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금융연수원 김상경 원장

환시장은 정부의 개입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현재 국내 외환시장은 정부가 초기에 오락가락 행보로 조기 진화에 실패한데 따른 비용을 톡톡히 지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환율이 하루 최고 100원 가까이 오르내리던 10월 중순,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 원장은 MONEY와의 인터뷰를 외환 당국의 세련되지 못한 시장 개입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다.김 원장은 국내 금융계, 특히 외환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여성 최고경영자(CEO)다. 1979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 은행에서 국내 최초로 외환 딜링 룸을 만들 당시 주축 멤버로 참여했고 이후 남자 경쟁자들을 제치고 아멕스에서 국내 최초의 여성 치프(Chief) 딜러에 올랐다. 당시 글로벌 은행 치프 딜러 세미나에 참석한 김 원장은 여성이 단 두 명인 점에 크게 놀랐다고 한다. 김 원장은 “국내에서는 당연히 여성 딜러를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해외에서도 여성 치프 딜러가 드문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김 원장은 이후 중국은행 서울지점 치프 딜러를 거쳐 외환 위기 직후에는 외환은행 사외이사를 지내는 등 한국 여성 금융계의 선구자로 활약해 왔다. 1995년에는 그간의 외환 딜러 경험을 살려 ‘한국국제금융연수원’을 설립, 선물 옵션 파생 등 다양한 금융 노하우를 후배 금융인들과 기업체 외환 담당 임직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또 2003년에는 국내 금융계의 임원급 여성 200여 명이 주축이 된 여성 금융인 네트워크를 조직해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국내 금융계의 맏언니 격인 김 원장을 만나 외환위기 시절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최근 외환시장의 방향성과 파생상품 후유증으로 인한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국내 외환시장의 작은 규모와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낳은 결과입니다. 글로벌 통화도, 기축통화도 아닌 원화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크게 출렁이는 태생적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원화시장은 국내 수요와 해외 기관의 현금결제선도계약(NDF)이 전부입니다. 게다가 경상수지 적자로 곳간에서 달러가 계속 빠져나가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 해 있는 와중에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한 신용 경색까지 겹쳐 수급이 꼬인 것이죠. 어설픈 자본 자유화로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해외 자본이 가장 쉽게 돈을 빼내갈 수 있는 시장이 한국이라는 점도 원화 약세의 한 요인입니다.”“환율 정책은 정부의 구두 개입 단계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막상 실제 개입 시에는 강력한 조치로 시장에 명확한 사인을 줘야 하는데 현 정부의 외환 정책은 오락가락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지원 시기를 놓쳐 더 큰 비용을 지불하듯, 국내 환율 정책도 시장에 ‘이성적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추가 비용이 더욱 커진 셈입니다. 연초 수출을 부양하겠다며 달러 강세를 용인하다가 물가가 불안해지자 다시 시장에 개입하는 모양새입니다. 국내에서 돈 빼가는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정부의 환율 정책은 ‘떠나려는데 여비까지 보태준다’고 고마워할 일입니다. 초기에 시간을 허비했고 이제 단독 개입으로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봅니다. 은행권의 유동성 해소가 없는 한 단기적으로 안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가 하락세가 지속돼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는 시점까지는 불안한 행보를 보일 겁니다.”“최근의 급등세는 실질 수요보다는 은행권의 기존 포지션 정리를 위한 차입 수요와 불안 심리가 가중된 면이 큽니다. 따라서 이 같은 유동성 문제가 해소된다면 환율이 단기적으로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유동성 해소를 위해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대규모 스와프 방식으로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100억 달러 규모보다 훨씬 큰 500억∼700억 달러 규모를 스와프로 제공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도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면서 환율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환율 불안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과 스와프 계약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정부가 ‘외환 딜러 입막음에 나섰다’ ‘딜러들의 투기 혐의를 조사한다’는 등의 소식을 접하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환시장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없는 원시적 발상이라고 봅니다. 투기적 거래는 외환시장의 기본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일 수출입 기업 수요만 있을 뿐 투기적 수요가 없다면 외환시장 자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투기적 거래는 헤지, 차익 거래, 스프레드와 함께 파생상품의 주요 전략입니다. 금융 산업은 리스크라는 칼날 위에 있는 업종입니다. 제조업 마인드로 접근해서 재단하는 것은 무리입니다.”“과거 국내에서 외국계 은행이 파생상품을 선도할 당시 조그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금융 당국이 상품 판매를 중지시키고는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국내 금융시장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미국이 현재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파생상품을 대폭 규제한다면 수업료를 치른 교훈을 얻을 수 없습니다. 파생상품은 본래 투기 목적보다는 현물에 대한 헤징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자산의 수천 배 규모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방치한 관리 감독의 문제이지 파생상품 자체가 원흉이라는 비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국내의 리스크를 분산할 만한 파생상품이 없어서 과거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 카드 사태 당시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와 같은 파생상품이 있었다면 국내의 리스크를 해외로 분산해 파장을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를 갖춘 감독 당국이 큰 우산을 마련해 그 아래서 거래가 이뤄지게 하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가장 큰 책임은 해당 기업에 있다고 봅니다. 계약 당시 해당 기업의 재무담당 임원이나 CEO가 위험도를 인지했을 텐데 환위험 회피 외에 투기적 수요도 적지 않았던 게 현실입니다. KIKO 상품은 1995년 외환 딜러 시절 당시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처음 접했는데 무려 10년 후인 2004년 전후에 외국계가 국내에 들여와 국내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일부 은행은 KIKO 상품 판매 창구를 본점으로 일원화했는데 반해 일부는 기업금융담당 지점에 맡겨 충분한 위험 고지 없이 펀드처럼 불완전 판매한 것도 사실입니다. 과거 한 중견기업이 최고재무책임자(CFO)의 환투기로 엄청난 손실을 봤는데 5년여의 소송 끝에 은행에도 25%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결론이 난 적이 있습니다.”“여성금융인네트워크는 국내 은행과 증권사 지점장급 이상 200여 명의 모임입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모임을 통해 교류를 확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장의 움직임을 한발 먼저 감지할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지난해 미국 서브프라임 문제가 불거졌다가 다소 주춤할 당시 미국 금융사의 부실 규모가 원화로 ‘경’ 수준에 달할 정도로 심각해 더 큰 금융 회오리가 올 것이라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작년 말 이후 글로벌 주식시장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에 출가한 두 딸들에게 주식형 펀드를 모두 환매하고 당분간 투자도 쉴 것을 권했습니다. 최근에는 강남의 모 은행 지점장이 강남 대치동 W아파트의 관리비 연체율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는 얘기를 전하는 등 네트워크 모임이 경제 흐름을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금융계에서 20년 동안 인연을 맺어 온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한은행 신상훈 행장의 경우 그분이 차장 시절 처음 만나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월 2회 이상 자주 만나는 그룹과 한 달에 1회, 수개월에 1회 등 만나는 빈도에 따라 분류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전화나 연하장 등으로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번 맺은 인연을 지속할 수 있어요. 단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최근 펀드매니저가 많이 늘었는데 외환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한 점에 놀랐습니다.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가운데 외환 시장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꿰고 있는 인재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외환에 대한 이해 없는 펀드 운용은 반쪽짜리에 그치기 쉽습니다. 일례로 최근 환율 불안은 수익률이 좋을 때 무리하게 해놓은 펀드 환헤징이 결국 오버헤징으로 넘어오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쇼트 커버링 수요가 몰린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증권사 요청으로 인하우스 국제금융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만 신청자가 몰리고 국제금융 신청자는 단 한 명도 없어 폐강할 정도로 그동안 국제금융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게 우리 금융계의 현실입니다.”한국국제금융연수원 대표성균관대 사학과서강대 경제대학원스탠다드차타드 은행아메리칸익스프레스 Chief Dealer중국은행 자금부 Chief Dealer외한은행 사외이사글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