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강남에 사는 박응현(41·가명) 씨는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친한 친구로부터 부동산 투자를 권유받았다. 대중과 반대로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투자자라는 얘기와 함께. 그러나 박 씨는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금융 위기가 이제 실물경기 침체로 번지고 있어 최소 몇 년간 세계적 경제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투자했다가 부동산 가격이 폭락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라고….”하지만 박 씨의 생각은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일 수도 있다. 투자의 기회는 반드시 상승장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도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투자할 수 있는 요긴한 수단이 있다. 바로 부동산 가격 하락 때 기업에서 헐값으로 나오는 부동산에 투자하는 기업 구조조정용 부동산 투자 회사, 이른바 CR리츠(Corporate Restructuring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다.지난 5월 190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지수가 1500대로 추락했던 8월 6일 CR리츠인 ‘코크렙제3호기업구조조정부동산투자회사(코크렙3호)’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주위의 부러움을 독차지했다. 코크렙3호가 5년간 투자를 마치고 이날 투자자들에게 고액의 배당을 실시했기 때문이다.코크렙3호가 지난 2003년 8월 5일 주금을 납입한 날부터 이날 마지막 배당일까지 5년간 달성한 수익률은 257%. 5년 전 이 리츠에 1억 원을 투자했다면 투자자들은 원금 1억 원을 제외하고 2억57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수익률은 코크렙3호의 자산 운용 회사인 코람코자산신탁이 리츠 판매 초기 제시했던 연간 목표 배당수익률(연 10.19%)을 크게 웃도는 성과다.같은 기간 주식 투자와 비교했을 때에도 코크렙3호의 수익률은 돋보인다. 코크렙3호의 운용 기간 중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68%였다.리츠는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회사를 말한다. 투자자의 자금으로 부동산을 사서 임대 수익이 나면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통해 나눠주는 구조다. 그리고 보통 3∼10년인 회사 운용 기간이 끝나면 투자했던 부동산을 팔아 투자 원금을 회수해 투자자들에게 분배한다. 실제 코크렙3호의 운용 회사인 코람코는 법인 설립 직후인 2003년 8월 여의도 한화증권 빌딩과 서울 논현동 소재 아이빌힐타운 빌딩을 1513억 원에 매입한 뒤 지난 5월 3356억 원에 팔아 원금을 웃도는 1843억 원의 매매 차익을 거둔 뒤 배당금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줬다. 또한 이에 앞서 설립된 코크렙2호는 투자한 빌딩의 임대 수익이 나지 않아 당초 계획보다 앞선 2년 9개월 만에 청산됐지만 빌딩을 팔아 발생한 차익으로 투자자들에게 연평균 12%의 수익률을 안겨 주기도 했다.회사 운용으로 발생한 이익을 배당 이익으로 받는 데에도 주식에 비해 리츠가 월등히 유리한 구조다. 일반 주식회사는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 투자자들에게 나눠줄 배당수익을 소수의 대주주들이 좌우하지만 리츠는 발생한 이익의 90%를 의무적으로 주주들에게 배당하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코크렙3호의 경우 5년간 두 빌딩에서 나온 임대 수익 800억 원을 대부분 배당으로 투자자들에게 지급했다.하지만 리츠 역시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 상품이 각양각색이다. CR리츠는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때 유리한 투자 상품이다. CR리츠는 기업이 구조조정을 위해 싼값에 내놓는 부동산을 다른 일반(자기 관리 및 위탁 관리형) 리츠에 비해 훨씬 유리하게 사들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우선 CR리츠는 일반 부동산에 투자하는 자기 관리 또는 위탁 관리형 리츠에 비해 설립이 간편하다. 공모를 하지 않고 기관 투자자들만 모아 사모 형식으로 회사를 세울 수 있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위해 싼값에 부동산을 내놓을 경우 일반인에 대한 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훨씬 빨리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는 것이다. 또 1인당 지분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설립 및 투자가 쉽다. 자기 관리 및 위탁 관리형 리츠는 1인당 지분이 30%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들 일반 리츠는 지분을 나눠서 주주들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 설립 및 투자가 CR리츠에 비해 불리한 셈이다.자산의 임대 수익을 고려해도 CR리츠가 일반 리츠에 비해 유리하다. 기업이 어쩔 수 없이 부채 상환을 위해 내놓는 부동산은 상대적으로 입지가 좋은 물건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CR리츠는 일반 리츠에 비해 임대 수익이 좋은 부동산을 싼값에 살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 투자 상품이다.이런 이유로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이 쏟아져 나오는 불황기에는 CR리츠가 대표적 간접 투자 상품이 되는 것이다. 실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리츠 가운데 초기 리츠는 대부분 CR리츠였다. 이들 CR리츠는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속속 청산되고 있다.CR리츠는 자산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용 부동산의 비중이 70%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뛸 때에는 투자할 자산 자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최근 1~2년 사이에 CR리츠의 설립이 크게 줄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실물경기가 위축돼 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CR리츠도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다만 CR리츠는 개인 투자자가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CR리츠는 기관투자가 중심의 사모 방식으로 발행되는 경우가 많아 소액의 개인이 투자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11개 CR리츠 가운데 주식시장에 상장돼 개인 투자자들이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는 것은 맥쿼리센트럴오피스 하나뿐이다. 이마저도 맥쿼리센트럴오피스는 회사 정리를 눈앞에 두고 있어 거래가 쉽지 않은 상태다.하지만 리츠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 개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모형 CR리츠의 설립도 다시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람코투자신탁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을 배제하기 위해 일부러 공모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며 “CR리츠의 특성상 사모 형태가 설립이 빠르기 때문에 사모가 많았지만 시장에 부동산 매물이 늘어나고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 외환위기 이후와 같이 공모를 통해 CR리츠를 발행하는 사례도 다시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경호 파이낸셜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