들의 자율과 시장을 중시해 온 통화론자와 공급 중시 경제학자보다 케인지언들이 득세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상황과 위기 대처 방식으로 브라운-오바마식 모델이 케인즈 이론이 태동됐던 1930년대 상황과 당시의 위기 대처 방식인 루스벨트식 모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과 국제 통상 질서에서는 각국의 이익이 보다 강조되는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거나 자원을 많이 보유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시장의 결속을 다지는 카르텔화, 혹은 국수주의 움직임이 강화되는 이른바 ‘과도기 징후’가 나타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 경우 세계경제는 지금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반면 오바마 정부가 당면한 금융 위기가 다른 국가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보호무역주의로 흐를 가능성은 적다는 지적도 주목된다. 오바마 정부가 미국만의 이익을 겨냥해 무역 장벽을 치면 1929년 대공황 당시처럼 오히려 금융 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고 실물경기는 ‘잃어버린 10년’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호무역과 공정무역을 균형 있게 추진할 것으로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이처럼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와 오바마 정부의 출범은 앞으로 다방면에 걸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 정책 당국을 비롯한 모든 경제 주체들은 이런 환경 변화에도 선제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금융 위기 극복 이후 찾아올 새로운 환경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국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Global 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