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라피트 로쉴드의 숨겨진 진실

‘억만장자의 식초’는 와인 경매장의 열기를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의 1985년 12월 5일, 이날은 와인 경매의 역사가 다시 써진 날이다. 1776년의 이날은 경매 회사 창립자인 제임스 크리스티가 처음으로 경매한 날이기도 하다.경매장을 가득 채운 입찰자들은 오직 단 한 병에 관심이 쏠렸다. 약 220년 묵은 와인 한 병이 출품됐는데, 치열한 경합 끝에 결국 15만6000달러에 낙찰됐다. 이 가격은 와인 경매 사상 최고의 낙찰가란 기록을 남겼다. 와인 한 병에 15만 달러가 넘다니 놀랄만한 일이다. 낙찰된 와인은 1787년 빈티지의 샤토 라피트(현재 샤토 라피트 로쉴드)였으며 그것은 한때 미국 대통령이던 제퍼슨의 소유로 추정됐다. 낙찰자는 미국 잡지 포브스의 일가였다.종전 기록은 1870년 빈티지 샤토 라피트 로쉴드인데, 낙찰가는 3만8000달러였다. 이 와인은 여로보암인데, 4.5리터(0.75리터×6병)짜리 한 병이었다.기껏해야 졸부의 돈 장난으로 비쳐질 최고가 와인 한 병을 어떤 저자가, 혹은 어떤 출판사가 책 한 권으로 묶으려고 할까. 가장 비싼 와인 한 병에 둘러싸인 ‘억만장자의 식초’는 기실 그 와인이 진짜가 아닐 것이라는 의구심을 파헤친 이야기다.저자는 실제 벌어진 일들을 미스터리 논픽션으로 마감했다. 줄거리에 등장하는 사건은 모두 있었던 일이다. 다만 어느 미국인 사업가가 치르고 있는 소송만 진행형일 뿐.이십 년이 넘도록 무성했던 가짜라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제퍼슨 대통령의 와인에 얽힌 뒷이야기는 좀처럼 그 진실을 알 수 없다. 당시 58세의 나이로 경매를 진행했던 경매사, 즉 한평생 와인 경매의 서막과 절정을 온몸으로 보여주던 그 역시도 기력이 쇠해 점차 늙어가고 있다. 낙찰 와인도 이미 시어빠져 박제돼 버리고 말았다. 그 와인은 그저 골동품의 지위에 머무르고 있다. 그런데도 그 와인의 소문은 왕성한 호기심을 생산하고 있다. 과연 제퍼슨의 와인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저자는 지난 이십 년간의 방대한 자료들을 취합해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했다. 참고 문헌이나 인용문 표시를 31페이지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했다. 책에는 재미있는 표현과 문학적 수사가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지하 셀러를 파헤치며 출품 와인을 골라내는 경매사의 역할을 ‘툼 레이더’에 비유한다든지, 희귀 와인을 손안에 넣는 재주 많은 인물을 ‘와인의 수맥’을 찾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본명을 고쳐 과거를 숨기려는 것을 ‘꼬리 자르기’라고 이름을 지었다. 책의 본론으로 들어가면 어떤 와인이기에 제퍼슨의 와인이라고 믿게 된 걸까. 낙찰자는 왜 그리 비싼 값을 치르면서까지 얻으려 한 것일까.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이런 여러 의문을 품은 저자는 추리소설의 탐정처럼 하나씩 하나씩 밝힌다. 책의 주인공은 샤토 라피트의 1787년 빈티지 한 병이다. 샤토 라피트는 보르도의 포이약 마을에 있는 포도원으로 메독을 대표하는 양조장이다.나폴레옹 3세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국의 문화적 위용을 뽐내려고 마련한 그 유명한 ‘1855년 등급 품평회’에서 당당히 첫 번째로 1등급 반열에 꼽힌 와인이다. 마고, 라투르, 오브리옹이 순서대로 라피트의 뒤를 따랐다. 1787년 기준으로 와인 가격을 줄 세워 봐도 위와 같다. 당시 라피트는 마고보다 17%, 라투르보다 40%, 오브리옹보다 무려 133% 비싸게 거래됐다. 결국 라피트는 18세기부터 지금까지 보르도 전체를 대표하는 최고급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왜 1787년 빈티지일까.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 1787년 모차르트가 오페라 ‘돈지오반니’와 교향곡 ‘프라하’를 작곡한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해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완료한 것과 그해 제퍼슨이 보르도를 방문한 것이 의미라면 의미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퍼슨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1787 빈티지는 제퍼슨이 소유한 적이 없다고 한다. 대신 1784 빈티지의 마고와 디켐을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라피트의 경우는 단지 1784 빈티지를 주문했었다는 메모만 전해진다고 한다. 이 부분이 해당 와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 단초다.어디서 발견한 와인일까. 와인을 경매에 출품한 독일인 하디 로덴스톡은 파리 마레 지구의 재건축 현장에서 와인을 구했다고 주장한다. 건물을 부수려고 벽을 뜯었던 인부들이 우연히 비밀 벽을 발견했는데 그 속에 와인이 수십 병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나치 스토리에 의해 신빙성을 얻었다. 파리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라투르 다르장’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와인 찬탈을 피하려고 지하 셀러에 있던 10만 병 중 고급 와인 2만 병을 벽을 쌓아 밀봉해 지켜냈다는 일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다. 제퍼슨의 소유일까. 무엇이 제퍼슨의 것으로 단정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한때 외교관 신분으로 파리에 5년간 머물렀다. 그 시절 와인 마니아가 된 그는 월급의 상당 액수를 와인구매에 바쳤다. 그리고 와인 품질 보장을 위해 샤토에다 직접 와인을 주문했고 샤토에서 병입해 납품할 것도 요청했다. 경매에 나왔던 와인 병에는 음각으로 ‘Th.J.’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크리스티는 이게 바로 토마스 제퍼슨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퍼슨 연구학자는 이니셜을 표시하는 방법이 문헌과 다르다며 반박했다.이 논픽션을 읽은 후 책을 덮으면서 가장 슬프게 고개를 저을 것 같은 이는 바로 제퍼슨일 거라고 작가는 단언한다. 제퍼슨은 만년에 음주량을 줄였다. 샤토에서 직접 구매하던 방식을 버리고 니스에 있는 한 중개상을 고용해 그 지역의 일반 와인을 사들였다. 그는 저렴한 테이블 와인을 마셨고,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고 글을 맺는다. 이 책은 미완성 교향곡이다. 좀 더 있으면 송사가 끝나 위·변조 행위의 여부가 밝혀지겠지만, 작가는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공허함을 염려했던 때문인지 이대로 출간했다.1. 샤토 라피트 로쉴드와 라피트 레전드 시리즈 2. 와인셀러3. 와이너리 전경 4. 샤토 라피트 로쉴드조정용 비노킴즈 대표